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때리는 효도
옛날 보성군 조성면에 지지리도 가난한 부부가 살았다. 가난도 가난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아이가 없어서 더 근심이 컸다. 하지만 워낙 금슬이 좋아서 서로가 서로에게 부담을 주는 언행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늘그막에 아들이 하나 생겨서 두 사람은 천하를 다 가진 것처럼 기뻤다. 쉰둥이를 낳았으니 얼마나 예뻤겠는가.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그런 아들을 낳고는 두 사람은 더욱 열심히 일을 하였다. 전에는 몰랐지만 아들을 낳고 보니 아들을 위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해가 저물고도 부부는 돈을 벌기 위해 초롱불을 켜놓고 일을 하였다. 남편은 새끼를 꽈서 짚신을 만드는 일을 하였고, 아내는 삯바느질 감을 구해다 바느질을 하는 것이 일과였다.
이제 갓 돌이 지난 어린 아들은 심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아빠 등에 올라타는 등 귀찮게 하였다. 아무리 사랑스런 아들일지라도 당장 돈을 벌어야겠기에 엄마한테 가라고 한다는 것이 그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말았다.
“엄마 하나 때리고 오너라.”

그러자 아들은 아장아장 걸어가서 엄마를 한 대 툭 쳤다. 느닷없이 아들에게 뒷통수를 맞았지만 어린 아들이 때리니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바느질을 하다가 그만 손가락을 찔리고 말았다. 그래서 엄마 역시 아들에게 일렀다.
“아빠 하나 때리고 와라.”
그러자 이번에는 아빠한테 아장아장 걸어가서 한 대 툭 치는 것이 아닌가. 저녁 내내 그런 일이 벌어져도 두 내외는 그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습관이 되었다는 것이다.
걸음마를 배울 때부터 날이면 날마다 그렇게 살다보니 나이가 들어도 그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사람 습관이 무섭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였다.

어렸을 때야 귀엽기도 하고 맞아봐야 아프지도 않았지만 아들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만만치 않았다. 아들이 나이가 든다는 것은 부모 나이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늘그막에 장성한 아들한테 맞으려니 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아들을 나무라자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십 년 넘게 그렇게 살았는데 갑자기 화를 내기도 민망한 일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두 내외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우리가 참 늘그막에 아들 하나 낳아서 금이야 옥이야 키웠는데, 하도 오져서 그랬는데 우리를 때리는 것이 그만 습관이 되었으니 이제는 아파서 못 살겠네. 우리가 차라리 어디로 도망을 가세. 먹고 살 것도 없는데, 근근이 벌어서 먹여 놓으면 이렇게 또 두드려 패니 어찌 살겠소. 늙은 부모가 먹여주고 재워줘도 지금까지 나무 한 짐 해오는 법도 없고, 차라리 우리가 멀리 떠납시다.”
그런데 두 사람이 하는 말을 아들이 듣게 되었다. 우연히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게 된 아들은 크게 반성을 하게 되었다.
‘아, 지금까지 내가 때린 것이 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구나.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어머니를 때리면 좋아하시기에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그것이 부모님께 몹쓸 짓이었구나.’
그리고는 바로 나무라도 한 짐 하기 위해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처음 져보는 지게질이라 서툴렀지만 그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효도를 한다는 생각에 아들은 마음이 바빴다.
하지만 나무를 하려 해도 뭘 해보았어야 하지, 그래 지게를 걸쳐놓고 앉아서 신세한탄을 하다가 그만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원수로고, 원수로고. / 나 하나를 낳아서 재미진 세상을 살려 했는데. / 이렇게 내가 부모 때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으니. / 어찌 할꼬 어찌 할꼬 설 명절은 돌아오는데. / 우리 부모 봉양할 것이 없어서 어찌 할꼬.”
그렇게 혼자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어디선가 노루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노루가 말을 하였다.
‘도령은 어찌 그리 한탄을 하고 있나요?’

노루 눈빛만 보면 마치 노루가 아들에게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노루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들이 그 동안의 사연을 노루에게 들려주었다. 노루한테라도 신세 한탄을 늘어놓으면 속이 조금 후련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노루가 아들에게 따라오라는 시늉을 하였다.
노루가 가자는 대로 따라가니 길쭉한 돌이 하나 있었다.
무슨 돌인지는 몰라도 그 돌을 가지고 가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들은 노루가 알려준 길쭉한 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을 가지고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데 부모님이 동구 밖까지 나와 있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 아들이 안 보이니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막상 도망가자고 그래놓고는 정작 아들이 안 보이니 울고불고 난리가 났던 것이다. 그러다 저 멀리서 아들이 나타나니 한 걸음에 달려와 아들을 덥석 안고는 대성통곡을 하였다. 아들 역시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대성통곡을 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부모님께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저는 정말 지금까지 두 분께서 좋아하시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두 분이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나무라도 하려고 산에 올라갔다가 노루를 만났는데 노루가 이 돌을 줬어요.”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아들이 돌아왔으니 그것이면 됐다. 노루 이야기고 돌 이야기고 통 관심도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눈물샘이 마르도록 울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아들 옆에 길쭉한 돌이 하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돌처럼 생겼는데 자세히 보니 뭔가 달라보였다. 그래서 흙을 털어내고 물로 씻어보니 놀랍게도 황금덩어리였다.
그 금덩어리를 내다 팔아 그 가족은 큰 부자가 되었다. 또한 아들은 장성하여 참한 규수를 얻어 가정을 꾸리게 되었고 평생 부모님을 봉양하며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 이 이야기는 순천대학교 총장을 지낸 故 최덕원 선생님께서 채록한 설화에서 기본 뼈대를 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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