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인걸과 아미선녀
옛날 지리산 기슭 함양군 마천면 하정(下丁)마을에 인걸이라는 사내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냥을 하며 살고 있었다. 하정마을은 아래정쟁이라고도 부르는데, 세 마을 중 아래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인걸의 사냥 솜씨가 나쁘지 않아 두 식구가 먹고 살만은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인걸이 사냥을 가는데 어디선가 예쁜 무지개가 비췄다. 그렇게 예쁜 무지개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사냥을 갈 때마다 무지개가 비췄다. 그것도 하루 세 차례씩 꼬박꼬박 무지개가 섰다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뭔가 있다 싶어 인걸이 자세히 살펴보니 무지개 아래 소(沼)에서 어여쁜 여인 세 명이 정성껏 밥을 짓고 있는 게 아닌가. 그 광경을 본 인걸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깊은 산속에서 여인들끼리만 밥을 짓다니 이상한데?’

하정마을 아래 소
산속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냥을 하며 살았던 인걸은 지금까지 그렇게 고운 여인들을 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그 여인들은 지리산 물이 좋다고 소문이 나서 하늘에서 내려온 옥황상제의 시녀들이었다.
말로만 들어보았던 하늘나라 선녀들을 보게 되자 인걸은 욕심이 생겼다. 저렇게 예쁜 여인과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고, 선녀의 날개옷을 입으면 자기도 하늘나라에 올라가 옥황상제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더위를 참지 못했는지 선녀들이 밥을 하다 말고 소에서 멱을 감았다. 우연히 그 광경을 훔쳐보게 된 인걸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였다. 사실은 우연히 훔쳐본 것이 아니었다. 요즘 인걸은 거의 매일 선녀들을 훔쳐보고 있었던 것이다. 백옥 같은 피부, 날씬하고 고혹적인 자태, 인걸은 난생 처음 묘한 황홀감 속으로 빠져들었다.
선녀들 몰래 다가간 인걸은 날개옷 가운데 하나를 훔쳤다. 그런데 긴장을 했던 탓인지 넘어지면서 날개옷이 돌부리에 걸려 찢어져 버렸다. 이상한 소리가 나자 깜짝 놀란 선녀들이 각자 자기 옷을 찾아 입고는 서둘러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나 아미(阿美)라는 선녀만 자기 옷이 없었다. 인걸이 훔치려다 찢어버린 날개옷이 바로 아미 선녀의 날개옷이었던 것이다.
인걸이 멀리서 살펴보니 선녀 한 명이 날개옷이 없어서 하늘에 오르지 못한 채 쩔쩔 매고 있었다. 하늘에 오르는 것은 둘째 치고 당장 입을 옷이 없었다. 모르는 체 하고 인걸이 나섰다.
인걸이가 다가오자 본능적으로 아미선녀는 몸을 움추렸다.
“아니, 이 험한 산중에 도대체 무슨 일이오?”
그러자 아미선녀가 인걸이를 쳐다보지도 못한 채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보아 하니 옷을 잃어버린 것 같은데 잠시만 기다리겠소? 내 옷을 구해오리다.”
인걸은 서둘러 집에 가서 날개옷을 숨겨놓고 어머니 옷을 들고 돌아왔다.
인걸이 가져다준 옷을 입은 아미선녀는 달리 도리가 없어서 인걸의 집으로 와서 며칠을 지냈다. 날개옷이 없이는 하늘에 오를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그렇게 눌러 앉게 된 아미선녀는 인걸과 함께 1남 2녀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설마 하니 아이가 셋인데 무슨 일이 있겠어? 하는 생각으로 인걸이 아미선녀에게 옛이야기를 하였다.
“부인, 사실은 오래 전에 내가 하늘에 오르고 싶어서 날개옷을 훔쳤는데 그게 부인의 옷이었소. 이제 아이들도 낳고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다 인연이 아니겠소?”
인걸의 이야기를 듣던 아미선녀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지더니 이내 원래대로 돌아갔다.
“정말이에요? 당신도 참 짓궂기는. 하지만 어쩌겠어요. 어차피 이제 다 지난 일인걸요?”
아미선녀가 그렇게 말하자 인걸이가 어디선가 날개옷을 꺼내왔다.
“이게 그때 그 날개옷이오. 몰래 훔치려다 그만 돌부리에 걸려 찢어지고 말았소.”
인걸이 내놓는 날개옷을 아미선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제 필요 없어요. 애들 키우며 오순도순 살고 있는데 날개옷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런데 인걸이 엉뚱한 제안을 하였다.
“그러지 말고 이 날개옷을 수선해서 한 번 입어보면 어떻겠소? 오래 전에 보았던 당신의 자태를 보고 싶소.”
“아이, 망측하게. 지금 제 나이가 몇인데 날개옷을 입어보란 말이에요?”
그러자 아미선녀의 옛 자태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난 인걸이 날개옷을 직접 수선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수선이 끝나자마자 아미선녀에게 날개옷을 입어보라고 졸랐다.
“한 번만 입어보시오. 애들한테도 선녀 같은 당신의 자태를 보여주고 싶지 않소?”
인걸이 아이들까지 내세워 권하자 아미선녀는 못이기는 척 날개옷을 입었다. 그런데 날개옷을 입은 아미선녀가 자태를 뽐내듯 마당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로 날아 올라가버렸다. 아이를 셋이나 낳고 살았지만 하늘나라로 돌아가고 싶은 아미선녀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벽소령 부자바위

선유정
아미선녀가 하늘로 올라가버린 후 인걸과 세 자녀가 문바위에 올라가 아미선녀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끝내 내려오지 않자 네 부자는 그만 지쳐 죽고 말았다. 그 다음날 아침 벽소령에는 부자바위가 솟아올랐는데 영락없이 아버지와 세 자녀가 걷는 모습이다.
마을 사람들이 죽은 넋을 위로하고 선녀가 다시 오길 기다리며 선유정(仙遊亭)을 지었다고 하는데, 1996년 개장된 지리산 휴양림 안에 있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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