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오봉산 칼바위 전설

한국설화연구소
2024-12-23 15:34
보성

보성군 득량면에 있는 오봉산은 매끈하면서도 힘차게 뻗은 능선과 그 끝에 날카롭게 치솟은 칼바위가 강함과 부드러움의 조화를 보여준다.

30여m에 달하는 칼바위는 참으로 기묘하여 마치 손바닥을 위로 세우고 손가락들을 모아서 45도 각도로 굽힌 모양 같기도 하고, 선 채로 깊숙이 허리 굽혀 인사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끝이 날카로운 칼 모양이기도 해서 보통 칼바위라 부른다. 그러나 칼바위라는 이름이 붙은 데는 다른 이야기가 있다.

 

아주 오랜 옛날 불운국(不雲國 현 보성군 복내면 일대)에 사는 다로라는 청년이 있었다. 불운국은 삼한 가운데 마한의 54 소국에 속하였는데, 나라가 많다 보니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질 않았으며 삼한일통(三韓一統)을 꿈꾸는 젊은이들도 늘어났다.

어느 날, 다로가 꿈을 꾸는데 머리가 하얀 도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삼한일통의 꿈을 꾸느냐. 그 꿈을 이루려거든 오봉산에서 3년 동안 무예수련을 하도록 해라!”

“3년 동안 꼬박 말인가요?”

“그래, 3년! 반드시 3년을 채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꿈에서 깬 다로는 그날 이후 가족과 이별하고 오봉산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오봉산을 찾기는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의 득량면 근처를 지나던 다로는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가 다섯 개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물어보았다.

“이보시오. 저기 저 산이 오봉산이오?”

“그렇소만, 그건 왜 묻는 것이오?”

다로는 대답도 없이 단숨에 오봉산으로 올라갔다. 산은 나지막한데 기암괴석이 즐비한 게 보통 산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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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부터 다로는 3년을 작정하고 무예훈련에 돌입하였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또 다른 겨울이 오고 하여도 별 다른 느낌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3년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훈련을 계속하였다.

어느 정도 무예실력이 쌓이자 다로는 어느 날부턴가 바위를 칼로 내려치기 시작하였다. 놀랍게도 오봉산 기암괴석들이 쩍쩍 벌어지며 여기저기로 파편이 튀기 시작하였다. 3년 가까이 되자 그 파편이 온 산에 가득할 정도였다.

 

그렇게 3년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다로가 무예훈련을 하고 있는 석실 근처에 웬 아가씨가 나타났다.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호젓한 산속에서 보는 미모의 아가씨에게 다로는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아가씨 역시 건장하고 훤칠한 다로에게 마음을 빼앗겼는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다로는 빤히 쳐다보았다.

“이런 산중에 어찌...”

“그러는 도령께서는 이 산속에서 무얼 하고 계시는지요?”

“저는 3년을 기약하고 무예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무예훈련은 해서 뭐하게요?”

아가씨가 묻자 다로가 잠시 주춤하다가 말하였다.

“저에게는 삼한일통의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그러자 어찌된 일인지 아가씨가 시무룩해지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닌가.

“아니, 아가씨 어찌 눈물을...”

“흑흑. 사실은 제 오빠도 그런 꿈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런데 전쟁에 나갔다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듣고 보니 안 되었는지 다로가 측은한 눈길로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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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참...”

“그럼, 저는 이만...”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는 다로를 뒤로 하고 아가씨가 돌아서서 산을 내려가려 하였다.

“저, 아가씨... 잠깐만...”

무엇이 아쉬웠는지 다로가 아가씨를 불러세웠다.

“어디 사는 누구신지...”

빤히 쳐다보는 아가씨에게 다로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알아 무엇 하게요. 도령 역시 전쟁에 나갈 것이 분명한데...”

아가씨가 내려가려 하자 다로가 다급한 듯 달려가 아가씨를 돌려세우더니 다짜고짜 끌어안고 말하였다.

“아가씨. 아가씨가 원한다면 전쟁에는 나가지 않을 게요. 그러니 제발...”

그때였다. 토끼눈을 뜨고 다로는 바라보던 아가씨가 갑자기 백발이 성성한 도사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쯧쯧. 한낱 여인에 빠져 삼한일통의 꿈을 저버리다니. 그래서야 어찌 사내대장부라 할 수 있단 말이냐!”

알고 보니 다로를 시험하기 위해 도사가 아리따운 아가씨로 변하여 나타나 유혹을 하였던 것이다.

도사가 사라진 뒤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 다로가 홧김에 칼로 바위를 내리쳤는데 칼이 그만 부러지고 말았다. 3년 동안 수련한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좌절한 나머지 다로는 근처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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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위 아래는 사방을 높은 바위벽이 둘러싼 석실이 있다. 50여 명이 들어설 수 있는 넓이로 바위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외부와 단절된 독방과 같다.

 

세월이 흘러 통일신라 때 일이다. 원효(元曉 617~686) 대사가 은퇴를 하고 전국을 돌던 중 오봉산에 이르러 칼바위를 보고 감탄을 하고는 그 아래 석실에 머물며 불도를 닦았다고 한다.

 

원효대사는 날마다 용추폭포에서 목욕재계하고 석실에서 수도를 하였는데, 이곳을 떠날 때 칼바위 주변의 신비스러운 경관을 못내 아쉬워하면서 불상을 새겼다고 한다.

이와는 달리 주민들은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기 전에 왜구를 물리치러 이곳에 머물며 성을 쌓고 그의 얼굴을 바위에 새겼다고 하여 태조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여 희미하기는 하지만 마애불인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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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로가 떨어져 죽었다는 낭떠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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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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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폭포

칼바위 일대에는 거대한 바위들이 엉켜 있고 개구리바위, 호랑이바위, 버선바위 등 갖가지 바위들이 있다. 큰 바위들이 많이 엉켜 있기 때문에 돌을 던져 넣으면 득량만 바다로 나온다는 마당굴과 정재굴, 독굴 등 굴도 많다.

득량(得糧)이란 양식을 얻는다는 뜻으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이 지역에서 군량미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바다(득량만)를 막아 넓은 간척지가 생기고 많은 곡식을 얻게 되어 생긴 이름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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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서 바라본 칼바위.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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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위 바위벽 새겨진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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