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설화와 인물

2025년 1월호

역사 속 인물 김을 최초로 양식한 김여익 선생

2024년 12월 17일 허석 한국설화연구소소장

우리나라 밥상에 김치 다음으로 인기 있는 것이 김일 것이다. 우리나라 김은 외국에서도 인기가 많아 일본이나 중국 관광객들이 대량으로 사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김을 최초로 먹은 때는 언제일까? 광양 태인동 용지마을 입구에 있는 김 시식지 유래비. <삼국유사> ‘연오랑 세오녀’ 편에 보면 연오랑이 바닷가에서 해초를 채취하려다 바위가 움직여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나오는 해초가 미역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지만 김이라는 분석도 있다. 자연적인 김의 경우 그 유래가 오래 되었겠지만, 인공적으로 양식을 한 최초의 사례가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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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약사의 노인예찬 “약보다 술이 더 좋아!”

2024년 12월 17일 정철 약사/인애약국

약국에 오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술이 과연 건강과 장수에 해로운 것인지 의심이 생긴다. 종종 술을 드시고 병원에 다녀온 분들이 있는데, 어느 날 그런 분이 한 분 오셨다. 그래서 “아니 술을 드시고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이 싫어하실 텐데 뭐라 안 해요?” 그러자 “뭐, 허허. 어쩔 건가. 일하다 보면 술 한 잔 하게 되고, 아픈께 병원에 오긴 와야 되고, 일을 할라면 술 없인 못한단 말이씨. 인자 원장도 그러려니 하고 웃어버리고 아무 말도 안 한단 말이시.” 그러신다. 그러면서 하신다는 말씀이 “이왕 이렇게 된 거 자네 약사한테 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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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와 수석 관음보살과 선재동자

2024년 12월 17일 허석 한국설화연구소소장

세계적인 수석박물관을 준비중인 진돗개 전도왕 박병선 집사가 소장하고 있는 수석 가운데 불교관련 수석도 적지 않다. 이 가운데 일부를 설화와 엮어 소개한다. 사진 제공 : 雲山 박병선 뫼 산(山) 위에 있는 사찰 (가로34㎝×높이21㎝×폭13㎝, 중국) 남도의 정원 도시 순천이 순천만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사실 순천은 종교의 도시이다. 조계종과 태고종의 본산인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어 예로부터 불교의 성지일 뿐 아니라 근대에 들어와서는 남한의 예루살렘이라 할 정도로 기독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특히 선암사는 유홍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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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 조선시대 스토리텔링의 대가 류몽인

2024년 12월 17일 허석 한국설화연구소소장

류몽인 위성공신 교서. 소유자: 류효주(개인소장) 전남 고흥군 고흥읍 효동리 730 1611년(광해군 3년) 겨울, 순천향교에 몇 사람의 유생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가운데 전교로 보이는 사람이 말했다. “이제 우리 향교도 제법 틀을 갖췄소이다. 이 모든 것이 이임한 유영순 부사의 공이 아닐 수 없소. 그러니 그 행적이라도 남겨야 하지 않겠소?” 그랬다. 다 쓰러져가던 향교를 전임 유영순 순천부사가 새로 만들다시피 중수를 하여 순천유림의 자랑이 되었던 것이다. “누가 글을 쓰면 좋겠소?” 전교가 다시 묻자, 유생 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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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마녀목의 슬픈 전설

2024년 12월 3일 한국설화연구소

여수시 화정면 개도에 있는 화산마을 앞에는 커다란 정자나무가 하나 있다. 수령이 400년이 넘는 느티나무인데 마을사람들은 그 느티나무를 마녀목(馬女木)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숙종 때의 일이다. 당시에는 화양면을 곡화(曲華)라고 했는데 말을 사육 관리하는 목관(牧官)이 있었다. 화양면 일대는 물론 인근 백야도, 개도, 제도, 낭도까지 나라에서 제공한 말을 사육하여 목관에게 제공하였다. 그러나 말이 병에 걸려 죽거나 잘 크지 않으면 목관으로부터 질책이 대단하였고, 때로는 그 손해를 배상해야 했다. 목관 역시 다른 지역 목관들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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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까막골의 구미호

