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경도 여(呂)씨 이야기

한국설화연구소
2024-12-23 13:55
여수설화

지금으로부터 약 6백여 년 전 고려 말 공양왕 때의 일이다. 어느 해 여름, 좀처럼 인적이 드문 여수 경도 외동마을에 배가 닿더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렸다. 얼핏 보기에도 예사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내리자마자 경도 여기저기를 살피더니 사람들을 불러 성산에다가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 금은보화를 얼마나 많이 가져왔는지 마을 사람들은 집을 짓는 일을 하면서 평생 만져보기 힘든 돈을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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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은 선착장이 있는 외동마을에서 남쪽으로 약 5리쯤 떨어진 내동마을 앞에 있는데, 해발 약 100m 정도 되는 나지막한 산이다. 일행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은 미모의 여인이었다. 그녀를 대하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시종들로 보였다. 가끔 뭐라 지시할 때만 보일 뿐 그녀의 얼굴을 도무지 보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성산 위에는 4500평이나 되는 대지 위에 높이가 21m에 달하는 커다란 건물이 지어졌다. 그것은 건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성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큰 건물을 짓다보니 경도 사람들은 대부분 돈푼께나 만질 수 있었다. 뱃일을 하지 않아도 목돈을 만질 수 있었던 것이다.

 

몇 년을 뱃일을 해야 벌 수 있을 돈을 벌다 보니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주막에 모여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것이 일이었다. 그러다 술이 얼큰해지면 대개는 화제가 성에 사는 여인 이야기였다. 누구일까? 누군데 이 먼 곳까지 와서 저렇게 큰 성을 짓고 살까?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과 상대를 하지 않으려던 시종들도 점차 돌아갈 생각을 포기하였는지 섬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차츰 마을 사람들과 말도 섞고 때로는 어우러져 술을 마시기도 하였다.

 

누구 입에서 나온 것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돌고 도는 소문을 종합해 보면 성에 사는 여인은 함양 여(呂)씨 성을 가진 왕의 후궁이었다. 그런데 왕에게 미움을 사서 이 먼 경도까지 귀양을 오게 되었다고 한다.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어쩌다 왕의 미움을 받게 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니 후궁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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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서는 그녀가 왕 앞에서 실수로 방귀를 뀌어 유배를 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수로 방귀 한번 뀌었다고 유배를 보낼 것 같지는 않고,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을 퍼뜨린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다른 사연이 있는데 감추기 위해 일부러 그런 소문을 퍼뜨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여씨가 경도에 도착한 다음 해 봄에 그녀는 아들을 낳았다. 그녀가 궁을 떠날 때 이미 아기를 잉태하고 있었던 것이다. 왕자를 본 여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더니 개경으로 사람을 보내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한 달 가까이 지나서야 돌아온 시종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하였다.

개경에 변란이 생겨 이성계가 정권을 잡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왕(王)씨들이 벌써부터 옥(玉)씨니 전(全)씨 등으로 성을 바꾸는 지경이니 왕자를 낳았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자칫 잘못하다가는 오히려 화를 입을 수도 있을 것이라 하였다.

아들을 낳은 기쁨도 잠시,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였던 여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더니 자신의 성을 따서 아들의 성을 여(呂)씨로 지어주었다. 그가 바로 경도 여씨의 시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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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성산에는 당산이라 불리는 성터가 있는데, 일제 강점기 때까지만 해도 날씨가 흐리고 파도가 치는 밤이면 어디에선가 여인의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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