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도술을 부리는 양맥수

한국설화연구소
2024-12-23 13:52
광양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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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술을 부리는 양맥수 이야기가 전해지는 광양 옥룡면 선동마을 전경.

지금부터 200여 년 전 광양 옥룡면 선동마을에 하동 정씨가 살았다. 정씨는 천성이 착하고 인심이 후하여 인근 마을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사람 한 명이 선동마을에 들어섰다. 처음 본 사람인지라 마을 사람들 모두가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걸인같이 보이지는 않지만 행색이 초라한 것을 보니 먼 길을 온 것으로 보였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있는데 정씨가 선뜻 나섰다.

“이보시오. 보아하니 먼 길을 온 것 같은데 우리 집에 가서 우선 요기나 하시오.”

대뜸 낯선 사람을 자기 집에 데려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씨는 나그네를 집으로 데려가 밥을 차려주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밥 한 그릇을 해치운 나그네가 부탁을 하였다.

“선생, 의거할 데 없는 몸이니 선생 댁에서 일을 도와주며 지내면 어떨까요? 다른 것은 필요없고 먹고 잘 수만 있다면 됩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기품이 있어 보이는 데다 어차피 일손도 필요하고 해서 정씨는 단박에 나그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그네의 이름은 양맥수였다.

정씨 집에서 일하게 된 양맥수는 며칠 되지 않아 정씨 마음에 쏙 들었다. 그가 일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처음에는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일할 때 빈둥빈둥 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괜히 무위도식하는 사람을 끌어들였나?’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어김없이 양맥수는 정씨를 놀라게 하였다.

양맥수는 다른 사람들의 일이 거의 끝날 쯤이면 슬슬 일을 시작하는데, 짧은 시간에 다른 사람들 두세 배나 되는 일을 해치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인인 정씨도 양맥수를 보통 사람들보다 더 우대를 해주었다.

일도 일이지만 나이가 엇비슷한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래서 이제는 집주인과 일을 도와주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사실상 친구로 지냈다.

서로가 친해지자 양맥수가 사연을 털어놓았다. 무슨 사정인지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청나라 사람인데 조선으로 망명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청나라에서 보낸 사람들이 자신을 쫓는 기색이 보여 다시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러다 정씨를 만나게 된 것이다.

하루는 정씨가 하동 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스님 한 분을 만났다. 스님이 대뜸 정씨에게 말을 걸었다.

“처사께서는 어디까지 가시는 길입니까?”

그러자 정씨가 스님을 한번 훑어보고 나서 답하였다.

“옥룡 선동에 있는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렇군요. 소승도 마침 옥룡으로 가는 중인데 함께 가시면 어떨까요?”

어차피 혼자 가기도 심심하고 날이 저물면 무섭기도 해서 정씨는 그렇게 스님과 함께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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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길을 가던 두 사람이 흑룡마을 인근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길을 막았다. 정씨는 혼비백산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스님이 물끄러미 호랑이를 바라보자 호랑이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는 것이 아닌가.

“스님, 보통 분이 아니시...”

한숨 돌리며 스님을 바라보던 정씨가 깜짝 놀랐다. 스님이 있어야할 자리에 양맥수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서야 양맥수가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자신은 도술을 하는 사람인데 오늘 정씨가 호환을 당할 것을 미리 알았다 한다. 그런데 그 사실을 이야기해보아야 믿지 않을 것이고, 설령 믿는다 해도 따라간다면 미안해 할까봐 스님으로 변신하여 몰래 따라왔다는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두 사람은 더욱 더 가까워졌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양맥수가 정씨에게 제안을 하였다.

“여보시오 정형, 혹 중국 구경을 하신 적 있소?”

태어나 광양 일대를 벗어나본 적이 없는 정씨에게 중국 구경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한양 구경도 못해본 정씨는 양맥수의 이야기에 솔깃해졌다.

“중국 구경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일이 있어 잠시 중국 동정호에 다녀와야겠는데, 그 참에 그대에게 중국 구경을 시켜줄까 해서 하는 말이오.”

동정호라는 말에 정씨는 더욱 구미가 당겼다.

“그래, 어찌 중국 구경을 시켜준단 말이오?”

“내 등에 엎혀 있으면 금세 중국을 다녀올 수 있소.”

