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와 함께 (108)

넘겨 보는 설화 천 년을 기다린 명당

2024년 12월 17일 한국설화연구소

고려초, 지금의 고흥 도덕면 한적마을에 박씨 성을 가진 가난한 어부가 살고 있었다.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고 그렇다고 남의 것을 탐하지도 않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다. 박씨는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데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모시는지 동네 사람들이 다들 칭찬하느라 입이 마를 정도였다. 박씨는 매일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리지만, 파도가 세게 치거나 안개가 짙은 날이면 마을 뒤에 있는 중뫼산에 올라 밭을 일구었다. 밭이라도 몇 마지기 일구어야 그나마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난한 박씨의 밭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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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와 수석 관음보살과 선재동자

2024년 12월 17일 허석 한국설화연구소소장

세계적인 수석박물관을 준비중인 진돗개 전도왕 박병선 집사가 소장하고 있는 수석 가운데 불교관련 수석도 적지 않다. 이 가운데 일부를 설화와 엮어 소개한다. 사진 제공 : 雲山 박병선 뫼 산(山) 위에 있는 사찰 (가로34㎝×높이21㎝×폭13㎝, 중국) 남도의 정원 도시 순천이 순천만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사실 순천은 종교의 도시이다. 조계종과 태고종의 본산인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어 예로부터 불교의 성지일 뿐 아니라 근대에 들어와서는 남한의 예루살렘이라 할 정도로 기독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특히 선암사는 유홍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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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마녀목의 슬픈 전설

2024년 12월 3일 한국설화연구소

여수시 화정면 개도에 있는 화산마을 앞에는 커다란 정자나무가 하나 있다. 수령이 400년이 넘는 느티나무인데 마을사람들은 그 느티나무를 마녀목(馬女木)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숙종 때의 일이다. 당시에는 화양면을 곡화(曲華)라고 했는데 말을 사육 관리하는 목관(牧官)이 있었다. 화양면 일대는 물론 인근 백야도, 개도, 제도, 낭도까지 나라에서 제공한 말을 사육하여 목관에게 제공하였다. 그러나 말이 병에 걸려 죽거나 잘 크지 않으면 목관으로부터 질책이 대단하였고, 때로는 그 손해를 배상해야 했다. 목관 역시 다른 지역 목관들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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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까막골의 구미호

2024년 12월 3일 한국설화연구소

순천시 낙안면 금산(金山)마을이 생기기 전 이곳에는 까막골이라는 곳에 조그마한 촌락이 있었다. 까막골이라고 이름이 붙은 것은 숯을 굽고 질그릇을 굽던 가마가 많이 있어서 ‘가마골’이라고 부르던 것이 ‘까막골’로 된 것이다. 까막골에서는 숯을 굽고 질그릇을 구워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하지만 까막골에는 과부가 많아 과부골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몇 집 살지 않는 조그마한 마을에 과부가 여덟 명이나 된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까막골에 과부가 여덟 명이 된 데는 사연이 있었다. 순천시 낙안면 금산마을 맞은편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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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탐욕스러운 형의 최후

2024년 12월 3일 한국설화연구소

조선 후기 구례 문척면 어떤 마을에 박씨 형제가 살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우애가 깊었지만 유독 큰아들을 예뻐하는 할머니나 부모님 때문에 동생은 항시 뒷전이었다. 어려서는 형도 그런 동생을 위해주는 것 같더니 나이가 들면서 점차 형은 동생에게 군림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오냐 오냐 하니까 형의 심성이 조금씩 비뚤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이가 들어 둘 다 장가를 가게 되었다. 형은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동생은 옆 마을로 분가를 하였다. 말이 모시고 사는 것이지 사실은 부모님이 형 내외를 보살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동생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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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까막과부가 부자가 된 사연

2024년 12월 3일 한국설화연구소

옛날 고흥 포두면 정암마을에 송씨 성을 가진 청상과부가 살았다. 동강에서 시집 온 송 여인은 그다지 미색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행동거지가 반듯하여 기품이 있었다. 하지만 시집을 오자마자 까막과부1)가 되고 말았다. 장가를 가자마자 아들이 죽자 며느리를 잘못 얻은 탓이라며 시아버지는 며느리 얼굴을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한 술 더 떠 ‘서방 잡아먹은 X’이라며 며느리 구박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시부모의 태도가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송 여인은 시집살이를 하는 자신이 한 없이 서러웠다. 하인이라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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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오동도와 하이란 부부

2024년 12월 2일 한국설화연구소

여수의 상징인 오동도는 멀리서 바라보면 그 생김새가 마치 오동잎처럼 보인다고 해서 오동도라 한다. 한때 이순신 장군이 이 섬에 대나무를 심게 한 후 대나무가 무성하자 대섬이라고도 부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옛날에는 오동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하여 오동도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오동나무가 무성하였던 아주 먼 옛날, 봉황으로 변하여 옥황상제의 심부름을 나온 사신 아홉 명이 남해 용왕을 만나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하늘나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동도 위를 지나다 오동나무 열매를 보고는 모두 다 그 열매를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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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쇠둠벙쏘와 구녕바구

2024년 12월 2일 한국설화연구소

순천 서면에 있는 추동마을은 예로부터 순천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다. 추동마을을 거치지 않고는 한양으로 가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특히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들은 추동마을이 하나의 통과의례였는데, 여기에는 하나의 전설이 있다. 아주 오랜 옛날 추동마을 사람들은 원래 청소 쪽으로 약 300m쯤 떨어진 ‘괴샅’에 살았다. 괴샅은 ‘괴사터’의 줄임말로, 아마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호환을 입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싶다. 괴샅마을 사람들이 이무기를 쫓아버려 호환이 생겼다고 전해지는 쇠둠벙쏘. 근처에 산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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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입에 물면 안 보이는 나뭇잎

2024년 12월 2일 한국설화연구소

옛날 벌교 어느 마을에 게으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아성이와 소붕이라는 두 친구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일하고 있을 때 두 사람은 맨날 일도 안 하고 나무그늘에서 잠이나 자는 것이 일이었다. 그래서 동네에서는 두 사람을 내쫓아버리자고 이야기가 돌 정도로 그렇게 게으른 사람들이었다. 어느 해 초가을, 그러니까 8월쯤 되었는데 그날도 여전히 두 사람은 나무그늘 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까치가 깍깍 울었다. 아성이가 눈을 떠 보니까 나뭇잎이 떨어지더니 희한하게도 입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아성이가 막 일어나자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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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옥룡사와 백룡거사

2024년 12월 2일 한국설화연구소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희양현(지금의 광양)에 날만 새면 간밤에 돼지가 물려갔다느니 소가 죽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나돌았다. 어느 마을에는 괴질이 돌아 사람이 여럿 죽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또 다른 마을에서는 멀쩡하던 아들이 부모를 살해했다는 끔찍한 이야기마저 흘러나왔다. 새로운 현감이 부임한 전후로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 하여 민심이 흉흉하였고 조정에서도 감사를 나온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러니 현감이 골치가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날이면 날마다 현감이 측근들을 불러 모아 대책을 논의하였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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