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약사의 노인예찬 “약이 아까와서”

정철 약사는 대학졸업 후 12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 뒤늦게 약대에 편입하여 나이 40에 약국을 개업하였다.

약국에서 마을 가는 군내버스를 기다리며 할머니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다.
“앞에 앉은 어메는 뭔 약을 그렇게 많이 묵는다요?”
“아이고. 말도 마소. 오늘은 혈압약, 당뇨약, 삐따구 안 아픈 약, 치매예방약, 속 씨린 약, 이런 거다요, 근디 이것만 묵는다요? 집에 가면 한약방에서 댈인 한약하고 새끼들이 사다준 영양제까지 하면 약이 한 뭉탱이요. 이 약을 다 묵어도 창자가 괜찮은가 모르겄소.”
“긍께 말이요. 나도 집이처럼 한 번에 묵는 약이 한 주먹이요. 언제까지 묵어야 쓸란가 모르겄소.”
“아. 근메! 인자는 약도 그만묵고 꽉 죽어불면 좋겄소.”
“누가 마다 근다요? 나도 약이라면 인자 지긋지긋 진절머리가 나 죽겄소. 그래서 나는 어쩔 때는 약도 하루 이틀 빼묵고 안 묵어부요.”
“그래도 혈압약 이런 것은 하루도 안 빼고 날마다 묵어야 된다 그럽디다.”
“아이고, 하루 빼묵는다고 어쩐다요?”
“그래도 그러면 안 된다요. 글다가 잘못돼서 쓰러지면 큰일난다요.”
“큰일은 뭔 큰일난다요. 딱 죽어불면 되제.”
“죽어불면 뭐가 성가시다요? 안 죽고 병신되면 그게 큰일인께 그러제. 그랬다가 누구 죽일라 그러요? 그때는 새끼들이 먼 고생이겄소. 누가 수발할 것이요? 요새는 다 요양원 보내불제. 안 그요?”
“맞는 말이요.”
“옛날 어른들이 ‘죽을 일이 큰일이다.’ 하면 저게 뭔 소리다냐 했는디. 인제 생각해본께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소. 우리가 인제 그럴 때가 됐소.”
“딱 갈 데는 한 군덴디. 걱정이요. 자다가 탁 죽어불면 그것이 제일 신간 편코 좋은 것인디. 어쩔란가 모르겄소.”
“그러게 말이요.”
그러자 남양면에 사는 할머니가 듣고 있다가 끼어든다.

“그래도 난 오래 살고 싶단 말이요. 그래서 그런지 난 약이 좋단 말이요. 나는 약이 아까와서 물도 쫌만 묵소.”
“왜요? 할머니! 약 드실 땐 물을 충분히 드셔야 좋은디.”
“긍께. 물을 많이 묵으면 비싼 약이 오줌으로 싹 다 빠져 나가붕께 얼마나 아깝소? 그래서 물을 째까만 묵고 몸속에 오래 있어야 약이 되제. 병원에서 영양제 맞고 와서 그날 오줌을 싸면 아까와 죽겄소.”
“아이고, 할매는 뭔 약 욕심이 그리 많다요? 첨 봤네. 별 요상한 소리도 다 하네. 백 살도 살겄소.”
죽는 이야기 하고 있다가 약이 아깝다는 할머니의 이 한 마디에 좌중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오늘도 할머니들의 입담과 웃음 속에 하루를 보내면서, 할머니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시길 기원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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