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용왕도 인정한 명의(名醫) 이진원

한국설화연구소
2024-12-23 14:03
해남설화

해남군 마산면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 가운데 용왕이 벼슬을 내렸다는 명의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이진원(李眞源 1676~1709)이다. 그는 충청감사를 지낸 이덕성(李德成 1655~1704)의 아들로, 24세 도던 해인 1699년(숙종 25년) 증광시(增廣試)1)에 급제하여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2) 를 지낸 인물이다.

학문도 학문이지만 그는 의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래서 소문이 나 전국 각지에서 병을 고치러 그에게 찾아오는 사람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하루는 한 여인이 배가 아프다며 찾아왔다. 얼마나 아팠으면 배를 움켜쥐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한참을 진찰을 하던 이진원이 여인의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연유는 알 수 없지만 부인의 창자 가운데 일부가 손상되었습니다. 방치하였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겠습니다.”

그러자 여인의 남편이 사색이 되어 물었다.

“그럼 어찌해야 하리까?”

“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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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이 난색을 표하자 남편이 돈 때문에 그러는 줄 알고 애걸복걸하였다.

“이보시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으니 부디 목숨만 살려주시오.”

그런데도 이진원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남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조용한 곳으로 남편을 이끌고 간 이진원이 남편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부인의 목숨을 살리려면 배를 갈라야 하는데 믿고 맡길 수 있겠소?”

이진원이 배를 가른다 하자 남편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세상에 배를 갈라서야 어찌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단 말이오. 도리어 목숨을 더 빨리 앗아가는 것 아니오?”

“그러니 믿고 맡길 수 있겠느냐는 것이오. 지금 이대로 놔두면 어차피 죽을 목숨이오.”

한참을 고민하던 남편이 이진원의 손을 잡으며 말하였다.

“나리만 믿을 테니 부디 목숨을 살려주시오?”

“좋소이다. 대신...”

말을 하다 말고 이진원의 시선이 마당에서 놀고 있던 개에게로 향하였다.

“대신 내가 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토를 달지 마시오. 그렇게 할 수 있겠소?”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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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말을 마치자 말자 이진원은 하인을 시켜 마당에 있는 개를 잡도록 하였다. 그러더니 개의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 부인의 창자에 연결하였다. 그 광경을 목격한 남편은 눈이 뒤짚힐 지경이었다. 그래도 다른 도리가 없기에 이진원을 믿고 지켜보았다.

며칠 뒤 놀랍게도 부인이 깨어나 멀쩡하게 걸어다녔다고 한다.

 

개 창자로 사람을 살렸다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갈 즈음, 하루는 세상에서 보기 드물게 화려하고 속이 비치는 긴 옷을 입은 사람이 하인과 함께 이진원을 찾아왔다.

이진원이 보기에도 예사 사람 같지 않아 사랑채로 들어오라 일렀다. 그런데도 그는 마당에 서서 한시가 급하다며 올라오지를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올라올 틈조차 없단 말이오.”

“저는 용왕의 신하입니다. 용궁에 급한 일이 생겨 나리를 모셔가고자 이렇게 왔습니다. 부디 저와 함께 용궁에 가주십시오.”

“땅에 사는 사람이 어찌 용궁에 갈 수 있단 말이오.”

그러자 다급해진 용왕의 신하가 실토를 하였다.

“실은 용왕마마께서 위독하십니다. 용궁의 역술가가 이르기를 용왕마마의 병은 나리가 아니고서는 고칠 사람이 없다 하였습니다. 가는 방법은 걱정하시지 않아도 되니 제발 함께 가주십시오. 이렇게 간절히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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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의 신하가 간곡하게 부탁하자 이진원이 그를 따라 용궁에 가게 되었는데, 어찌 가게 되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눈 깜짝할 사이에 용궁에 도착해 있었다.

이진원이 용왕의 병세를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도무지 병의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나타나면 살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잇던 용왕이 실망하였는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이진원을 다그쳤다.

“나를 고치지 못하면 너도 죽을 수밖에 없으니 알아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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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이 다그치자 깜짝 놀라 뒷걸음치던 이진원의 눈에 용왕의 입이 들어왔다. 그랬다. 다른 곳은 다 살펴보았는데 용왕의 입은 살펴보지 않았던 것이다. 서둘러 가까이 다가가 용왕의 커다란 입을 벌려 보았다. 그러자 용왕의 입속에는 질경이풀이 뿌리를 내려 용왕의 아가미에 붙어 있었다.

“질경이풀이 용왕마마의 아가미에 뿌리를 내려 호흡이 곤란해진 것입니다.”

병의 원인을 찾은 이진원이 용왕에게 고하자 용왕 곁에 서 있던 신하가 물었다.

“그러면 어찌 해야 나을 수 있겠소.”

미간을 찌푸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이진원이 신하에게 말하였다.

“이 병에는 백마의 오줌만이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 뭍으로 나가 백마의 오줌을 구해오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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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이 백마의 오줌을 구해오겠다 하자 다들 이진원을 의심하였다. 사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거짓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왕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하였다.

“다녀오시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대를 붙들어놓는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고, 설령 그 말이 거짓이라 한들 그대를 죽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용왕의 허락을 구한 이진원이 신하를 따라 뭍으로 나와 백마의 오줌을 구해 돌아왔다. 그리고 그 오줌을 용왕의 입에 뿌리자 신기하게도 용왕이 벌떡 일어나 용상에 앉는 것이 아닌가.

살아난 용왕이 이진원에게 말하였다.

“내 목숨을 살린 그대를 용궁에서 가장 높은 벼슬을 내리겠소.”

그러자 이진원이 손을 내저으며 사양하였다.

“용왕마마, 호의는 고맙지만 본디 제가 살고 있던 뭍으로 다시 나가게 해주는 것이 최고의 벼슬입니다.”

그리하여 용왕의 병을 치료한 이진원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천하의 명의로 이름을 날렸던 이진원이 정작 자신의 건강은 책임지지 못하였는지 34세 되던 해 가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그만 요절하고 말았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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