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숯 굽는 총각의 행운

한국설화연구소
2024-12-23 13:36
보성설화

일제 강점기 때 일이다. 어떤 총각이 보성에서 순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서 뭔가 펄럭거리며 날아왔다. 다른 기차에서 날아오는데 멀리서 보아도 신문지였다. 그래서 기차를 타는 동안 심심풀이로 보기 위해 날아오는 신문지를 잡아 쥐고는 기차를 탔다. 그런데 기차를 타고나서 펼쳐보니 도무지가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영자신문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닭발도 같고, 저렇게 보면 또 소발도 같고 그랬다. 그래서 이렇게 맞대보기도 하고 저렇게 맞대보기도 하면서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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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가씨가 송정에서 순천 가는 기차를 타고 가는데 도중에 어떤 총각이 타더니 앞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그 총각이 들고 온 신문을 펼쳐서 이리저리 보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 영자신문이었다. 그 아가씨도 영자신문은 처음 보는 것이라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런 신문을 보는 앞자리 총각이 더 신기하였다. 아가씨가 보기에도 총각은 별나게 열심히 신문을 읽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면 저렇게 영어로 된 신문을 열심히 보는 것일까?

아가씨가 보기에 그 총각은 신수도 훤하게 생겼다. 그런데 영자신문까지 보고 있으니 아가씨 마음이 묘하게 울렁거렸다.

 

“저, 어디 가세요?”

“……”

 

용기를 내어 물었는데도 대답이 없었다.

 

“어디 사세요?”

“……”

 

어디 사냐고 물어도 묵묵부답이다. 총각은 대답 없이 신문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니 아가씨는 ‘진짜 공부는 잘 하는 사람인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신문 읽는데 집중하느라 자기 이야기도 못 듣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사과 장수가 왔다. 그래서 아가씨가 사과를 사서 총각을 하나 주었다. 그런데 아가씨는 가방에서 휴대용 칼을 꺼내 사과를 깎아서 먹는데, 총각은 옷소매에다 그냥 쓱쓱 문대가지고 막 베어 먹는 것이 아닌가. 한 가지가 좋으면 다 좋아 보인다고, 그 모습이 또한 밉지 않았다. 사과는 껍질 밑에가 양분이 많다더니 역시 아는 사람은 먹는 것도 다르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벌써 순천역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총각은 아가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금세 사라지고 없었다. 아가씨는 이것저것 짐을 챙기느라 겨를이 없었다. 결국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지고 말았다.

 

순천에 도착한 아가씨는 어떻게든 그 총각을 찾아볼 요량으로 시내에서 제일 높은 집에 거처를 정한 후 매일같이 거리를 내다보았다. 당시로서는 신식 여성이었던 아가씨는 여자들 머리를 해주는 미용사였다. 그래서 건물 1층에서는 손님들 머리를 해주고는 틈나는 대로 옥상에 있는 방에 올라가 창문을 열고 거리를 내다보는 것이 일과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가씨가 무심코 거리를 내다보고 있는데 딱 그전에 기차에서 보았던 총각이 숯을 한 짐 지고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눈 깜짝할 사이에 뛰어 내려가서는 지나가는 총각을 불러세웠다.

“며칠 전 기차에서 만난 분 아닌가요?

그러자 그 총각이 돌아보더니 아는 체를 하였다.

“예, 그렇습니다. 그때는 경황 중에 인사도 못 드렸네요.”

“어디 사세요?”

아가씨가 기차 안에서처럼 다시 어디 사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총각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자신이 보기에 세련되어 보이는 아가씨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아가씨가 계속해서 ‘그렇다면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자 총각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였다.

“저는 그저 숯을 구워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저기 봉화산 자락에서 삽니다.”

아가씨는 믿기지 않아 총각을 따라 봉화산 자락으로 가 보았다. 그랬더니 역시나 숯을 굽는 사람이 맞았다.

“그럼 그때는 무슨 일로 보성을 다녀왔어요?”

그러자 총각이 대답하였다.

“하도 숯을 많이 구워서 돈이 좀 있기에 기차 한 번 타보려고 다녀왔죠.”

“그러면 신문은 어떻게 사 보게 되었어요?”

“아이, 사서 본 게 아니라 어디선가 날아와서 주워 온 거요. 보지도 못할 것을 뭐 하러 산다요?”

“신문을 찬찬히 읽는 것 같던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게 아니라 글씨 같기는 한데, 참 이상하게 생긴 것이 요리 맞대보면 닭발도 같고 저리 맞대보면 소발도 같고 하도 이상해서 이리저리 살펴본 것이지요.”

[꾸미기]숯굽는 총각의 행운-2.jpg

아가씨가 보기에 총각이 생김새도 생김새지만 뭔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길로 총각을 데려다가 잘 씻기고 꾸며놓으니 훤칠한 대장부가 되었다.

“그런데 학교는 다닌 적이 있나요?”

“소학교 잠깐 다닌 적이 있는데 그 뒤로는 그만 뒀지요.”

총각은 태어날 때부터 말을 못하였다. 그래도 공부는 시켜야겠기에 부모가 어찌어찌 해서 소학교를 보냈는데, 학교에서도 말을 못하는 아이를 달가워할 리 없었다. 그러니 다른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들한테까지도 놀림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고 일어나더니 어머니한테 벤또(도시락)와 괭이를 달라 하더니 서둘러 학교에 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학교에 가서는 선생님 앞에서 칠판에다가 뭔가를 그렸다. 산도 그리고 길도 그리고 묘도 그리고. 그러더니 묘를 파는 시늉을 했다 한다.

선생님이 알아먹고는 아이가 그린 그림 속의 산으로 함께 올라가보니 정말 아이가 그린 그림 속의 묘가 있었다. 괭이로 묘를 파보니 묘 속에 든 뼈에 하얀 실 같은 뿌리가 창창 감겨 있었다. 그래서 그 뿌리를 싹 추려내고 다시 펴놓았더니만 그 아이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 아이가 바로 총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총각은 지금도 여전히 과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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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의 이야기를 들은 아가씨는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총각을 학교에 보냈다. 자신이 미장원을 운영하면서 번 돈으로 총각을 공부를 시켰는데, 늦공부를 하면서도 총각은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총각은 급기야 경성제국대학까지 졸업하고는 순천에서 제일가는 인물이 되었다고 한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 이 이야기는 순천대학교 총장을 지낸 故 최덕원 선생님께서 채록한 설화에서 기본 뼈대를 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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