月刊 설화와 인물

2025년 1월호

넘겨 보는 설화 중보거리의 슬픈 사랑

2024년 12월 17일 한국설화연구소

광양 옥룡면 죽천리 학사대 밑에 중보라는 보가 있다. 그래서 그 보 근처 일대를 중보거리라 부른다. 중보거리에는 땅은 많은데도 수리 시설이 없어서 벼농사 짓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마을 사람들은 보를 막아야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당시는 사람들이 모두 띄엄띄엄 살다보니 한데 모이기도 쉽지 않았고, 다들 먹고 살기가 팍팍하다 보니 누군들 나서서 일을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 보를 막아야겠다는 마음만 있을 뿐 정작 보를 막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한 700년 쯤 전, 중보거리 인근에 얼굴이 달덩이 같은 오씨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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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구슬을 쥐고 태어난 아이

2024년 12월 17일 한국설화연구소

조선시대 초 전라도 창평군에 우성해(禹性海)라는 양반이 살고 있었다.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도 많았지만 음주가무와는 거리를 둔 채 치산(治産)을 잘 해 젊은 나이에 우성해는 거부가 되었다. 아무런 부러움도 없을 것 같은 그에게도 고민이 있었다. 10대 후반에 은(殷)씨 처녀와 혼인을 하여 몇 년 만에 겨우 얻은 딸 하나만 보고 살았는데 그 딸이 시집을 안 가려 하기 때문이다. 우성해의 딸은 적적해하실 부모님을 생각하여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시집을 가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 스물이 다 되어서야 우성해의 딸은 낙안의 주(朱)씨에게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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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한해방죽의 슬픈 사연

2024년 12월 17일 한국설화연구소

고흥군 풍양면 고옥리 축두마을은 지리적으로 해상 방비의 요충지로, 관방이 설치되어 입출항하는 선박을 감시하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때까지는 몽중산 아래에 있다 하여 몽중이라 불렀는데, 몽중산의 형세가 소의 모습과 같고, 마을이 소 머리에 해당한다고 하여 축두(丑頭)라 하였다. 축두마을에 저수지가 하나 있다. 지금은 축두저수지라 부르는데, 예전에는 한해방죽이라 불렀다. 축두저수지의 옛 이름이 한해방죽인 것은 방죽을 쌓을 때 스스로를 희생한 한해라는 이름의 스님 때문이다. 기록에는 1937년 축조되었다고 하나 옛날부터 있었던 방죽을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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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와 수석 손 부사와 호호

2024년 12월 17일 허석 한국설화연구소소장

세계적인 수석박물관을 준비중인 진돗개 전도왕 박병선 집사가 소장하고 있는 수석 가운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문양석이 적지 않다. 이 가운데 일부를 설화와 엮어 소개한다. 1244년(고려 고종 31년) 승평(순천)의 한 저잣거리. 동갑내기 호호와 미미가 장 구경을 나왔다. 우연히 호호가 어떤 사내와 부딪혔는데, 그 일로 미미와 그 사내가 시비가 붙었다. 그런데 말을 탄 관리가 사내를 제지하였다. 다음날 승평 부사 집무실. 신임 부사가 아전들과 상의를 하고 있다. 어제 저잣거리에 나타났던 말을 탄 그 사람이다. 손억(1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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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약사의 노인예찬 “약이 아까와서”

2024년 12월 17일 정철 약사/인애약국

정철 약사는 대학졸업 후 12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 뒤늦게 약대에 편입하여 나이 40에 약국을 개업하였다. 고흥 인애약국 전경. 약국에서 마을 가는 군내버스를 기다리며 할머니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다. “앞에 앉은 어메는 뭔 약을 그렇게 많이 묵는다요?” “아이고. 말도 마소. 오늘은 혈압약, 당뇨약, 삐따구 안 아픈 약, 치매예방약, 속 씨린 약, 이런 거다요, 근디 이것만 묵는다요? 집에 가면 한약방에서 댈인 한약하고 새끼들이 사다준 영양제까지 하면 약이 한 뭉탱이요. 이 약을 다 묵어도 창자가 괜찮은가 모르겄소.” “긍께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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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명당

