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벼락 맞은 이무기 바위
여수 삼산면 초도리 의성마을에서 잠등을 넘어 여마지미 끝에 가면 붉은색을 띤 절벽이 있다. 그 절벽에서 약 20m 정도 떨어진 곳에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50~60m 높이의 돌기둥이 있는데, 이곳은 예로부터 이무기가 벼락을 맞은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꾸미기]초도 벼락맞은 이무기.jpg](/gears_pds/editor/news-35204aef-b292-4b7f-98e5-b200c28d6a49/1736508056020.jpg)
아주 먼 옛날, 아무런 근심과 걱정 없이 살아가던 이 마을에 언제부터인가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우연한 일이라 생각하였는데 해가 바뀌어도 변화가 없자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대책을 논의하였다.
원인을 알 수 없는데 대책이 나올 리 만무하였다. 그러니 아무리 밤늦도록 대책을 논의하여도 누구 하나 뾰족한 방법을 내놓지 못하였다. 그러다보니 대책을 논의한다고 모여가지고 날이면 날마다 술이나 마시고 신세한탄이나 하는 것이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허름한 옷을 입은 노인이 들렀다. 정이 많은 마을사람들이 생면부지의 노인네에게 정성스레 음식을 차려주자 노인은 그야말로 눈 깜짝 할 사이에 음식을 다 먹어치웠다.
허기가 가셔서 그런지 제법 나이가 지긋한 노인인데도 안광이 형형한 것이 예사 사람 같지는 않아 보였다.
“인심도 좋고 물산도 풍부하여 걱정거리 하나 없을 것 같은데 다들 얼굴이 밝지 않으니 무슨 일이 있는 게요?”
노인이 묻자 마을사람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동안 마을에 일어났던 사건 사고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러자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노인이 마을 이곳저곳을 살펴보더니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을 근처에 이무기 두 마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었었다. 그런데 한 마리는 마을사람들을 도와주는 반면 다른 한 마리는 마을사람들을 괴롭히는 이무기라는 것이다.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해가 되었다. 착한 이무기가 마을사람들을 괴롭히는 이무기를 막다가 혈투가 벌어지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깊은 밤이면 굉음이 일기도 하고 때로는 가축들이 이유 없이 죽어나가는가 하면 때로는 아무 일 없이 지니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곁에서 듣고 있던 꼬마 아이 하나가 노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가 착한 이무기를 도와주어야 할 것 아니에요?”
꼬마 아이의 말을 듣던 노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였다.
“애야.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할 일은 없단다. 그것은... 그것은 어쩌면 운명처럼 정해진 것일 지도 모른단다. 착한 이무기가 이길지 악한 이무기가 이길지...”
“그러면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단 말이에요?”
“아니지. 착한 이무기가 이기도록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어야겠지.”
그날 밤부터 마을사람들은 합심하여 기도를 하였다. 착한 이무기가 악한 이무기를 물리치고 마을에 평화가 오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착한 이무기는 자신이 조만간 용이 되어 승천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치 텔레파시처럼 하늘에서 착한 이무기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런데 기뻐해야 할 착한 이무기는 기뻐하기는커녕 우울한 표정이었다. 사실은 걱정이 앞섰다. 자신이 승천하고 나면 남은 이무기가 마을사람들을 괴롭힐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천 년을 기다려온 승천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일. 착한 이무기는 며칠을 고민하다가 자신이 승천하기 전에 악한 이무기를 제압하기로 마음먹었다.
운명의 밤이 되었다. 마을사람들을 지키려는 착한 이무기와, 어떻게든 상대를 제압하여 자신이 하늘에 오르려는 악한 이무기 사이에 서로가 양보할 수 없는 운명의 한판 승부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마을사람들 역시 그러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폭풍전야처럼 음침한 고요가 마을을 감사고 돌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이무기 두 마리가 목숨을 건 싸움을 하는 바람에 굉음이 일고 돌풍이 부는가 하면 달빛마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마을사람들은 다들 집안에 틀어박혀 착한 이무기가 이기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착한 이무기는 잠시 마을사람들을 힘들게 할지라도 이 밤이 새기 전에 악한 이무기를 처치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혼신의 힘을 다해 악한 이무기를 제압하려 들었다. 그러나 악한 이무기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악한 이무기의 눈이 다른 곳을 응시하였다. 악한 이무기의 시선을 따라간 착한 이무기의 눈에 마을의 꼬마 아이가 들어왔다. 어른들과 달리 꼬마 아이는 이무기들의 싸움이 궁금해 도저히 방안에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몰래 바닷가에 나와 이무기들의 싸움을 몰래 훔쳐보고 있었던 것이다.
꼬마 아이를 발견한 착한 이무기가 깜짝 놀라 다시 악한 이무기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눈에 들어온 것은 악한 이무기의 음흉한 눈빛이었다. 사태를 한눈에 파악한 착한 이무기가 꼬마 아이에게 날아가 감싸 안자마자 악한 이무기의 불화살이 착한 이무기를 덮쳤다.

비록 꼬마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기는 하였지만 뜻하지 않은 부상을 당한 착한 이무기가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악한 이무기가 한 발 한 발 다가서며 최후의 일격을 날리려 하였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마른하늘에 시커먼 구름이 끼더니 소낙비가 퍼붓는 것이었다. 동이 트려다가 다시 먹구름이 끼며 시꺼먼 어둠이 사위에 깔린 것이다. 그러자 악한 이무기는 “아! 이제야 나도 용이 되는구나!” 하고 기뻐하였다. 그리고는 몸을 사려 하늘을 향해 힘껏 솟구쳐 올랐다.
그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무시무시한 뇌성이 일고 번개가 치더니 악한 이무기는 그 자리에서 돌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주변 바위는 악한 이무기의 피로 인해 붉게 물들었다. 지금도 이무기 바위 근처에는 그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악한 이무기가 돌로 변하자마자 다시 동이 트기 시작하였다. 그 순간 갑자기 착한 이무기가 용트림을 하더니 순식간에 솟구치며 하늘로 올라갔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꼬마 아이의 눈에 착한 이무기가 점처럼 작아지더니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그날 이후 마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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