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여의주를 삼킨 잉어

한국설화연구소
2024-12-23 15:28
담양설화

우리나라 5대 강의 하나인 영산강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영산강 인근에 언제부턴가 ‘걱정 없는 노인’ 이야기가 파다하게 퍼졌다. 소문에 따르면 그 노인은 여태껏 세상 걱정 모르고 살고 있다 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반신반의하였다.

“세상에 걱정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말이 그렇겠지.”

“그래도 근거 없이 그런 이야기가 돌겠어? 다른 사람에 비해 뭔가 특별한 게 있을 테지.”

소문이 돌고 돌아 나주 고을 원님에게도 이 이야기가 전해졌다. 아전이 원님에게 그 소식을 전하자 원님이 발끈 하며 소리쳤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근심걱정이 없다니 말이 될 소리인가?”

“그게... 제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소문이...”

“당장 그 노인을 찾아 데려오도록 하시오!”

담양설화 - 영산강전설 01.jpg

영산강 황포돛배

원님이 호통을 치자 아전이 부리나케 뛰쳐나가 사람들을 시켜 소문의 주인공을 찾아 데려오도록 하였다.

얼마 뒤 정 노인이라는 사람이 왔다. 소문의 주인공이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근심걱정이 없어 보였다.

“그대가 걱정 없이 산다고 하는데 그게 정말이오?”

“그렇습니다. 남들이 어찌 생각할지는 몰라도 저는 근심도 걱정도 없습니다.”

정 노인이라는 사람이 정말 그렇다고 이야기하자 원님은 은근히 화가 났다. 명색이 한 고을의 원님이 자신도 원님은 근심과 걱정으로 머리가 무겁고 마음이 편한 날이 하루도 없는데 평범하기 짝이 없는 노인이 조금도 근심 걱정이 없다니...

정 노인을 한참 쳐다보던 원님이 물었다.

“그대는 가족이 어찌 되오?”

정 노인에게 자녀가 5명이 있었다. 5남매를 다 키워 혼인까지 시켰는데 아들은 모두 효자요, 며느리는 모두 효부였다. 딸도 그랬고 사위도 그랬다. 먹고 사는 것도 남부럽지 않았다. 정 노인은 그저 매사가 흡족하였다. 가는 곳마다 융숭한 대접을 받으니 정 노인에게 그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는 듯 실눈을 뜨고 바라보던 원님이 점차 정 노인을 부러운 듯 바라보더니 이윽고 탄복을 하며 말하였다.

“듣고 보니 정말 근심 걱정이 없겠구려.”

정 노인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원님은 처음에는 믿지 못하였던 것을 반성이라도 하듯 진실로 탄복하고 칭찬하였다.

“어지러운 세상에 근심 걱정 없이 산다는 것이 참으로 기특한 일입니다. 기념으로 내 소중히 여기고 있는 구슬을 줄 것이니 잘 보관하시기 바랍니다.”

“사또, 귀하디귀한 구슬을 제게 주시다니 황공하옵니다.”

“이 여의주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대에게 드리기는 하지만 혹 내가 이 구슬을 보고 싶을 때에는 그대를 부를 것이니 가지고 오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 노인은 원님에게 여의주를 선물로 받고 물러 나왔다.

 

정 노인을 내보낸 후 원님은 즉시 사람을 불러서 뭔가를 분부하였다. 원님의 명을 받은 자가 급히 정 노인의 뒤를 따라 나갔다.

집으로 돌아가던 정 노인이 얼마쯤 가다가 나루를 건너게 되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루터에 나타나 뱃사공의 귀에다 대고 무엇인가를 소곤거리더니 돈을 손에 쥐어주고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조금 전 원님에게 분부를 받은 바로 그 사람이었다.

정 노인이 배에 오르자 사공은 배를 저어가면서 말을 걸었다.

“노인장 얼마나 기쁘시오?”

“뭐가 말이오!”

갑자기 뱃사공이 아는 체를 하자 정 노인이 당황한 듯 정색을 하며 말하자 뱃사공이 큰 소리로 말하였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노인장이 원님으로부터 상을 받은 것을 누가 모를 줄 아시오!”

뱃사공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정 노인이 뭐라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뱃사공이 정 노인에게 구슬을 보여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지 말고 노인장. 뭐 구슬이 닳아지는 것도 아니니 한 번만, 한 번만 보여주시오. 네?”

