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이십 년 된 쑥떡

한국설화연구소
2024-12-23 13:55
보성설화

예전에 벌교에 양씨 3형제가 살았다. 아들 셋이 가까이 다들 모여 사는데 큰아들과 막내아들은 그나마 먹고 살만 한데 둘째가 먹고 살기가 팍팍했다. 어렸을 적에는 형제간에 우의가 대단했는데 각자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다 보니 자기 아이들이 우선이요, 자기 마누라가 우선이어서 형제 사이의 우의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제사가 돌아왔는데 둘째는 가진 게 없어서 뭘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였다.

“여보, 오늘 저녁에 우리 아버지 제사 아닌가. 그러니 제사 지내러 가소. 나는 일을 맡은 게 있어서 어쩔 수 없으니 혼자 가야겠네.”

둘째 며느리는 가뜩이나 없는 형편에 제사에 가면 구박을 당할 것이 뻔한데 그것도 혼자 가라니 서운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도 일을 한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알았어요. 그래도 일 끝나는 대로 빨리 와야 해요.”

말은 그렇게 헸지만 막상 남편이 일을 가버리자 둘째 며느리는 제사지내러 갈 일이 막막하였다. 형편이 어려워 제사라고 딱히 가지고 갈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리를 하던 차에 물 한 동이라도 이고 가야겠다 생각하고 물동이를 이고 큰집으로 가는데, 도중에 걱정이 태산 같았다. 아무래도 물 한 동이 이고 갔다가는 모욕을 당할 것이 너무나 뻔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집 대문 밖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다가 물을 엎질러버리고 도로 집으로 돌아갔다. 막상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래도 또 걱정이었다. 아버지 제사인데도 아무도 안 온다고 구박당할 것이 눈에 선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드러누워 멀뚱멀뚱 천정만 쳐다보고 있는데 남편이 돌아왔다.

“아니 이 사람아. 아버지 제사 지내러 간다는 사람이 왜 아직 집에 있는가?”

그러자 아내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아무리 아버지 제사라지만 빈손으로 어찌 간다요. 그래 물 한 동이 이고 갔다가 큰집 샐팎(대문밖)에 부어버리고 왔소.”

“그럼 아예 안 갔단 말이오? 그럼 나라도 지금 갈라네.”

그렇게 해서 둘째는 늦었지만 혼자 아버지 제사에 갔다.

“아니, 동생. 오늘 어디 갔다 왔나?”

“예, 형님. 일을 맡아놓은 게 있어서 일 하러 갔다 늦었소.”

“그런데 제수씨는 왜 같이 안 온 거여?”

“예, 집사람이 많이 아픈가 봐요. 어쩔 수 없이 혼자 왔습니다.”

그렇게 인사들을 나누고는 삼형제가 둘러앉아 술을 마시는데 형수가 떡을 내왔다. 안주 삼아 먹으라고 내놓는데 형하고 동생 떡은 보기도 좋고 맛있는 떡을 내놓는데 자기 앞에 준 떡은 보잘 것 없이 생긴 쑥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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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내가 없이 산다고 형수조차 나를 무시하는구나.’

그래서 술맛이 딱 떨어져서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둘째를 본 형이 둘째에게 권하였다.

“동생, 떡 좀 들소. 오랜만에 술도 한 잔 하고.”

그러자 동생이 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을 하였다.

“오늘 일 가서 밥을 어찌 많이 먹었던지 별로 생각이 없소. 술이나 한 잔 마실라요.”

그렇게 제사가 끝나자 형이 자기 부인한테 일렀다.

“어이, 이 사람아! 동생들 간다네. 뭣 좀 싸 주소.”

형수가 뭔가를 싸줘서 그놈을 가지고 집에 돌아왔는데 부인이 그때까지도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덩달아 아이들까지 함께 일어났다. 그래서 큰집에서 싸갖고 온 것을 펴 놓고 아이들을 먹였다. 그런데 둘째가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끄집어냈다. 쑥떡이었다.

“아니, 그게 웬 떡이에요?”

“그럴 일이 있네.”

둘째는 더 이상 말을 않고 쑥떡을 선반 위에 올려두고는 저만치 물러나서 잠을 청하였다. 좋은 일이 있었을 리 없는지라 아내는 그런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역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둘째는 일어나자마자 어디선가 꼬챙이를 만들어가지고 오더니 대여섯 개 되는 쑥떡을 꼬챙이에 꽂았다.

“뭐하려고 그렇게 쑥떡을 꼬챙이에 꿰고 있어요?”

그러자 둘째가 돌아보지도 않고 말하였다.

“세상에 엊저녁에 제사를 지내러 가니까 내가 없이 산다고 무시하는 것인지 형수가 차별을 하지 뭔가. 동생하고 형님 떡은 좋은 것을 담았더니만 나는 쑥떡만 담아주네. 저 쑥떡을 보고 독심을 품고 살라네.”