그러더니 양맥수가 한 가지 당부를 하였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소. 내 등에 엎혀 중국 구경은 하되 절대 물건에는 손을 대지 마시오.”

정씨가 등에 엎히자 양맥수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중국이 눈에 들어왔다. 양맥수의 등에 엎힌 정씨는 말로만 듣던 중국 산천을 구경한다는 것이 너무도 놀랍고 신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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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호에 도착한 양맥수는 정씨를 내려놓고는 잠시 일을 보고 온다고 기다리라 하였다. 그러면서도 정씨에게 절대 물건에 손대지 말고 구경만 하라고 신신당부하였다.

말로만 듣던 동정호라니... 정말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동정호 일대를 거닐던 정씨의 눈에 거뭇거뭇한 대나무가 들어왔다. 저것이 과연 책에서 보았던 소상반죽(瀟湘斑竹)이란 말인가?

 

소상반죽.

 

소상반죽은 눈물자국 모양의 무늬가 박혀있는 대나무인데, 여기에는 요 임금과 순 임금에 관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순 임금은 요 임금의 두 딸(아황과 여영)과 결혼하고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런데 재위 28년에 큰 물난리가 있자, 곤으로 하여금 치수(治水)토록 하였다. 하지만 9년이 지나도 완성하지 못하자 곤을 우산에 가두어 평생토록 나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곤의 아들 우에게 그 일을 대신하게 하였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치수를 맡게 된 우는 결국 8년 만에 완공을 본다. 이에 순 임금이 우를 치하하고자 소상(瀟湘) 강변으로 함께 사냥을 나갔다. 부친에 대한 일로 앙심을 품고 있던 우가 기회를 보아 순 임금을 살해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아황과 여영이 달려와 애통해하며 3일 밤낮을 피눈물을 흘리다 죽었다. 그랬더니 그 자리에 ‘눈물자국이 선명한 대나무’가 자라났다고 한다.

소상반죽을 본 정씨는 중국에 다녀온 것을 자랑하고 싶기도 하고, 담뱃대로 쓸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소상반죽 한 가지를 꺾어서 품안에 숨겼다. 설마 대나무가지 하나 가지고 무슨 일이 생기랴 싶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양맥수가 돌아오더니 정씨에게 다시 등에 타라 하였다. 정씨가 등에 타자마자 양맥수는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그런데 올 때와는 달리 양맥수가 하늘을 나는 것이 불안하였다.

“혹시 나 몰래 물건에 손을 대지는 않았소?”

양맥수가 묻자 움찔하던 정씨가 시치미를 뗐다.

“손을 대다니, 그런 일 없소. 그래도 덕분에 구경은 잘 했소.”

하지만 광양에 올 때까지 소상반죽을 숨긴 쪽으로 계속 기울더니 급기야 정씨 집에 거의 이르렀을 때 양맥수가 그만 정씨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하늘에서 떨어진 정씨는 그만 허리가 부러져 반신불구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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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부리다 화를 당한 정씨를 보고도 안타까웠는지 양맥수는 한참을 정씨를 치료해 주었다. 그러나 더 이상 심해지지 않게 할 뿐이지 허리를 낫게 하지는 못하였다. 금기를 어겼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응급처치가 끝나자 양맥수가 떠나려 하였다. 그러자 정씨가 양맥수를 붙잡고 하소연을 하였다.

“양형,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신세인데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 합시다.”

그런 정씨를 측은하게 생각했는지 떠나려던 양맥수가 정씨에게 물었다.

“그래, 마지막 부탁이라는 것이 뭐요.”

“내가 죽어 묻힐 명당이나 하나 잡아주시오. 그래야 마음이라도 편히 갈 수 있을 것 같소.”

정씨의 말을 듣고 한참을 고민하던 양맥수가 물었다.

“좋소. 내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 들어주리다. 부와 명예와 자손,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을 택하겠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정씨가 자손을 택하였다. 그리하여 양맥수가 정씨에게 옥룡면 양산마을 인근에 있는 옥녀탄금(玉女彈琴)혈을 잡아주고 그 길로 자취를 감추어버렸다고 한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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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국사 마을이 조성되어 있는 옥룡면 양산마을. 일부에서는 옥녀탄금혈을 잡아준 사람이 양맥수가 아니라 도선국사라 이야기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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