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보성의 명의 김동의와 수군통제사

한국설화연구소
2024-12-23 13:08
보성설화

옛날 보성군 조성면 대동마을(큰골)에 명의로 소문난 김동의라는 분이 살았다. 본관이 김해인 김 의원은 다 죽어가는 사람도 살려낸다고 소문이 날 정도로 남해안 일대에서는 손꼽히는 명의였다.

당시 여수에 수군통제사로 부임한 장군이 있었다. 내직에 있다가 전운이 짙어지자 수군통제사로 파견이 되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가족과 떨어져 살아서 그런지 항시 소화가 안 되고 속이 답답하였다. 그래서 하루는 부관에게 물었다.

“배가 이렇게 체한 것 같고 소화가 안 되고 그러니 업무를 보기가 힘드오. 어디 용한 의원 있으면 불러주시오.”

그러자 부관이 장졸들을 시켜 여기 저기 명의를 수소문하였다. 통제사가 성격이 괴팍하다고 벌써부터 소문이 자자하여 내심 긴장을 하고 있던 터라 웬만한 의원을 소개해줘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몇 몇 의원이 왔다가 별 효과가 없자 통제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보성에 정말 용한 의원이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이번에는 진짜 믿을 수 있는 의원인가?”

부관이 잠시 멈칫 하다가 뭔가를 결심한 듯 말하였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다 죽어가는 사람도 살려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당장 모셔올까요?”

그러자 통제사가 부관의 말을 막으며 말을 하였다.

“아니오. 내 직접 가야겠소. 당장 앞장서시오.”

그렇게 해서 여수에 있는 통제사 일행이 보성으로 달려가 김동의 의원 댁을 찾아갔다. 그런데 정말 용한 의원인지 문 앞에 환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 부관이 나서서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문지기가 막아섰다.

“접수를 한 다음에 순서를 기다리셔야 합니다.”

누가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도 문지기조차 앞을 막는 것을 보면 보통은 아닌 듯 보였다. 하지만 통제사 눈치가 보여 부관은 큰 소리로 문지기를 나무랐다.

“아니, 이분이 누구신지 모른단 말이오! 감히 통제사를 가로막다니!”

부관의 호통 소리에 문지기가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안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리자 다시 막아섰다.

“병에는 귀천이 없는 법이오! 누구든지 순서를 어기면 나를 만날 수 없소.”

그 말에 통제사가 버럭 화를 낼 듯하더니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부하들을 진정시켰다.

“듣고 보니 옳은 말이로다. 내 잠시 기다릴 터이니 그리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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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종2품 통제사인지라 문지기가 한쪽에서 잠시 기다릴 곳을 내드렸다. 잠시 후 통제사 차례가 돌아와 김 의원과 마주하였다. 그런데도 김 의원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보통의 환자를 대하듯 물었다.

“어떻게 오셨소.”

너무도 기가 막혔지만 병증으로 시달린 지 워낙 오래 되어 통제사는 꾹 참고 고분고분 대답하였다.

“먹은 것이 소화가 안 되고 항상 속이 갑갑합니다.”

생각과는 달리 고분고분하게 대답하자 김 의원이 통제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다.

“옷차림을 보니 장군이신 것 같은데, 뭐 하시는 분이신가요?”

“내 수군 통제사로 있소이다.”

“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아파서 왔는데 이것저것 개인 신상에 대해 묻자 통제사는 다시 화가 치밀었지만 이내 눈빛을 누그러뜨리고는 말을 하였다.

“과거에 급제한 후 줄곧 내직에 있다가 이번에 통제사가 되어 처음으로 지방으로 왔소이다.”

그러더니 김 의원이 통제사의 맥을 짚어보았다. 진맥을 해 보니까, 체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왜 체했는지를 알기가 힘들었다. 여수에서 여기까지 올 정도면 여수 인근의 용하다는 의원들에게 다 보였을 텐데, 다들 그 원인을 몰랐으니 여기까지 왔을 터. 김 의원이 잠시 궁리를 하다가 다시 말을 하였다.

“그럼 지금 여수에서 근무를 하시는 겁니까? 내 장군께서 일 하시는 여수를 직접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진료는 커녕 여수로 가봐야겠다는 말에 통제사는 말문이 막혔지만 그래도 용하다는 의원인지라 믿고 지켜보기로 하였다. 그렇게 해서 통제사 일행과 김 의원 일행이 함께 여수에 있는 수군통제영으로 갔다.

통제영에 가서 이것저것 살피더니 김 의원은 통제사에게 자리에 누워 있으라 하였다.

“내 돌아가서 분석을 해보고 약을 지어 놓을 테니 5월 말쯤이나 사람을 보내시오.”