뱃사공이 구슬을 보여 달라 하자 정 노인은 기분이 찜찜해졌다. 그러나 뱃사공의 인상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데다 자신 역시 원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여의주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배가 강 중간쯤 갈 때에 주머니 속 깊숙이 간직한 여의주를 꺼내서 손바닥 위에 굴려 보았다. 빛을 받아 오색이 영롱한 참으로 신묘한 구슬이었다.

“세상에, 그렇게 신묘한 구슬이 다 있습니까?”

탄복한 뱃사공이 노를 젓다 말고 정 노인의 손에 있는 여의주를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어디 한 번 만져봅시다’ 하고 다가왔다.

얼떨결에 뱃사공에게 구슬을 빼앗겼는데, 뱃사공이 갑자기 비틀거리다가 쓰러지면서 그만 여의주를 물속으로 빠뜨려버렸다.

[꾸미기]담양설화 - 영산강전설 만화 01.jpg

“으아악! 이를 어떻게 하지? 노인장. 이를 어찌 하면 좋겠소.”

뱃사공이 닻을 내린 채 깊은 물속을 몇 번이고 들어가 보았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정 노인의 표정은 참담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온 정 노인은 생전 처음으로 근심 걱정으로 몸져눕고 말았다. 자식들과 며느리들이 연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도 대답 없이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정 노인의 집에는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한편, 뱃사공이 정 노인의 구슬을 강 속에 빠뜨렸다는 소식이 곧바로 원님에게 전해졌다. 그러자 원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정 노인에게 사람을 보내 구슬을 보고 싶으니 한 달 안에 가지고 오라는 명을 전했다. 가뜩이나 시름에 빠져 지내던 정 노인은 원님이 주신 여의주를 잃어버렸다는 자책감에 식음을 전폐하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정 노인의 집에 잉어장수가 찾아와 팔다 남은 잉어 한 마리를 사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냥 돌려보내려던 며느리가 갑자기 시아버님께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잉어를 사서 간장을 발라 맛있게 구워 밥상을 차려 시아버님께 들고 들어왔다.

“아버님, 일어나셔서 진지 좀 드세요. 잉어구이도 있으니 드시고 기운도 차리시구요.”

며느리가 밥상을 차려 들어와도 돌아누워 있던 정 노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차린 것은 고맙지만 생각 없다.”

“제발 그러지 마세요. 아범들이나 손주들 생각은 안 하세요? 아버님 걱정 때문에 다들 잠도 못자고 밥도 못 막고 있단 말이에요.”

며느리의 말에 정 노인은 할 수 없이 일어나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며칠 만에 곡기를 넘기려니 잘 넘어가지 않는지 깨작거리기만 하자 보다 못한 며느리가 손을 잉어구이를 뜯어 발라 밥그릇 위에 놓아주었다. 그런데 정 노인의 눈이 밥그릇이 아니라 잉어에 꽂혔다. 잉어 뱃속에서 뭔가가 반짝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젓가락으로 파헤쳐보니 놀랍게도 강을 건널 때 빠뜨렸던 여의주가 나왔다.

[꾸미기]담양설화 - 영산강전설 만화 02.jpg

하늘의 도우심으로 여의주를 찾은 정 노인이 원님께 찾아가 여의주를 내놓자 원님이 깜짝 놀랐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분명 구슬을 강에 빠뜨렸다고 하였는데... 그런데 어찌 구슬이...’

보고 싶다던 여의주를 가져왔는데도 원님의 얼굴이 굳어지자 정 노인이 의아해 하며 원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원님이 물었다.

“혹 이 구슬을 잃어버린 적이 없는가?”

그러자 정 노인은 자초지종을 사실대로 고했다.

그 말을 들은 원님은 ‘과연 당신은 하늘이 낸 분이오!’ 하면서 자기가 일부러 일을 꾸몄다는 사실을 정 노인에게 털어놓고 후한 상까지 내렸다.

집으로 돌아온 정 노인은 잉어를 잡았다는 광난강(廣難江)가에 글방을 세우고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서당 이름을 잉어를 사온 며느리의 이름을 따서 영산서원(榮山書院)이라고 지었는데, 그때부터 이 강을 영산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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