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약사의 노인예찬 저것은 나가 아니여!
손님 중엔 약을 조제 해간 후 한 달 후 오셔서 약이 부족 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가끔 있다. 하루에 한 번 드시는 약은 문제 발생이 거의 없지만 아침에 한 봉, 저녁 한 봉 따로 드시는 분들이 짝이 다르다고 따지(?)는 경우가 간혹 있다.

“한 달분을 지어갔는데 오늘 아침에 본께 아침 약은 다 떨어져불고 없는디 저녁 약은 다섯 봉이 남아 있소. 아침 약을 저녁 약에 맞춰주쇼.”
“그래요? 아침 약은 유념해서 잘 드셨는데 혹시 저녁 약은 깜빡 잊고 안 드신 거 아녀요?”
“얼레 .뭔소리! 나는 이날 평상 약은 한 번도 안 잊어 불고 꼬박꼬박 묵었는디!”
약사가 잘못 시어서(셈해서) 부족하다고 막무가네로 우기는 분이다.
“그럼 어르신이 언제 지어갔는가 봅시다. 컴퓨터 보니까 이번 달 1일에 지어가셨는데 오늘이 새달 1일이니까 정확히 한 달이 지났는데요?”
“잘 드셨다면 아침 약도 떨어지고 저녁 약도 다 드시고 없어야되는데요”하면 다행히도 “내가 잘못 묵었능가보네”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한사코 당신이 정확히 드셨다고 부족한 약을 채워주라고 우기실 때는 난감할 따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런 분이 다음에 또 똑같은 내용으로 문제를 일으킨다. 이런 경우는 다음에 문제 제기하지 않도록 약을 드릴 때 같이 온 동네 사람 두 분 정도를 증인으로 세우고 몇 번 확인시켜드리고 틀림없다고 다짐을 받는다. 그런데 우리 약국에서 이 정도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란다.
후배가 운영하는 곳의 종합병원 앞 약국들은 이런 경우로 너무 힘들 때가 많다고 한다. 특히 종합병원 앞 약국들은 장기 처방(3개월 분) 조제와 비싼 약이 많아 문제 발생 시 정신적, 물질적 피해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CCTV를 설치한 것은 아니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영상녹화를 확인해주는 방법 밖에 없다고 한다.
간혹 이런 환자들에게 CCTV로 확인해보자고 하면 “뭐 땜시 봐야 되느냐?”, “내가 약을 안받았는데 거짓말한다고 나를 의심하는 것이냐?”, “나 그런 사람아니다”, “불쾌하다” 등 반응도 다양하다고 한다.
한번은 50대 중반 여성분이 3달분 약 3통을 가져가셨는데 다음날 20대 중반의 시동생과 함께 와서 약 1통이 없다고 하시더란다. 그래서 시동생과 환자분께 영상 녹화된 것을 보여드리고 분명히 3통을 받고 가방에 넣는 것까지 확인해드렸는데도 “집에 가서 보니 한 통이 없는데 그럼 어떡하란 말이냐?” 하면서 한 통 더 주라고 막무가네로 우기셨단다. 시동생은 영상 속 내용이 맞다는 것을 알지만 형수 눈치를 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결했냐고 물어보니, 하도 난리를 피워서 기다리는 손님도 있고 약국이 소란스러워 손님들이 불안해할까봐 할 수 없이 한 통 더 드리고 마무리했다고 했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제가 아는 후배한테 이런 경우가 있었다하니까, “형님! 그분은 그래도 CCTV라도 봤네요? 저는 그런 문제로 영상녹화를 어떤 어르신께 보여드렸는데 자신의 얼굴이 나오는 영상을 보고도 ‘저 사람은 나가 아니여, 나 아니랑께!’” 하더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CCTV도 무용지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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