그때가 2월 중순이었는데 5월 말이라면 근 100일이나 후에 약을 찾으러 와라는 것이었다.

“아니, 당장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석 달 열흘이나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이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장군. 장군의 병은 현재로서는 백약이 무효입니다. 약재도 약재이지만 그때쯤 되어야 약재가 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1년 가까이 시달린 것 서너 달 더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통제사는 의원이 이르는 대로 5월 말까지 기다리기로 하였다.

드디어 기다리던 5월 말이 되었다. 음력으로 5월 말이니 가장 더울 때였다. 그래도 장군 체면에 평복을 입을 수는 없고 장군복을 입고 가자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더구나 여수에서 보성까지는 말로 달려도 꼬박 반나절 이상 걸리는 200리 길이었다.

통제사 일행이 김 의원 집 앞에 도착해 보니 어찌 된 일인지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대문을 두드리며 불러도 대답 조차 없었다.

사실은 통제사 일행이 도착하기 전에 김 의원이 하인들에게 오늘 통제사 일행이 올 것이니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던 것이다.

석 달 열흘을 기다려 약을 타러 온 것이기에 완력을 쓸 수도 없는 일이라 부관이 나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의원께서 오늘 통제사 어른의 약을 주신다기에 여수에서 예까지 왔는데 어찌 문을 안 열어주는 것이오!”

그런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급기야 부하들이 대문을 박살이라도 낼 기세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대문이 열리더니 문지기가 나왔다.

“아니, 날씨도 더워 죽겠는데 문도 안 열어주고 이 무슨 무례한 짓이오!”

부관이 호통을 치는데도 문지기가 못 들어오게 하자 문 앞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난리법석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저 안에서 의원이 가만히 앉아서 부채를 착착 부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못한 통제사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말에서 내리더니 옷을 벗어 제치고는 문지기를 다짜고짜 패버렸다. 그리고는 대문을 부수다시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의원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통제사를 안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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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 오시었소? 이리 와 앉으시오.”

들어갈 때는 다 때려 부술 요량이더니 통제사가 김 의원을 보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앉았다. 한참을 통제사를 바라보던 김 의원이 물었다.

“어찌 많이 더우신가요??”

‘덥기만 해. 이 자식아! 사람 죽겠구만!’

속으로는 울화가 치밀었지만 통제사는 어찌된 일인지 나긋나긋하게 말하였다.

“정말 더워 죽겠소이다. 빨리 처방이나 해주시오.”

통제사의 독촉에는 답도 없이 김 의원이 문지기를 시켜 물을 갖고 오게 하였다. 그러자 문지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물동이를 가져왔다.

“장군, 날씨도 더운데 물 좀 마시지요.”

“아니, 무슨 물을 동이로 마시란 말이오?”

“장군이 물 한 그릇 가지고 되겠습니까? 그래도 말로 마셔야 갈증이 풀리지.”

아닌 게 아니라 날씨도 덥고 속도 타고 그랬는지 바가지로 물을 마시는데 한정이 없었다. 급기야 동이 채 물을 바닥을 냈다. 장군이 물동이를 비우자 의원이 말하였다.

“이제 가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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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서 예까지 뙤약볕에 200리 길을 달려왔는데 물 한 동이 주고는 가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아까와는 달리 속이 무단이 편하였다. 그러자 김 의원이 다시 통제사에게 가라고 일렀다.

“아니, 약을 줘야지 갈 것 아니오.”

아까와는 달리 통제사의 말투는 상당히 부드러졌다.

“아이 그냥 가란 말이오.”

통제사와는 달리 김 의원의 말투가 반대로 강해졌다.

“아니, 이보시오. 어찌 약도 안 주고 그냥 가라 하시오?”

통제사가 하도 사정을 하니까 그때서야 의원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것이 아니라 장군은 내직에 있다 보니 회 같은 것을 먹어본 적이 없을 것이오. 그런데 여수에 오니까 부하들이 회를 대접했을 것이오. 그런데 고기비늘이 식도에 걸려서 문제가 생긴 것이오. 거기에는 아무리 무슨 약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까 물로 딱 씻어버렸으니 인자 가면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오.”

결국 오뉴월 땡볕에 땀을 흘리게 하고 문지기로 인해 울화가 치밀게 한 후 물 한 동이를 들이키게 하고서야 통제사의 식도에 걸린 고기비늘이 빠져나갔던 것이다. 이 일로 인해 김동의는 그 명성이 더욱 자자하게 되었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 이 이야기는 순천대학교 총장을 지낸 故 최덕원 선생님께서 채록한 설화에서 기본 뼈대를 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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