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거북바위의 슬픈 사랑

한국설화연구소
2024-12-23 13:44
곡성설화

곡성군 겸면에 가면 운교(雲橋)마을이 있다. 옛날에 칠봉과 하늘재를 잇는 높고 커다란 구름다리 같은 것이 있어서 마을 이름을 운교라고 불렀다 한다. 운교마을 앞 냇가에 거북바위가 있는데, 거북바위에는 거북이 된 부부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전해온다.

 

오랜 옛날 운교마을 근처에 늙은 부부가 살았다. 언제 부부의 연을 맺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10대 때 만났다 해도 근 60년 이상을 해로하고 있기에 사람들은 그들 부부를 가리켜 말로만 듣던 백년해로를 할 사람들이라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당시에는 환갑을 맞기만 해도 장수하였다는 마당에 부부 모두 칠순을 훌쩍 넘겼으니 그러한 말이 나오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들 부부가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것은 단지 장수하고 해로한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를 어찌나 끔찍하게 위하는지 이웃 사람들이 시기할 정도였다.

슬하에 자식이 없는 것이 흠이었지만 노부부에게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닌 성 싶었다.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특히 할머니에 대한 할아버지의 사랑이 더욱 애틋해보였다. 할아버지는 틈만 나면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등의 집안 살림도 거들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의 볼은 마치 10대 소녀처럼 상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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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런 근심과 걱정이 없을 것 같았던 부부에게도 위기가 왔다. 항시 건강할 것 같던 할머니가 어느 날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할머니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지키는 할아버지의 애틋한 사연이 인근에 알려져 여기저기에서 약재를 가져다주기도 하고 의원들이 다녀가기도 했지만 백약이 무효라는 말처럼 차도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무슨 일인지 할머니가 기력을 회복하더니 할아버지한테 일으켜 앉혀 달라 하였다. 그러더니 할아버지 어깨에 살며시 기댄 채 물었다.

“영감, 영감은 다시 태어나도 나랑 살 거예요?”

“아니, 그런 건 갑자기 왜 물어? 당연한 것을?”

“나는 다시 태어나면 영감이랑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엥? 그게 무슨 말이야? 나랑 살기 싫다는 말이오?”

“그게 아니라 나 때문에 영감이 이리 고생하니 그러죠.”

한참을 그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할머니가 다시 물었다.

“영감, 백 년을 해로하기로 하였는데 쉽지 않네요. 그런데 백 년을 사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느닷없는 할머니의 질문에 한참을 머뭇거리던 할아버지가 뭔가 생각났다는 표정을 하더니 이야기하였다.

“내가 알기로는 거북이가 제일 오래 살지 아마?”

“그래요? 거북이가 그리 오래 살아요? 그럼 다시 태어나면 우리도 거북이로 태어나 다시 만나요. 그땐 정말 백년해로해요.”

그러더니 할머니의 손이 스르르 풀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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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며칠 있지 않아 할아버지 역시 할머니 뒤를 따르고 말았다. 할머니 장례를 치른 후 식음을 전폐하고 할머니 무덤가를 지키다 돌아가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한 동안 그런 할아버지와 할머니 제를 지내 주었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차 잊혀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운교마을 사람 몇이 마을 앞 냇가에서 천렵을 하였다. 정신없이 천렵을 하던 차에 누군가가 소리쳤다.

“거북이다! 거북이!”

그러고 보니 그물 속에서 파닥대는 물고기들 사이에서 엉금엉금 기어가는 거북이가 보였다. 제법 덩치가 큰 것이 꽤 나이가 든 거북이인 것 같았다. 거북이를 본 일행 한 명이 말했다.

“늙은 거북이처럼 보이는데 살려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 이런 정도면 신령한 거북이일 수 있으니 살려주는 게 좋겠네.”

그러자 칠성이라는 이름의 사내가 막고 나섰다.

“아니야. 오래 된 거북이가 신경통에 특효라는 말이 있던데? 우리 아버지가 신경통이 심하니 한 번 알아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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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이가 아버지 병환에 쓴다니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말리지 못하였다. 거북이를 집으로 가져간 칠성이는 물통에 거북이를 넣고 뚜껑을 닫아두었다. 날이 많이 저물었기에 다음 날 아침 말씀드릴 요량이었다.

다음날 아침 칠성이가 아버지께 거북이를 보여드렸다.

“아버지, 거북이 보세요. 마을 앞 냇가에서 잡았는데 엄청 크죠? 신경통에 특효가 있데요. 다들 탐을 내는데 아버지를 위해 제가 우겨서 가져왔어요.”

칠성이가 스스로 공치사를 하며 거북이를 내밀었지만 아버지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다.

“거북이가 신경통에 효과가 있다고? 나는 금시초문인데?”

“그래요? 아버지가 신경통으로 고생을 하시니 제가 여기저기 알아보았는데 늙은 거북이가 최고라던데요?”

“설령 좋으면 뭐 하겠니? 거북이가 너무 오래된 것 같아 찜찜한데. 이 눈을 봐라 눈을.”

아버지가 거북이 눈을 보라기에 거북이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늙은 거북이 눈이 왠지 슬퍼보였다. 아버지가 찜찜하다는 말씀까지 하시자 계면쩍었는지 칠성이는 뚜껑을 닫고 말았다. 그리고는 더 이상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제 아무리 좋은 약이라 해도 아버지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약이 될 리 만무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운교마을 앞 냇가에는 늙은 거북 한 쌍이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컷 거북이가 마을 사람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칠성이 일행에게 잡힌 거북이가 바로 수컷 거북이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수컷 거북이 잡혀간 지 며칠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암컷 거북은 수컷을 애타게 기다리다 결국 죽고 말았다.

며칠 후에야 칠성이는 거북이의 존재가 생각났다. 그래서 급히 물통으로 달려가 살펴보니 다행히 거북이가 아직 살아 있었다. 그래서 거북이를 꺼내 냇가에 살려주었다. 수컷 거북이는 냇가 여기저기를 헤엄치고 다니더니 이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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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운교마을 앞 냇가에는 어찌된 일인지 커다란 바위가 하나 생겼다. 신기한 것은 바위 모양이 거북이처럼 생겼는데,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을 앞 냇가에 갑자기 거북바위가 생기자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있던 바위가 사라지는 것이야 있을 수 있지만, 없던 바위가 하룻밤 사이에 생겨났으니 괴이한 일이었다. 바위 모양이 거북을 닮아서 그런지 거북바위를 볼 때마다 칠성이는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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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군 겸면 운교마을 앞 냇가에 있는 거북바위

그래서 마을 어르신 가운데 가장 원로를 찾아가 거북이 이야기를 해드렸다. 그러자 그 어르신은 100여 년 전 마을에 사셨던 금슬 좋은 노부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전해오는 옛 이야기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 어르신은 100여 년 전의 그 노부부가 거북이로 환생하였던 것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하였다. 그런데 수컷 거북이 잡혀가서 돌아오지 않자 암컷 거북이가 죽었고, 암컷 거북이를 찾아 헤매던 수컷 거북이가 죽어 바위가 되었다는 것이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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