꼬챙이에 꿴 쑥떡을 묵묵히 선반 위에 올려놓는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마음도 편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 날 이후 두 사람은 틈만 나면 서로가 쑥떡을 가리키며 서로를 독려하였다.

“여보, 저 쑥떡 좀 보세요.”

조금만 느슨해지려 하다가도 쑥떡만 보면 두 사람은 허리띠를 바짝 죄고 열심히 일을 하였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일을 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한 십오 년 쯤 지나자 둘째 부부는 논을 이십 마지기 정도 사게 되었다. 그 와중에 정작 큰집은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아버지 제사 때만 되면 둘째가 제사 음식을 대부분 장만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제 형수가 둘째를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달라졌다.

“아이고, 우리 아제 이리 오시오. 어서 오시오.”

그래도 속은 있었는지 형수는 둘째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는 못하였다. 제사가 끝나자 둘째가 형에게 제안을 하였다.

“형님, 그 동안 형님이 제사를 모시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다음번에는 제가 한번 지내볼라요.”

“아, 그러소. 동생이나 나나 똑같은 자식 아닌가. 자네가 한번 지내보소.”

그렇게 해서 이듬해 제사는 둘째가 지내게 되었다. 둘째 부부는 음식도 푸짐하게 장만하고 술도 많이 준비하였다. 저녁이 되자 둘째가 아내에게 일렀다.

“오늘 저녁에는 형님 떡은 쑥떡만 담소. 나하고 동생 떡은 좋은 것으로 담고.”

드디어 제사를 지내고 나서 삼형제가 모여 술을 한 잔 하는데 계획한 대로 형 접시에는 쑥떡을 담아 내놓았다. 그런데 형은 쑥떡이고 뭐고 관계없이 마구 집어 먹었다. 그러자 둘째가 모르는 척하고 형에게 말했다.

“아니, 형님 편만 어찌 쑥떡이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둘째 며느리가 말을 받았다.

“어? 아까 애들 주려고 저기에 나 뒀드마는.”

분위기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했는지 형이 웃으면서 괜찮다고 손을 내저었다.

“좋은 떡, 나쁜 떡이 어디 있나? 쑥떡이 저 떡보다 더 맛있게 보이는구만. 아무 떡이라도 먹으면 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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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술자리가 파하고 나서 돌아갈 때가 되자 둘째가 형과 동생을 불러놓고는 한 이십 년이나 된 쑥떡을 내놓았다. 영문을 모르는 형이 물었다.

“아니, 동생. 그것이 뭔 약인가?”

한참을 살펴보던 막내도 거들었다.

“약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약도 오래된 약 같은데요?”

형도 동생도 둘째를 바라보며 빨리 말하라는 분위기였다. 그러자 둘째가 입을 열었다.

“이것은 약이 아니라 쑥떡입니다.”

쑥떡을 한 이십 년을 달아 매놓으니까 먼지가 끼고 말라비틀어져 그것이 마치 오래된 약처럼 보이기는 하였다. 둘째가 그 쑥떡을 쑥쑥 빼면서 말하였다.

“세상에 내가 없이 살 때는 우리 형수부터 나를 업신여겨서 형님이랑 동생 떡은 좋은 떡을 내주더니만 나는 쑥떡 몇 개 줍디다. 그래서 그때 그 쑥떡을 매달아놓고 그것을 보면서 살림을 모았소.”

둘째 말을 들은 형이 오랜만에 술을 한 잔 해서 그런지, 동생 보기가 민망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얼굴이 발갛게 물들어서는 큰소리로 말했다.

“내 오늘 자네 형수부터 당장 버려버려야겠네. 자네 형수가 그렇게 방정을 떠니까 살림도 망해버린 것이 분명하네.”

그러자 둘째가 형 손을 꽉 잡으면서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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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옛날이야기를 가지고 왜 그러시오. 만약에 형수를 버리면 나하고 형님하고는 남이오. 형수 아니었으면 지금까지도 제가 남의 품 팔러 다녔을 것 아니오. 그러니 우리 재산을 모아준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님이오.”

그렇게 형을 만류하고는 둘째가 방에 들어가더니 땅 문서를 가지고 나왔다. 논 스무 마지기 문서였다.

“형님, 저는 딱 다섯 마지기만 있으면 됩니다. 나머지 열다섯 마지기는 형님이 가져가서 아버지 제사도 잘 지내고 이제 그래야 할 것 아니오. 그러니 형수님을 버리면 되겠소?”

그렇게 해서 삼형제는 전보다 더욱 우의가 깊어져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 이 이야기는 순천대학교 총장을 지낸 故 최덕원 선생님께서 채록한 설화에서 기본 뼈대를 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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