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와 함께 (108)

넘겨 보는 설화 피아골 종녀촌의 슬픈 사연

2024년 12월 2일 한국설화연구소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지리산 피아골 깊은 골짜기. 도무지 사람이 살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 마을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마을과 다를 바 없는데 여인들만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미욱 언니! 나랑 빨래하러 가지 않을래?” 얼핏 보기에도 어려보이는 여자 아이 하나가 이야기하자 미욱이라 불린 여자 아이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대답하였다. “아냐, 소연아. 오늘은 언니가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래? 그럼 나 혼자 다녀올게.” 여자 아이가 빨래바구니를 들고 혼자 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오며 소리쳤다. “소연아!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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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능가사와 유구태자 보현

2024년 12월 2일 한국설화연구소

고흥 팔영산 밑에 있는 능가사(楞伽寺)는 419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하여 보현사(普賢寺)라 했다고 한다. 그러나 5세기 초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보기에는 믿기 힘든 구석이 있다. 5세기 경 유물이 발견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 스님인 아도화상의 생존연대(3세기)와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백제 말기 때의 일이다. 보현사 근처에 승아라는 이름을 가진 아가씨가 살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행실이 바른데다 외모까지 곱상하여 인근에 소문이 자자하였는데, 자라면서 그 미모가 더욱 빛을 발하여 ‘임금은 몰라도 승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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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백도(白島)의 슬픈 사랑

2024년 12월 2일 한국설화연구소

여수 거문도에서 배로 20분 거리에 있는 백도는 국가명승지 제7호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명소 가운데 명소이다. 백도는 섬이 워낙 많아서 백 개쯤 될 것 같다고 백도(百島)라 하였는데, 아무리 세어 봐도 백 개가 못된다고 하여 백(百)자에서 위에 있는 한 일(一)자를 빼 백도(白島)라 부른다고 한다. 백도는 실제로는 39개의 무인도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옥황상제의 막내아들 환백(桓白)과 용왕의 딸 아리수에 얽힌 슬픈 전설이 전해온다. 아주 먼 옛날 옥황상제가 늦둥이를 낳았다. 옥황상제는 막내의 이름을 환백이라 하였다.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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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시어머니 멸시하던 며느리

2024년 12월 2일 한국설화연구소

벌교 어떤 마을에 아성이라는 이름의 5대 독자가 살았다. 5대 독자다 보니 얼마나 끔찍하였을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어렸을 때야 그렇다지만 장가갈 때가 다 되었어도 오냐 오냐 하였다. 특히 아성이 어머니는 더욱 그랬다. 아성이 어머니 역시 4대 독자에게 시집을 와서 한 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여 쫓겨날 뻔하였다. 그러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아들을 낳아 쫓겨나기를 면한 어머니는 아성이 일이라면 버선발로 뛰어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금이야 옥이야 키운 아들을 장가보내기가 만만치 않았다. 애지중지하고 키운 아들의 눈이 높아 웬만한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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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장사 발자국과 삼산

2024년 12월 2일 한국설화연구소

중국 전국시대 때, 초(楚)나라 위왕(威王: ?~BC 327)이 장자를 부르러 대부 두 사람을 보냈다. 그러나 낚시를 하고 있던 장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듣기로 초나라에는 신령스런 거북이 있는데, 죽은 지 이미 3천년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임금은 그것을 비단으로 싸서 보관하고 있다 하는데, 당신이 거북이라면 죽어서 뼈만 남아 존귀하게 되고 싶겠소,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고 싶겠소.” 이 말을 들은 위왕은 며칠 동안 낙담을 하여 정사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세수를 하려다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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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망덕 전어

2024년 12월 2일 한국설화연구소

가을은 전어의 계절이다. ‘가을 전어는 며느리 친정 간 사이에 문 잠그고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어는 가을이라야 제 맛이다. ‘가을 전어 머리에는 깨가 서 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며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도 가을 전어의 가치를 잘 나타내주는 말이다. 서유구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 “전어는 기름이 많고 맛이 좋아 상인들이 소금에 절여 서울까지 가지고 와서 파는데, 사는 사람들이 돈을 따지지 않기 때문에 전어(錢魚)라고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유명한 조헌은 그의 문집 ‘동환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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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용소(龍沼)와 하연 감사

2024년 12월 2일 한국설화연구소

구례 산동면 원촌마을에 용소라 불리는 연못이 있다. 용소에는 하연 감사에 얽힌 전설이 전해온다. 하 감사의 전설이 깃들어있는 용소. 산동온천을 가다보면 오른쪽에 있다. 고려말기였던 1376년, 우의정을 지낸 하자종(河自宗)과 진주 정씨 사이에 셋째 아들 연(演)이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특하였던 하연은 가문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일찍이 과거 준비에 들어갔다. 연의 나이 불과 열네 살이던 1389년, 당시 가장 학식이 높았던 포은 정몽주(1337~1392) 선생께 사사하였다. 연의 할아버지가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 하윤원(河允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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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도깨비살과 마천목 장군

2024년 12월 2일 한국설화연구소

충정공 마천목(馬天牧) 장군은 장흥 출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장흥과 인접한 보성군 회천면 모원마을에 탄생설화가 전해온다. 모원마을이 장흥 마씨 집성촌인 것을 보면 근거가 없지는 않은 듯 싶다. 나뭇잎에 새겨진 천목(天牧) 보성군 회천면 모원마을에 참샘이란 샘이 있다. 마천목 장군 어머니 신씨가 아들을 낳고 처음으로 밥을 지으려고 참샘으로 물을 길으러 갔다. 그런데 샘에 나뭇잎이 떠 있어 그 나뭇잎을 피해 물을 길으려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침이 늦어질까 걱정이 되어서 할 수 없이 그냥 물을 길어 왔다. 물을 길으러 간 며느리가 늦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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