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와 함께 (108)

넘겨 보는 설화 백운산에 서린 삼정(三精) 설화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864년(신라 경문왕 4년) 희양현(지금의 광양)에 흉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자 희양현감이 도선국사를 모셔왔다. 신라 말기 승려이자 풍수의 대가로 잘 알려진 도선국사는 옥룡사 연못에 있는 아홉 마리 용을 물리치고 희양현에 평화를 가져왔다. 옥룡사에 머물고 있는 도선국사에게 희양현감이 찾아왔다. 제대로 된 감사의 뜻을 표하지도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풍수에 능한 도선국사에게 한 마디라도 더 들어볼 요량이었던 것이다. 한참을 차를 마시며 뜸을 들이던 현감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대사님, 우리 희양현에 내려오신 지도 벌써 1년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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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홍복사 금란 낭자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에 있는 운암산에는 수도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그런데 오랜 옛날 이곳에는 홍복사(洪福寺)라는 절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홍복사에는 금란 낭자에 얽힌 전설이 전해온다. 꽃을 시샘하는 소슬바람이 간지럽게 불어오던 어느 날 밤, 뒤뜰에는 배나무 꽃이 때마침 춘절을 맞아 탐스럽게 피었고 동쪽 하늘엔 짙은 어둠을 헤치고 둥근 보름달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젠 밤도 제법 깊어서 사방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한데 적막을 깨치고 어디선가 나뭇가지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활짝 핀 배나무 옆쪽에서 사람 그림자가 하나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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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오천 냥 사또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옛날 어느 고을에 사또가 새로 부임하였다. 전임 사또가 임기가 남았는데도 갑자기 이임하더니 채 열흘도 안 되어 기다렸다는 듯이 후임 사또가 온 것이다. 반 년 남짓 근무하였던 전임 사또는 마치 부모님 대하듯이 고을 주민들을 대하였다. 주민들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아전들을 나무라는가 하면 어려운 집에는 구휼을 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전임 사또들처럼 뇌물을 받기는 커녕 신관 사또는 오히려 자신의 녹봉으로 노인들에게 잔치를 베푸는 등 그야말로 청백리의 표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임을 한 것이다. 나중에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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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인걸과 아미선녀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옛날 지리산 기슭 함양군 마천면 하정(下丁)마을에 인걸이라는 사내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냥을 하며 살고 있었다. 하정마을은 아래정쟁이라고도 부르는데, 세 마을 중 아래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인걸의 사냥 솜씨가 나쁘지 않아 두 식구가 먹고 살만은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인걸이 사냥을 가는데 어디선가 예쁜 무지개가 비췄다. 그렇게 예쁜 무지개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사냥을 갈 때마다 무지개가 비췄다. 그것도 하루 세 차례씩 꼬박꼬박 무지개가 섰다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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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곡성의 효자 박원모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1661년(현종 5년) 곡성군 오산면 가곡리에서 박원모가 태어났다. 밀양 박씨 호동의 외아들로 태어난 원모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다. 아들을 얼마나 끔찍하게 위하였는지를 잘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하루는 원모가 서당에 다녀오다 엎어져 무릎을 다쳤다. 조그마한 개울을 건너다 엎어진 것이다. 그러자 다음날 원모의 아버지가 개울에 나무로 다리를 놓았다. 원모가 다시는 개울을 건너다 엎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박씨에게 ‘잘못하면 아들 버릇 나빠진다’며 좀 더 엄격하게 키우라고 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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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해달호(海達號)의 진실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9세기 때 장보고가 청해진을 거점으로 일본과 중국 사이의 중개무역을 한 이후 우리나라는 점차 해양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장보고와 같은 걸출한 인물이 사라진 탓도 있었지만 신라 내부의 분열상이 심각하였기 때문이다. 후삼국시대를 거쳐 왕건에 의해 고려가 건국된 이후부터 간헐적으로 왜구가 출몰하더니 충렬왕 이후에는 노골적으로 서남해안을 침략하였다. 대부분의 왜구를 격퇴하기는 하였지만 이처럼 왜구가 날뛴 데는 해상권을 장악하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었다. 고려 말 우왕 때의 일이다. 화통도감의 제조로 임명된 최무선은 왜구를 격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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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청년 장군 이대원과 죽죽녀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여수시 삼산면에 있는 손죽도(巽竹島)의 원래 이름은 손대도(損大島)였다. 본디 손대도라도 이름이 붙은 것은 이대원(李大元) 장군과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 최연소 만호인 이대원 장군이 죽자 섬 주민들이 모두 슬픔에 잠겼고, 섬에 그렇게 많던 대나무가 모두 말라 죽었다. 그후 오늘날까지 대나무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대(大)자를 죽(竹)자로 바꾸고 손(損)자는 손(巽)으로 바꾸어 그 본 뜻을 흐리게 하였다. 고흥 쌍충사에 있는 이대원 장군 영정 이대원 장군은 1566년(명종 21년) 지금의 평택시 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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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때리는 효도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옛날 보성군 조성면에 지지리도 가난한 부부가 살았다. 가난도 가난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아이가 없어서 더 근심이 컸다. 하지만 워낙 금슬이 좋아서 서로가 서로에게 부담을 주는 언행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늘그막에 아들이 하나 생겨서 두 사람은 천하를 다 가진 것처럼 기뻤다. 쉰둥이를 낳았으니 얼마나 예뻤겠는가.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그런 아들을 낳고는 두 사람은 더욱 열심히 일을 하였다. 전에는 몰랐지만 아들을 낳고 보니 아들을 위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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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용섬의 슬픈 사랑 이야기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고흥 금산면 명천마을 앞 바다에는 작은 섬이 하나 있다. 용섬이다. 용섬에는 커다란 노송 한 그루가 있는데, 노송에는 예로부터 용의 승천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아주 옛날 이 마을에 다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처녀가 살았다. 무남독녀 외동딸이라 다정이는 부모님은 물론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어느 해 봄, 다정이가 뒷산에 올라 봄나물을 캐고 있었다. 아직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인지 여기저기 취며 고사리 등의 나물이 다정이를 유혹하였다. 한참 동안 나물캐기에 정신이 없던 다정이가 인기척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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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부저리 범명당 이야기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광양시 봉강면 부저리 뒷산에 묘가 하나 있는데, 범명당이라 부른다. 범명당은 효자묘라고도 부르는데, 장성 출신 남만갑(南萬甲)이라는 효자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온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장성 어느 마을에 의령 남씨 3대가 살고 있었다. 환갑이 다 된 할아버지 응복(凝福), 불혹이 가까워오는 아버지 두연(斗連) 부부, 그리고 두연의 아들 만갑이 그들이었다. 3대 모두가 독자인지라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각별하였다. 특히 아버지와 아들을 대하는 두연 부부의 효심과 사랑은 인근 고을에서는 소문이 자자할 정도였다. 응복과 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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