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부채혈과 조탑거리
옛날 구례군 용방면 송정마을에 선씨와 조씨가 살았다. 선씨는 부자였는데 반해 조씨는 가난에 찌들어 살았다. 사실 선씨는 특별히 노력을 해서 부자라기보다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이 많았다. 그러나 조씨는 물려받은 재산도 없으려니와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아 궁핍한 삶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선씨는 욕심이 많아 마을 사람들에게조차 고리대를 취하였다. 춘궁기에 겉보리를 빌려주고 가을에 추수를 하면 몇 배로 받는 것이었다. 더구나 탁발을 하러 오는 스님이나 동냥치에게 단 한 번도 적선을 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조씨는 먹고 살기 힘들면서도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발 벗고 나섰다. 때로는 불쌍한 동냥치가 왔는데 줄 것이 없으면 가재도구라도 나눠 주며 내다 팔아서 먹을 것을 구하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천성이 못된 선씨는 승승장구하면서도 정작 그렇게 착하디착한 조씨에게는 우환이 겹쳤다. 조씨의 어린 아들이 못 먹어서 영양실조로 그만 죽고 말았던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은 조씨는 어느 샌가 웃음을 잃고 말았다. 어렵게 살면서도 웃음만은 잃지 않았는데 아들이 죽은 뒤에는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 있어도 웃는 일이 없었다.
어느 날 마을에 스님 한 분이 탁발을 하러 왔다. 스님은 제일 먼저 가장 부자로 보이는 선씨 집에 갔는데 문전박대를 당하고 말았다. 그래도 봉변을 당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똥물을 뒤집어쓰는 경우도 허다했기 때문이다. 선씨 집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스님이 이집 저집 돌다가 조씨 집에도 들렀다. 그런데 누가 봐도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인데다 조씨 행색을 보아하니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어보였다. 스님이 조씨를 보더니 자신이 오히려 도와주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조씨가 어디선가 감자 몇 쪽을 가져와서 내어주며 말하였다.
“스님, 죄송합니다. 가진 게 별로 없어서 드릴 게 이것밖에 없네요.”
그런 조씨를 바라보던 스님이 한 동안 관세음보살을 읊더니 조씨에게 일렀다.
“저 마을 앞 우물 뒤로 갈림길이 보이지요? 그 갈림길 가운데에다 매일 돌멩이 하나씩 쌓아 돌탑을 완성시키면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스님은 길을 떠났다.

아들을 잃은 마당에 삶의 희망조차 잃었던 조씨는 아들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스님이 가르쳐준 부채혈에 매일 돌멩이 하나씩 쌓았다. 그러다 보니 뭔가 할 일이 생긴 때문인지 조씨는 삶의 활력을 되찾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조씨에게 물었다.
“아니, 조씨. 왜 매일같이 여기에다 돌멩이를 쌓는 거요?”
스님 이야기를 해봐야 그럴 것 같아서 조씨는 아들 핑계를 댔다. 사실 조씨 역시 점차 아들의 명복을 비는 마음이 더 커졌던 것이다.
“죽은 아들 명복이라도 비는 마음에서 돌탑을 쌓는 겁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도 조씨의 딱한 사정을 다 아는지라 오며 가며 돌탑을 쌓는 데 일조하였다. 그러자 금세 돌탑은 높이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조씨의 돌탑이 조금씩 쌓여갈 때마다 선씨의 가세는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조씨가 돌탑을 완성할 즈음 선씨는 영문도 모른 채 패가망신하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선씨 집안이 몰락하자 내놓고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사실은 마을혈이 부채(扇)혈이었다. 그리고 부채혈의 한 가운데가 바로 스님이 알려준 우물 근처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덥다고 부채질을 할 때마다 선씨의 살림살이가 늘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부자인데도 시주를 하지 않은데 앙심을 품은 스님이 가난하게 사는 조씨를 시켜 부채혈 끝에 돌탑을 쌓게 하였다. 그래서 부채질이 되지 않아 선씨 집이 망했다고 한다.

반면 조씨는 다시 건실하게 일한 끝에 적지 않은 재산을 일구었다고 한다. 지금은 탑은 사라지고 없고 조탑거리라는 터만 남아 옛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구례 용방면에 있는 조탑거리.
조씨의 탑이 있었다는 조탑거리는 현재 삼거리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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