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정절의 표상 꽃무덤

한국설화연구소
2024-12-23 15:39
장성설화

옛날 옛적 장성군 북일면 문암마을에 화월이라는 아주 예쁘고 마음씨 고운 딸이 살았다. 화월에는 병든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는데 얼마나 효심이 깊었는지 장성 고을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어느 덧 화월이의 나이가 차서 제법 아가씨 티가 나자 고을 총각들이 너도 나도 욕심을 내는 바람에 화월이네 집에는 연일 중매쟁이가 들락거렸다. 심지어 어떤 총각들은 화월이 집 근처를 얼쩡거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화월이는 그 어떤 중매에도 응하지 않았다. 오직 병간호를 하며 아버지를 모시고 살겠다는 말뿐이었다. 그러니 뭇 총각들이 안달이 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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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장성고을에 새로운 사또가 부임하였다. 신관 사또는 중전마마와 먼 친척이라는 것을 내세워 포악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래서 부임하는 곳마다 원성이 자자할 정도로 탐관오리 가운데 탐관오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신관 사또는 부임하자마자 주지육림에 파묻혀 연일 기생을 끼고 놀기에 바빴다.

그런 류의 탐관오리들이 그러하듯이 제 아무리 예쁜 기생일지라도 며칠을 가지고 싫증을 내었다. 그러니 아전들은 사또 수청을 들 기생을 물색하는 것이 일과가 될 정도였다.

급기야 더 이상 새로운 기생을 들이지 못한 아전이 사또에게 봉변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너 따위가 감히 나를 능멸하려는 게냐!”

“아니, 사또 어찌 이러십니까?”

“도대체 이래가지고야 술맛이 나겠느냐? 내가 누군 줄 정녕 모르는 게야!”

사또 앞에서 벌벌 떨던 아전이 급기야 화월이 이야기를 꺼냈다.

“저... 그게... 화월이라는...”

화월이 이야기를 들은 사또의 얼굴이 활짝 펴지더니 당장 화월이를 데리고 오라 명하였다. 사또의 명을 받은 아전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화월이 집으로 갔다. 그러나 막상 화월이를 불러내고는 아무런 말도 못하였다. 제 아무리 사또가 포악하다 할지라도 효심이 지극한 화월이를 강제로 끌고 갈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혀를 끌끌 차며 관아로 돌아간 아전에게 돌아온 것은 사또의 불호령뿐이었다.

“화월이를 데리고 오지 않으면 너도 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라!”

목숨의 위험을 느낀 아전이 어쩔 수 없이 화월이를 찾아가 사정을 하였다.

“이보게. 자네가 가지 않으면 내가 사또한테 당할 수도 있네. 제발 나를 봐서라도 관아로 따라가 주게.”

화월이는 자신이 가지 않으면 애꿎은 아전이 희생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순순히 아전을 따라갔다.

화월이를 보자마자 사또가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음흉한 미소를 날렸다.

“듣던 대로 미색이로구나. 이런 촌구석에 저런 미색이 숨어 있었다니... 어서 이리 데려오너라!”

강제로 화월이를 자신의 곁에 끌어다 앉힌 사또가 화월이에게 잔을 내밀며 술을 따르라 명하였다. 잠시 사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화월이가 묵묵히 술을 따랐다. 그런데 사또가 갑자기 화월이를 끌어안더니 입맞춤을 하려 하였다. 그러자 화월이가 사또를 뿌리친다는 것이 그만 사또의 얼굴에 상처를 내고 말았다.

“아니, 이 년이! 네가 감히 죽고 싶은 게구나! 살고 싶다면 순순히 수청을 들어라!”

상처를 만지작거리던 사또가 이번에는 아예 화월이를 덮치려 하였다. 그러자 화월이가 도망을 치기 위해 벌떡 일어나며 사또를 밀쳤는데 사또가 그만 뒤로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다.

화가 극에 달한 사또가 소리쳤다.

“저 년! 저 년을 당장 목을 베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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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옛날이라 하여도, 그리고 아무리 죄가 중하다 하여도 함부로 사람을 죽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보통의 경우 그렇다는 것이지 예외가 있었다. 지금의 사또가 바로 그러하였다. 자신의 뜻에 맞지 않으면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사또의 눈에 살기가 뻗쳤기 때문에 아전도 사또의 부당한 명을 어길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서슬이 퍼런 사또의 명으로 결국 화월이는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화월이의 목을 베는 순간 이상하게도 갑자기 안개가 사방에 자욱하더니 화월이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하늘에서 빨간 꽃송이가 계속해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사또는 물론이고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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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화월이가 무참히 살해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화월이 아버지는 병든 몸을 이끌고 딸을 찾아 헤매었으나 끝내 시신을 찾지 못하였다. 그런데 화월이가 죽었다는 자리에 마치 무덤처럼 꽃무더기가 쌓여있는 것이 아닌가. 화월이 아버지는 그 속에 화월이가 묻혀 있다고 생각하고 목이 터지게 딸을 부르다가 그 옆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

절개의 표상이었던 꽃무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취가 사라졌지만 화월이의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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