2024년 12월 17일 한국설화연구소

앵무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 봉두(鳳頭)마을은 위씨 집성촌이다. 이곳에는 위효징의 집터가 있는데, ‘봉황포란지혈(鳳凰抱卵之穴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세의 명당)’이라고 한다.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명당으로 알려진 위효징의 집터. 15세 종손인 위상복(83) 씨가 1982년 초가집을 기와로 다시 지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임진왜란 때 일이다. 이순신 장군 막하에서 활동하였던 위대경(魏大經 1555~1597)은 충렬공(忠烈公) 위계정(魏繼廷 ?∼1107)의 후손이다. 위계정은 고려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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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용왕이 보낸 말하는 거북

2024년 12월 17일 한국설화연구소

보성읍에서 한 3km 가면 용문리라는 곳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한 500년 전쯤 용문리에 아주 가난한 자매가 살고 있었다. 두 자매가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데, 얼마나 가난했는지 자매가 나무도 하고 나물도 캐고 밭도 가는 등 하루도 몸이 편할 날이 없었다. 용문마을 앞 개울 어느 겨울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무를 하러 다녀오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연세가 드셔서 잔병치레는 많이 하셨지만 갑자기 쓰러지시니 자매는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산에서 캐 온 약초로 응급조치를 한 다음 가까운 의원에게 달려가 아버지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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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다로 왕자와 상아 공주

2024년 12월 17일 한국설화연구소

삼국시대 이전에 우리나라 남부지방에는 삼한시대가 있었다.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이 그것이다. 삼국시대 초기에도 그랬지만 삼한 역시 부족 사회였다. 부족 사이에는 크고 작은 전쟁이 많았는데, 마한의 세력이 강하였기 때문에 삼한 사이에는 위태로운 평화가 지속됐다. 그래서 마한의 왕이 삼한을 대표하는 진왕(辰王)이 되어 느슨한 연합체로 평화를 유지하였다. 후한서(後漢書) 한전(韓傳)에는 ‘마한이 가장 강대하며 그 종족들이 함께 왕을 세워 진왕으로 삼아 목지국에 도읍하여 전체 삼한지역의 왕으로 군림한다’고 나와 있다. 형식적으로는 진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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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원홍장과 성덕 설화

2024년 12월 17일 한국설화연구소

옛날 백제 때 충청도 대흥에 원량(元良)이라는 장님이 살았다.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였던 그는 어찌어찌 하여 나이 사십이 다 되어서야 늦장가를 들게 되었다. 앞을 못 보는 원량을 측은하게 여긴 마음씨 착한 처녀가 원량에게 시집을 온 것이다. 늦복이 터졌는지 아내는 곧바로 잉태를 하였고 딸까지 낳았다. 백제 고이왕 11년(274년)의 일이다. 딸의 이름을 홍장(洪莊)이라 지은 원량은 비록 앞을 보지 못하여 사랑하는 아내와 딸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하루하루가 꿈길을 걷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얻은 것 같던 원량을 시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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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천 년을 기다린 명당

2024년 12월 17일 한국설화연구소

고려초, 지금의 고흥 도덕면 한적마을에 박씨 성을 가진 가난한 어부가 살고 있었다.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고 그렇다고 남의 것을 탐하지도 않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다. 박씨는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데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모시는지 동네 사람들이 다들 칭찬하느라 입이 마를 정도였다. 박씨는 매일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리지만, 파도가 세게 치거나 안개가 짙은 날이면 마을 뒤에 있는 중뫼산에 올라 밭을 일구었다. 밭이라도 몇 마지기 일구어야 그나마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난한 박씨의 밭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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