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함께 (23)

역사 속 인물 이순신을 도와 왜적을 무찌른 나대용 장군

2025년 1월 14일 이진영

나대용 영정 나대용(1556년~1612년)은 조선 중기의 무관이다.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시망(時望), 호는 체암(遞 菴)이다. 본래 문장이 뛰어나 문인이 되려 하였으나, 1583년(선조16년) 훈련원 별시에 병과 급제하 여 훈련원봉사를 지냈다. 1591년 전라좌수사 이순신 휘하에 들어가 병선 연구에 힘썼는데 특히 귀선(거북선)을 건조하는 데 많이 기여하고 왜적을 물리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현대에 이르러 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는 미디어에서 임진왜란을 다룰 때「충무공 이순신」을1) 중심으로 그리다보니 휘하 장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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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 포로로 잡혀가 기밀을 빼낸 강항

2025년 1월 14일 한국설화연구소

<간양록(看羊錄)>은 영광 출신인 강항(姜沆 1567~1618)이 정유재란 때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1)의 보고 들은 바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책이다. 1) 1597년 9월부터 1600년 5월까지 2년 8개월. 간양록 강항은 자신의 책 제목을 <건거록(巾車錄)>이라 이름하였다. ‘건거(巾車)’란 죄인이 타는 수레라는 뜻이다. 포로가 된 자신은 죄인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이름 지었다. <간양록>은 일본의 정세를 적어 고국에 있는 임금에게 올린 적중봉소(賊中封疎), 일본의 관직과 지도, 장수들의 특징 등을 기록한 적중견문록(賊中見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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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대통령

2025년 1월 14일 한국설화연구소

김대중(金大中 1924~2009) 대통령은 야당 총재 시절 광주 묘역을 방문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혹독했던 정치 겨울 동안 강인한 덩굴 풀 인동초를 잊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바쳐 한 포기 인동초라 될 것을 약속합니다.” 자신의 인생 역정을 인동 덩굴에 비유한 것이다. 사실 인동초는 풀이 아니라 나무다. 흔히 이야기하는 겨우살이덩굴인 것이다. 우리가 김대중 대통령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인동초’인 이유는 그러한 이유가 있다. 신안군 하의도 촌놈 김대중 김대중 대통령은 일제강점기인 1924년 신안군의 작은 섬 하의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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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 조선의 다성(茶聖) 초의선사

2025년 1월 13일 한국설화연구소

우리나라 차의 중흥조로 불리는 초의선사(草衣禪師)는 1786년(정조 10년) 무안군 삼향면 왕산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시 ‘귀고향(歸故鄕)’에 나오는 신기(新基)마을이 바로 왕산리 동쪽 산 아래 샛골[新基]이다. 초의선사는 속성은 장(張)씨인데, 어머니가 큰 별이 품안으로 돌아오는 꿈을 꾸고 잉태하였다고 한다. 집 근처로 커다란 개울이 흐르고 있었는데, 다섯 살 때에 물가에서 놀다가 빠져서 하마터면 죽을 뻔하였다. 그런데 누군가 건져주었다고 한다.1) 한승원은 소설 <초의>에서 그 사람이 바로 운흥사(雲興寺) 벽봉(碧峰)스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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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 소쇄원을 조성한 양산보

2025년 1월 13일 한국설화연구소

중종반정의 공신들인 남곤·심정·홍경주 등 훈구세력은 신진 사림파가 세력을 늘려가자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희빈홍씨(熙嬪洪氏)의 아버지인 홍경주를 중심으로 반격의 기회를 노리게 된다. 중종의 총애를 받고 있는 희빈홍씨를 통해 “나라의 인심이 모두 조광조에게 돌아갔다”고 거짓 보고하게 하면서 “그대로 둘 경우 왕권까지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중종이 반신반의하자 주초위왕(走肖爲王)1)이라는 글자를 나뭇잎에 새겨 왕이 보게 함으로써 왕으로 하여금 믿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1) 走肖는 조(趙)의 파자(破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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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 태조 왕건의 부인 장화왕후 오씨

