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만연폭포에 서린 슬픈 사랑
화순군 화순읍에는 만연산(萬淵山)이 있다. 본래 나한산(羅漢山)이었는데 만연사(萬淵寺)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만연사는 1208년(고려 희종 4년) 만연(萬淵)선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만연사 창건과 관련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만연선사가 무등산 원효사에서 수도를 마치고 조계산 송광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무등산의 중봉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지금의 만연사 나한전이 서 있는 골짜기에 이르러 잠시 쉰다는 것이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자다가 꿈을 꾸게 되었는데 꿈속에서 16나한이 석가모니불을 모실 불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놀라 꿈에서 깨어 사방을 둘러보니 어느새 눈이 내려 백설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만연선사가 누운 자리만은 눈이 녹아 김이 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 토굴을 짓고 수도하다가 만연사를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만연(萬淵)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조금은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바로 만연폭포와 관련된 설화가 그것이다.
만연선사가 만연사를 창건하였다는 때로부터 훨씬 이전인 삼국시대 때의 일이다. 백제 개로왕 때 잉리아현(仍利阿縣 지금의 화순) 어느 마을에 만석(萬錫)이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다. 용모가 수려한데다 성품까지 좋아 만석이는 인근에 사는 아가씨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만석이가 살고 있는 이웃마을에 연순(淵順)이라는 아가씨가 살고 있었다. 빼어난 미모는 아니었지만 예쁘장한 얼굴에 사람 좋은 미소가 배어 있어 뭇 사내의 가슴을 졸이게 하였다.
어느 날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한눈에 서로를 좋아하게 되었다. 사랑 고백을 한 뒤로는 멀게 만 느껴졌던 것이 하나같이 가깝게 되고 거추장스런 장애물로 여겨졌던 것들이 오히려 두 사람을 밀착되게 하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혼인을 약조하고 서로의 가족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처음에는 마뜩치 않게 생각하던 가족들도 만나 본 뒤에는 마음을 열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이 결혼을 하는 데에는 아무런 걸림돌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고구려에서 백제를 침공하였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조정에서는 백제 전역에 징집령을 내렸다. 물론 고관대작의 자제들이나 돈 있는 집안의 자제들은 이리저리 빠져나갔고 힘없는 백성들만 대부분 전쟁터로 내몰렸다. 만석이도 예외일 수 없었다.

결혼을 눈앞에 두고 전쟁터로 끌려나가야 하는 만석이의 심정은 비통하기 그지없었다. 연순이와 같이 도망을 칠까도 생각하였다. 그러나 여러 차례 전장에 나가본 경험이 있었던 만석이는 이번 전투도 대수롭지 않을 것이라 여겨 돌아와서 혼례를 치를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전쟁이 너무 길어졌다. 심지어 그 전쟁의 와중에 개로왕마저 전사를 하고 말았다. 불행하게도 만석이 역시 다리를 다쳐 불구가 되고 말았다. 불구가 되다 보니 지금처럼 교통편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만석이가 상처를 치료하고 돌아오는 데는 꼬박 반 년이 걸렸다.

그 사이 연순이네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전쟁터로 나간 만석이가 돌아오지 않자 죽었다고 생각한 연순이네 부모는 연순이를 탐내던 박부자집 도령에게 연순이를 시집보내기로 결심하였다. 시집가기 전까지 연순이는 눈물로 호소하였다. 만석이가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혼례를 치르고 말았다.
그런데 혼례를 치른 날 오후 만석이가 돌아왔다. 그것도 한쪽 다리가 잘려나간 불구의 몸으로 말이다. 불구가 된 만석이를 본 연순이의 마음은 흔들렸다. 잠시라도 흔들렸다는 것이 미안하였는지 연순이는 그날 밤 초례를 치르기도 전에 시댁을 빠져나와 만석이에게로 향하였다.
만석이와 함께 도망을 친 연순이는 나한산 고개를 넘다 지쳐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뒤에서는 박부자집 하인들이 횃불을 들고 쫓아왔다. 한쪽 다리가 없는 만석이와 도망을 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망설이던 연순이가 만석에게 말하였다.
“서방님, 이승에서 못 다 이룬 사랑, 저승에서라도 꼭 이루어요.”
그러자 만석의 눈이 흔들렸다.
“그러지 말고 돌아가시오. 차라리, 차라리 그대라도 행복하게 사시오.”
“저 혼자 어찌 행복하게 산단 말이에요. 그럴 수는 없어요.”
눈물로 가득 찬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뒤에서는 횃불이 어둠을 갈랐다. 그때였다. 두 사람은 이심전심으로 손을 꼭 맞잡은 채 폭포 아래로 몸을 날렸다. 어둠 속에서도 폭포 아래 연못은 하얀 포말을 허공으로 날리었다.
훗날 만석이와 연순이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이 폭포를 만연폭포라 불렀다 한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만석이와 연순이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는 만연폭포.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폭포는 너무 빈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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