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넘겨 보는 설화 (103)


넘겨 보는 설화 소가죽의 가르침
2025년 1월 14일 한국설화연구소지리산에는 수많은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지리산 둘레길 오미방광의 도착 지점이자 방광산동 구간의 출발지인 구례군 광의면 방광마을 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입니다. 조선 성종 3년(1472)에 있었던 일이다. 지리산 쌍계사에 우봉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는 결제1)철인데도 불구하고 여름안거 반살림2)이 끝나자 걸망을 메고 노고단을 넘었다. 꼬박 이틀을 걸어 산 정상에 오르니 초여름이건만 서늘했다. 동굴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화엄사로 향 했다. 한참을 가던 스님이 갈증이 났다. 하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샘은커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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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여우도 탐낸 명당 - 구호농주지혈(九狐弄珠之穴)
2025년 1월 14일 한국설화연구소순천시 별량면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이다. 어느 마을에 삼형제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첫째와 둘째는 장가를 가서 자식도 보고 그런대로 사람구실하면서 사는데 막내가 유독 하라는 공부도 안 하 고 어머니 속을 썩여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그러다 덜컥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만다. 3년 상을 지내는 동안 막내는 어머니께 불효한 것을 후회하며 3년 내내 온 정성을 다했다. 3년 상을 마치고 어머니의 묏 자리를 정해야할 때가 되었다. 집안 형편이 어렵다보니 실력 있는 지관을 구하지 못해 고민하던 두 형들에게 어느 날 막내가 “형님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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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모래가 우는 백사장 명사십리
2025년 1월 13일 한국설화연구소정약전 정약전(丁若銓 1758~1815) 하면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형이라는 것과 함께 <자산어보(玆山魚譜)>가 떠오를 것이다. 1801년(순조 1년) 신유사옥이 일어나 많은 천주교 신도들이 박해를 입을 때 정약전은 아우 정약용과 함께 화를 입어 정약용은 장기를 거쳐 강진으로, 그는 신지도(薪智島)를 거쳐 흑산도로 유배되었다. 흑산도에 있을 때 정약전은 흑산도 근해의 수산 생물을 실제로 채집하여 분류한 뒤, 각각의 명칭과 분포, 형태와 습성 및 이용에 관한 것 등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자산어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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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덕진다리 전설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고려 어느 때, 영암 고을. 새로 부임한 원님이 관아 안팎을 둘러보고 피곤하였는지 잠자리에 들었다. 비몽사몽간에 갑자기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또! 부디 제 이야기 좀 들어주십시오.” 깜짝 놀란 원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살펴보니 웬 여인이 소복을 입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넌 누구냐?” 원님이 소리치자 그 여인이 나지막한 소리로 대답하였다. “사또, 놀라지 마십시오. 저는 여기서 십리 쯤 떨어진 곳에 살았던 덕진이라는 여인이옵니다.” 사또가 조금은 진정한 기색을 보이자 여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암 관아에서 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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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어미 호랑이의 보은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옹기를 파는 그릇점이 있어서 점촌이라고도 불렸던 서면 세동(細洞)마을은 구랑실 재 너머 마륜 맞은 편 산골에 있는 마을이다. 옹기를 굽던 가마에서 유래되었는지 지금은 마을 입구에 참숯가마 찜질방이 만들어져 눈길을 끈다. 옛날 이 마을에 가희, 나희, 다희라는 세 아가씨가 살았다. 시집갈 나이가 되었는데도 셋은 한데 어울려 노는 재미에 도통 시집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뒷산에 올라 나물을 캔다는 명분으로 하루 종일 쏘다니기가 일쑤였다. 서면 세동마을 뒤편으로 호암산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어느 날 셋이 나물을 뜯으러 골짜기와 산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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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문바위와 옥동자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나주 남평에서 3km쯤 동쪽에 ‘문암(文巖)’이 있다. 문암, 이른 바 문바위에는 남평문씨 시조인 문다성(文多省) 탄생설화가 전해온다. 문바위에서 서남쪽으로 건너다보이는 강 건너가 오래 전 남평고을 터였다. 472년, 백제 개로왕(盖鹵王) 18년. 남평고을 원님이 아침에 일어나 강 건너를 바라보니 서기가 감돌았다. “저곳에 어디인가?” 원님이 아전에게 묻자 제법 나이가 지긋한 아전이 손을 이마에 대고 강 건너를 바라보더니 대답하였다. “저곳은 특별한 곳은 아니옵고 커다란 바위가 하나 놓여 있을 뿐입니다.” “그래? 그런데 어찌 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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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애 끓는 상여소리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고흥군 두원면 내당리에 신맹희(申孟熙)의 처 영광정씨(靈光丁氏) 효열비가 있다. 이 효열비에는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다. 오래 전 이곳 내당리 뒤에 있는 화전산 개박골에 상여가 지나고 있었다. 여느 상여보다 슬픔이 극에 달하여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상여의 주인공이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젊은이였기 때문이다. 상여의 주인공은 문희공(文僖公) 신개(申槩 1374~1446)의 후손 신맹희(申孟熙)이다. 신개는 1393년 문과에 급제하여 충청도, 황해도,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뒤 대제학, 이조판서를 거쳐 좌의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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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보림사 용소 전설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장흥 유치면에 있는 보림사 터는 원래 못이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고려시대 때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스님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눌스님은 탄생설화가 있다. 무신정권 시절인 고려 의종 12년, 화순에 있는 자치샘이라는 우물에 조씨 처녀가 물을 길러갔다. 그런데 샘물에 복숭아가 떠 있는 것이 아닌가. 탐스럽고 먹음직스럽게 생겨 처녀가 복숭아를 먹었다. 처녀는 정광우(鄭光遇)라는 총각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 직후 잉태를 하게 되었고, 그 아들이 바로 보조국사 지눌이다. 지눌이 수행을 하던 중 화순 모후산에서 나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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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비굴하게 살지 않겠다는 굴비 이야기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영광’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굴비’다. 그런데 ‘굴비’ 하면 또 떠오르는 것이 바로 ‘자린고비’이다. 조선 광해군 때 류몽인(柳夢寅 1559~1623)이 쓴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자린고비 이야기가 나온다. 충청도 충주지방에 고비(高蜚)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지독하게 아껴서 큰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얼마나 아꼈는지 부모 제사 때 지방(紙榜)을 쓰는 종이도 아까워 한 번 쓴 지방에 기름을 먹여 계속 썼기 때문에 ‘절인’이라는 별명이 이름 앞에 붙었다. 그래서 ‘절인고비’라 부르던 것이 ‘자린고비’가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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