2025년 1월 13일 한국설화연구소

왕건과 오씨의 설화가 전해 오는 완사천(浣紗泉)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 왕건(877~943)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바로 태자 책봉과 관련한 고민이었다. 각 지방의 호족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혼인정책을 펼친 결과 부인이 모두 29명인데다 아들 25명에 딸이 9명이었다. 그러니 자기 지방 출신을 왕위계승자로 만들기 위한 암투가 치열해진 것이다. 첫째 부인인 신혜왕후 유씨에게는 자식이 없었고 큰 아들이 장화왕후 오씨(?~?)에게서 난 무(武)였지만 셋째 부인인 신명순성왕후에게 태(泰), 요(堯), 소(昭) 등 아들이 다섯이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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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 <목민심서>를 쓴 다산 정약용

2025년 1월 10일 한국설화연구소

다산 정약용 영정 정약용 선생이 강진으로 유배를 온다는 소문이 돌자, 강진 고을 사람들 사이에는 정약용이라는 이름보다는 <촌병혹치(村病或治)>를 쓴 인물로 더 유명했다. 1801년(순조 원년) 포항 근처 장기(長鬐)로 귀양을 간 다산은 귀양 생활 몇 달 만에 심신이 피폐해졌다. 그래서 아들이 의학 서적 수십 권과 함께 약초까지 한 상자를 보냈다. 그리하여 의학서적을 보고 스스로 약을 조제해 달여 먹은 결과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자 머물고 있던 숙소의 주인 아들이 부탁을 하였다. “장기의 풍속은 병이 들면 무당을 시켜 푸닥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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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 일제에 저항했던 황보익 목사

2025년 1월 9일 한국설화연구소

창원 황씨인 황보익(1895-1953) 목사는 여수시 남면(금오도) 우학리에서 황정빈의 5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황 목사를 포함해 그 5형제는 일찍이 개신교를 받아 들였고, 일제 강점기 3.1운동과 신사참배 거부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가문 전체가 개신교를 받아들였고, 일제에 저항하는 등 활약을 보였음에도 교계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전남 동부권의 기독교역사를 보면 예수교장로회가 통합과 합동으로 갈라지기 이전에는 순천노회를 중심으로 교회 개척이 이뤄졌고, 목회자들을 키워냈다. 우학리교회 전경 여수 우학리에서 고흥 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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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 서정(墅丁) 김동혁(金東爀)선생

2025년 1월 9일 한국설화연구소

백운산 농장 개척 시절의 김서정 선생. 과로로 객혈을 하여 입원하였으나 완치 되기도 전에 산으로 되돌아 왔다. 병색의 초췌한 모습이 역력하다.(1961년 10월) <사진출처: 광양문화원 발간「서정(墅丁) 김동혁(金東爀)」> “저는 60여년동안 농민으로 살아오면서 돈을 버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가난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 적도 없습니다. 농민인 저는 비록 가난하지만 우리 농민의 손으로 우리 국민을 먹여 살린다는 긍지와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 왔습니다.” 지난 1998년 9월 (재)대산농촌문화재단에서 수여하는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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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 碧笑(벽소) 李榮珉(이영민)

2025년 1월 8일 한국설화연구소

碧笑(벽소) 李榮珉(이영민) (1881~1962) 순천가(順天歌)는 순천이라는 지역을 대상으로 여러 지명에 얽힌 고사나 역사적 인물을 거론하면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순천에서 활동했던 벽소 이영민 선생(1881-1962)이 1930년경에 창작한 것으로, 순천의 산천과 명승을 비롯하여 여러 유적지가 소개한 내용이 담긴 가사조(歌詞調)로 엮은 노래이다. 그가 순천가를 창작한 동기는 판소리 창자들이 허두가 형식의 노래로 불리도록 함으로써, 순천의 산천과 유적을 소개하여 유서가 깊은 고장임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파악된다. 순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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