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아차동 미륵 가족 이야기
함평군 대동면 덕산리에 있는 아차동(牙次洞)은 본래 아차동(衙次洞)이었다고 한다. 관아에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나팔을 불면 그 소리를 듣고 다른 마을로 전해주는 마을이라 하여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돌미륵이 여러 개 있는데 미륵에는 옛날부터 신비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랜 옛날, 평화롭던 이 마을에 언제부턴가 비라도 내리는 음산한 밤이면 마을 옆 대밭에서 소름끼치는 해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대나무 잎에 스치는 빗소리를 잘 못 들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음산한 것이 도무지 밤잠을 청하기가 힘든 지경이었다.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다들 궁금해 하고, 비오는 날 대나무 숲에 가보기를 바랐지만 정작 자신이 가고자 하는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가 나서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자 마을에서 가장 용감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무영이가 나섰다.
“제가 앞장설 테니 함께 가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무영이가 앞장선다고 해도 다들 선뜻 따라나선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분위기가 어색했는지 하나 둘 맞장구를 치기 시작하였고 이윽고 마을 사람들 모두 무영이를 따라가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어느 비오는 날 밤, 무영이를 앞세우고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대나무 숲으로 향하였다. 사람들이 많아 다들 의지하면서도 실은 하나같이 긴장감이 역력하였다. 그것은 무영이도 마찬가지였다.
마을 사람들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대나무 숲을 샅샅이 뒤졌으나 이상한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다만 돌미륵처럼 생긴 바위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무영이가 그 바위를 찬찬히 훑어보더니 말하였다.

“어라? 이 바위가 언제부터 있었지?”
하지만 그 바위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이 바위에서 나는 소리 아닐까요?”
무영이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다들 일제히 콧방귀를 끼며 말하였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무영이 역시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설마 그 바위가 울음소리를 낼 리 만무하였기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 더 이상 찾기를 포기하고 마을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마을을 향해 돌아서려는 순간 다시 한 번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누가 보아도 그 울음소리는 돌미륵 쪽에서 나는 소리가 분명하였다.

아차동 미륵할머니. 아래쪽으로 마치 손자들로 보이는 작은 돌이 네 개 서 있다.
하도 해괴하고 소름이 끼쳐 마을 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마을 사람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으신 할아버지가 경건하게 돌미륵 앞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엎드려 두 손 모아 빌기 시작하였다.
“미륵 할머니. 어리석고 죄 많은 저희들을 가엾게 여기사 허물을 용서하시고 우시는 연유를 말씀해주시옵소서.”

놀라운 일이었다. 할아버지가 빌고 나서 여러 차례 절을 하자 신기하게도 울음소리가 사라졌다.
그 날 밤, 할아버지 꿈에 미륵할머니가 나타났다.
“나는 너희 마을을 지키는 미륵할머니다. 그 동안 너희를 지켜주었건만 너희는 나를 너무나도 푸대접 하였노라. 더구나 가족과 떨어져 지내게 하니 서운하기 짝이 없구나. 내 너희에게 부탁이 있노라. 나를 가족 가까이 아늑한 자리에 집을 지어 안치해주면 너희 마을은 모든 재앙이 사라지리라.”

마을 중앙에 있는 아버지 미륵
마을 어귀에 있는 어머니 미륵
다음 날, 할아버지가 꿈 이야기를 마을 사람들에게 하자 마을에서는 회의가 벌어졌다. 해괴한 이야기를 믿느냐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손해 볼 일 없으니 그렇게 해보자는 주장이 강하였다.
결국 미륵할머니 바위를 대나무 밭에서 옮겨 좋은 자리에 제당을 짓고 모셨다. 그러자 비오는 말 대나무 숲에서 나던 울음소리가 더 이상 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끔씩 일어나던 좋지 않은 일도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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