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장고바위 전설

한국설화연구소
2024-12-23 15:44
강진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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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덕마을 논 가운데에 있는 굴레바위.

장구처럼 생겼다고 하여 장고바위로도 불리는 2개의 바위는 1m 정도의 간격을 두고 2m 높이로 나란히 세워져 있다. 본래 하나로 붙어 있었다고 한다.

옛날 강진군 어느 마을에 김인선(金仁善)이라는 소년이 살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온 고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살고 있는 마을에 서당이 없어서 매일 마을 뒷산을 넘어 이웃마을까지 글공부를 다녔다. 그런데 때로는 밤늦게까지 글공부를 하다보면 달빛 사이로 수풀을 헤치며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훈장 선생님도 인선이가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같이 글공부를 하는 동무들이 시샘을 하기도 하였다.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인선이가 밤늦게까지 글공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묘령의 아가씨가 나타나더니 인선이한테 다가와 밤길이 무서우니 길동무를 해달라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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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선이도 그날은 어쩐지 으슬으슬한 것이 무섭던 중이어서 아가씨와 함께 산을 넘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예쁜 아가씨였다. 그러니 어찌 넘었는지도 모르게 금세 산을 넘게 되었다.

이 고개만 넘으면 인선이네 집인데 갈림길에서 아가씨는 반대편으로 가야 한다며 인선이와 헤어졌다. 아쉬움이 넘쳐났지만 그렇게 헤어졌다.

그런데 며칠 뒤에도 어김없이 아가씨가 나타났다. 그렇지 않아도 보고 싶던 터라 인선이는 아가씨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아가씨도 인선이가 보고 싶었는지 이번에는 아주 적극적이었다.

“오늘은 더 무서운데 손을 잡고 가면 안 될까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인선이가 아가씨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아가씨가 발이 아프다며 잠시 쉬었다 가자 하였다.

호젓한 산길에서 그것도 달빛 어스름한 밤중에 묘령의 아가씨와 단 둘이 앉아 있으니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게 느껴졌는지 마치 아가씨에게라도 들릴 듯하였다. 정말 인선이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는지 아가씨가 묘한 눈빛으로 인선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입맞춤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인선이는 숨이 멈추는 것 같았다. 난생 처음 아가씨와 입맞춤을 하노라니 마음은 물론이요, 몸마저도 공중에 붕 뜨는 기분이었다.

다음날부터 약속이라도 한 듯 인선이는 매일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고, 그러면 어김없이 아가씨가 산모퉁이 길목에서 인선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훈장 선생님이 인선이를 따로 부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애, 인선아. 요즘 무슨 일 있니? 얼굴빛이 까칠한 게 너무 무리한 것 아니니? 글공부도 좋지만 몸이 상하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란다.”

그러자 인선이가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하였다.

“나에게는 무엇이든 상담을 하도록 해라. 장차 큰 인물이 되려면 온갖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단다.”

그러자 인선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말하였다.

인선이가 매일 밤 묘령의 아가씨를 만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훈장 선생님이 깜짝 놀랐다.

“그, 그게 사실이냐? 구미호가 또 나타났단 말이야?”

“예? 구미호라구요? 에이, 스승님. 아무리 농담이라고 그런 농담을 하십니까?”

인선이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자 훈장 선생님이 되물었다.

“혹 입맞춤을 하다가 입속에서 구슬을 건네지 않던?”

그 말을 듣고 인선이는 기절할 뻔하였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입으로 구슬을 주고받는 것이 묘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매일 밤 아가씨와 입맞춤을 하면서 그녀가 건네주는 구슬을 다시 건네주는 것이 일이었다.

아, 자신이 매일 밤 만나 사랑을 나누었던 아가씨가 구미호라니...

“스승님, 그럼 저는 어찌해야 하나요?”

“피하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단다. 그러니 이렇게 해라.”

훈장 선생님은 인선이에게 또 다시 구미호를 만나거든 모르는 척하고 입맞춤을 하다가 구미호 가 건네주는 구슬을 삼켜버리라 하였다.

“그, 그러다 구미호에게 목숨을 잃는 것 아니에요?”

“구슬을 빼앗기면 구미호는 힘을 잃게 된단다. 그래도 혹 모르니 구슬을 삼킨 뒤 구미호가 당황하는 사이 신발을 벗어서 아가씨의 뒤통수를 힘껏 치도록 해라.”

 

그날 밤, 인선이가 밤늦게 글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어김없이 아가씨가 나타났다.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으로 있는데 아가씨가 다가와 입맞춤을 하였다. 구미호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도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훈장 선생님 생각이 나 순식간에 구슬을 삼켜버렸다. 구미호가 당황하더니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하였다. 인선이가 신발을 벗어 아가씨 뒤통수를 힘껏 내리치자 그대로 고꾸라져버렸다.

그런데 쓰러진 것은 아가씨가 아니라 꼬리가 아홉 달린 백여우였다.

천년 묵은 구미호는 그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을 홀려 그들의 기를 빼앗아왔다. 인선이의 기만 빼앗으면 사람이 될 수 있었는데 인선이에게 오히려 구슬을 빼앗기는 바람에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천년 묵은 구미호의 구슬을 삼킨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총명했던 인선이는 놀라운 지혜를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선이는 전국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유명한 지관이 되었다. 과거를 봐서 관리가 될 수도 있었지만 신분 때문에 승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지관이 되기로 결심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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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선이에게는 누이가 한 명 있었는데 군동면 평덕마을 배씨 집으로 시집을 갔다. 가까운 곳으로 시집을 갔기에 왕래가 잦았는지라 인선이 오누이는 예전처럼 지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인선이가 누이에게 아버지 묘자리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자신이 평소에 봐둔 명당이 있는데 그곳에 아버지 묘를 쓰면 후손들이 부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선이 누이가 욕심이 생겼다. 친정아버지 대신 시아버지 묘를 그곳에 쓰게 되면 자신의 아이들이 나중에 부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인선이 몰래 그곳에 시아버지 묘를 옮겨버렸다. 인선이는 하는 수없이 다른 곳에 아버지를 모실 수밖에 없었다. 인선이 누이의 계략대로 명당에 묘를 쓴 뒤로 평덕마을 배씨 집안이 큰 부자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덕마을에 늙은 스님이 탁발을 왔다. 벼락부자가 된 인선이의 누이는 시주승을 문전박대하였다. 그러자 말없이 돌아서서 나가던 스님이 혀를 끌끌 차면서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논 가운데 있는 장고바위가 없으면 더 큰 부자가 될 텐데...”

그러자 인선이 누이가 달려가 스님을 붙잡고 물었다.

“아니, 스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장고바위라니요.”

“시아버지 묘를 잘 써서 부자가 된 것 같은데 그렇지요?”

인선이 누이가 깜짝 놀라 그렇다고 대답하자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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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기, 저 논가에 있는 장고바위가 그 명당의 기운을 누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는데 예서 머무르고 있는 것이지요.”

그 말을 들은 인선이 누이가 사람들을 불러 당장 바위를 깨뜨렸다. 그러자 그 바위 사이에서 파랑새 두 마리가 나오더니 그대로 700여m 떨어진 연꽃방죽에 빠져 죽어버렸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인선이 누이의 집안은 얼마 가지 못해 망해버렸다고 한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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