2024년 12월 3일 한국설화연구소

순천시 낙안면 금산(金山)마을이 생기기 전 이곳에는 까막골이라는 곳에 조그마한 촌락이 있었다. 까막골이라고 이름이 붙은 것은 숯을 굽고 질그릇을 굽던 가마가 많이 있어서 ‘가마골’이라고 부르던 것이 ‘까막골’로 된 것이다. 까막골에서는 숯을 굽고 질그릇을 구워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하지만 까막골에는 과부가 많아 과부골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몇 집 살지 않는 조그마한 마을에 과부가 여덟 명이나 된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까막골에 과부가 여덟 명이 된 데는 사연이 있었다. 순천시 낙안면 금산마을 맞은편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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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탐욕스러운 형의 최후

2024년 12월 3일 한국설화연구소

조선 후기 구례 문척면 어떤 마을에 박씨 형제가 살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우애가 깊었지만 유독 큰아들을 예뻐하는 할머니나 부모님 때문에 동생은 항시 뒷전이었다. 어려서는 형도 그런 동생을 위해주는 것 같더니 나이가 들면서 점차 형은 동생에게 군림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오냐 오냐 하니까 형의 심성이 조금씩 비뚤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이가 들어 둘 다 장가를 가게 되었다. 형은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동생은 옆 마을로 분가를 하였다. 말이 모시고 사는 것이지 사실은 부모님이 형 내외를 보살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동생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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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까막과부가 부자가 된 사연

2024년 12월 3일 한국설화연구소

옛날 고흥 포두면 정암마을에 송씨 성을 가진 청상과부가 살았다. 동강에서 시집 온 송 여인은 그다지 미색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행동거지가 반듯하여 기품이 있었다. 하지만 시집을 오자마자 까막과부1)가 되고 말았다. 장가를 가자마자 아들이 죽자 며느리를 잘못 얻은 탓이라며 시아버지는 며느리 얼굴을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한 술 더 떠 ‘서방 잡아먹은 X’이라며 며느리 구박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시부모의 태도가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송 여인은 시집살이를 하는 자신이 한 없이 서러웠다. 하인이라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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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 보성의 애국지사 홍암 나철 선생

2024년 12월 3일 허석 한국설화연구소소장

홍암(弘巖) 나철(羅喆) 선생은 1863년(철종 14년) 벌교읍 칠동리 금곡마을에서 아버지 나용집(羅龍集)과 어머니 송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선생의 어린 시절 이름은 두영(斗永)이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던 선생은 다섯 살 때부터 근처에 있는 서당에 다녔다. 그런데 서당에 들어간 지 한 달도 못되어 서당 훈장이 아버지를 불렀다. 보성군 벌교읍 칠동리에 있는 홍암 나철 선생 생가. 집 앞에 연못이 만들어져 있다. 아들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 줄 알고 잔뜩 긴장해 있는 아버지에게 서당 훈장 선생님이 놀라운 이야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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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 광양의 우국지사 매천 황현 선생

2024년 12월 2일 허석 한국설화연구소소장

매천(梅泉) 황현(黃玹) 선생은 1855년(철종 6년) 광양 봉강면 석사리 서석마을에서 아버지 황시묵(黃時默)과 어머니 노씨 사이에 큰아들로 태어났다. 서석마을은 문덕봉(文德峰) 아래에 자리잡은 아늑한 마을이다. 예로부터 이 마을에는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릴 인물이 태어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는데, 그가 매천이 아닐까? 복원된 황현 선생 생가.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 선생도 어린 시절 이 집에서 자랐다고 한다. 문덕봉(文德峰) 아래 이 집터가 대문호를 낳는 명당이 아닐까? 할아버지(황직 黃織)가 본래 구례 광의면 대전리 상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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