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설화와 인물

2025년 1월호

넘겨 보는 설화 오천 냥 사또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옛날 어느 고을에 사또가 새로 부임하였다. 전임 사또가 임기가 남았는데도 갑자기 이임하더니 채 열흘도 안 되어 기다렸다는 듯이 후임 사또가 온 것이다. 반 년 남짓 근무하였던 전임 사또는 마치 부모님 대하듯이 고을 주민들을 대하였다. 주민들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아전들을 나무라는가 하면 어려운 집에는 구휼을 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전임 사또들처럼 뇌물을 받기는 커녕 신관 사또는 오히려 자신의 녹봉으로 노인들에게 잔치를 베푸는 등 그야말로 청백리의 표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임을 한 것이다. 나중에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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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인걸과 아미선녀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옛날 지리산 기슭 함양군 마천면 하정(下丁)마을에 인걸이라는 사내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냥을 하며 살고 있었다. 하정마을은 아래정쟁이라고도 부르는데, 세 마을 중 아래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인걸의 사냥 솜씨가 나쁘지 않아 두 식구가 먹고 살만은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인걸이 사냥을 가는데 어디선가 예쁜 무지개가 비췄다. 그렇게 예쁜 무지개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사냥을 갈 때마다 무지개가 비췄다. 그것도 하루 세 차례씩 꼬박꼬박 무지개가 섰다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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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곡성의 효자 박원모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1661년(현종 5년) 곡성군 오산면 가곡리에서 박원모가 태어났다. 밀양 박씨 호동의 외아들로 태어난 원모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다. 아들을 얼마나 끔찍하게 위하였는지를 잘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하루는 원모가 서당에 다녀오다 엎어져 무릎을 다쳤다. 조그마한 개울을 건너다 엎어진 것이다. 그러자 다음날 원모의 아버지가 개울에 나무로 다리를 놓았다. 원모가 다시는 개울을 건너다 엎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박씨에게 ‘잘못하면 아들 버릇 나빠진다’며 좀 더 엄격하게 키우라고 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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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해달호(海達號)의 진실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9세기 때 장보고가 청해진을 거점으로 일본과 중국 사이의 중개무역을 한 이후 우리나라는 점차 해양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장보고와 같은 걸출한 인물이 사라진 탓도 있었지만 신라 내부의 분열상이 심각하였기 때문이다. 후삼국시대를 거쳐 왕건에 의해 고려가 건국된 이후부터 간헐적으로 왜구가 출몰하더니 충렬왕 이후에는 노골적으로 서남해안을 침략하였다. 대부분의 왜구를 격퇴하기는 하였지만 이처럼 왜구가 날뛴 데는 해상권을 장악하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었다. 고려 말 우왕 때의 일이다. 화통도감의 제조로 임명된 최무선은 왜구를 격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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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청년 장군 이대원과 죽죽녀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여수시 삼산면에 있는 손죽도(巽竹島)의 원래 이름은 손대도(損大島)였다. 본디 손대도라도 이름이 붙은 것은 이대원(李大元) 장군과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 최연소 만호인 이대원 장군이 죽자 섬 주민들이 모두 슬픔에 잠겼고, 섬에 그렇게 많던 대나무가 모두 말라 죽었다. 그후 오늘날까지 대나무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대(大)자를 죽(竹)자로 바꾸고 손(損)자는 손(巽)으로 바꾸어 그 본 뜻을 흐리게 하였다. 고흥 쌍충사에 있는 이대원 장군 영정 이대원 장군은 1566년(명종 21년) 지금의 평택시 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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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때리는 효도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옛날 보성군 조성면에 지지리도 가난한 부부가 살았다. 가난도 가난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아이가 없어서 더 근심이 컸다. 하지만 워낙 금슬이 좋아서 서로가 서로에게 부담을 주는 언행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늘그막에 아들이 하나 생겨서 두 사람은 천하를 다 가진 것처럼 기뻤다. 쉰둥이를 낳았으니 얼마나 예뻤겠는가.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그런 아들을 낳고는 두 사람은 더욱 열심히 일을 하였다. 전에는 몰랐지만 아들을 낳고 보니 아들을 위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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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용섬의 슬픈 사랑 이야기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고흥 금산면 명천마을 앞 바다에는 작은 섬이 하나 있다. 용섬이다. 용섬에는 커다란 노송 한 그루가 있는데, 노송에는 예로부터 용의 승천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아주 옛날 이 마을에 다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처녀가 살았다. 무남독녀 외동딸이라 다정이는 부모님은 물론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어느 해 봄, 다정이가 뒷산에 올라 봄나물을 캐고 있었다. 아직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인지 여기저기 취며 고사리 등의 나물이 다정이를 유혹하였다. 한참 동안 나물캐기에 정신이 없던 다정이가 인기척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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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부저리 범명당 이야기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광양시 봉강면 부저리 뒷산에 묘가 하나 있는데, 범명당이라 부른다. 범명당은 효자묘라고도 부르는데, 장성 출신 남만갑(南萬甲)이라는 효자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온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장성 어느 마을에 의령 남씨 3대가 살고 있었다. 환갑이 다 된 할아버지 응복(凝福), 불혹이 가까워오는 아버지 두연(斗連) 부부, 그리고 두연의 아들 만갑이 그들이었다. 3대 모두가 독자인지라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각별하였다. 특히 아버지와 아들을 대하는 두연 부부의 효심과 사랑은 인근 고을에서는 소문이 자자할 정도였다. 응복과 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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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산동마을 산수유 전설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중국 산동성 청도, 지금도 청도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그런데 예전에 신라방이 있었던 곳도 바로 그곳이다. 산동성은 이래저래 한국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임에 틀림없다. 최치원(崔致遠 857~?). 신라 말기 대학자로 유명한 그는 868년 열두 살의 어린 나이로 중국 당나라에 유학을 떠나게 된다. 어린 나이에 유학을 떠나는 아들에게 아버지 최견일이 무표정하게 말하였다. “10년 안에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돌아올 생각을 마라.” 당나라에 유학한지 7년만인 874년, 최치원은 열여덟의 나이로 빈공과(賓貢科)1)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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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초곡재의 처녀귀신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곡성군 겸면 괴정마을에는 마을의 상징인 400여 년 묵은 느티나무가 있다. 그래서 괴정마을이라 부른다. 괴정마을에서 초곡마을로 넘어가는 고개가 초곡재다. 일제강점기 때 일이다. 어떤 총각이 괴정마을에서 초곡마을로 넘어가는데 급하게 가다보니 소변이 마려웠다. 그래서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숲길 은밀한 곳으로 들어가 소변을 보았다. 얼마나 참았는지 한참을 소변을 보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었는데 누굴까 생각하며 뒤돌아보던 총각은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머리를 풀어헤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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