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시어머니 멸시하던 며느리
벌교 어떤 마을에 아성이라는 이름의 5대 독자가 살았다. 5대 독자다 보니 얼마나 끔찍하였을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어렸을 때야 그렇다지만 장가갈 때가 다 되었어도 오냐 오냐 하였다. 특히 아성이 어머니는 더욱 그랬다. 아성이 어머니 역시 4대 독자에게 시집을 와서 한 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여 쫓겨날 뻔하였다. 그러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아들을 낳아 쫓겨나기를 면한 어머니는 아성이 일이라면 버선발로 뛰어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금이야 옥이야 키운 아들을 장가보내기가 만만치 않았다. 애지중지하고 키운 아들의 눈이 높아 웬만한 처자는 아들이 싫다 하였던 것이다. 더구나 5대 독자라는 말에 마음에 드는 규수 집에서는 거꾸로 손을 내저었다.
몇 년을 고르고 골라서 근동에서 미색이 가장 출중하다는 색시를 며느리로 맞아들였다. 5대 독자라는 부담이 있었지만 그래도 오히려 며느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는지 그쪽에서도 흔쾌히 승낙을 하였다. 그래서 겨우 혼인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고르고 고른 며느리 심성이 얼굴 예쁜 것과는 정반대였다. 시집온 첫날부터 부엌일은 아예 손도 안 댈 뿐 아니라 툭 하면 시어머니를 부려먹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며느리 역시 친정에서 오냐 오냐 하고 키웠던 모양이다.
시어머니가 차린 밥상에조차 늑장을 부리는가 하면, 어느 날은 아예 둘 다 방 밖에 나오지도 않고 방안에서 시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기도 하였다. 아성이가 마누라 미모에 홀딱 반해서 치마폭에서 헤어나질 못한 것이다. 비록 며느리는 못마땅하였지만 아들 때문에라도 시어머니는 꾹 참고 지냈다. 성질 괴팍한 아들 데리고 살아주는 것만도 고맙다고 여길 정도였다.
그러니 고부 사이가 거꾸로 되어서 며느리는 안방을 차지하고 놀고먹고 시어머니는 종일 부엌을 벗어나질 못하였다. 사정이 그런데도 시어머니는 대만 이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신을 종처럼 여기는 며느리가 시키는 대로 다 들어주었다.
우연한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며느리가 어떠했을 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한 며느리에 대해 동네 사람들은 아들 아성이를 손가락질 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되신 어머니가 가여울 법도 하였지만 아들 내외는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달라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시절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하였다. 1~2년은 그럭저럭 넘어갔지만 시집온 지 3년이 되어가자 아성의 태도가 뭔가 달라졌다. 아성 역시 말은 안 하였어도 5대 독자라는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들은커녕 딸도 못 낳는 아내에게 내심 불만이 쌓여가는 눈치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성의 외박이 차츰 잦아지더니 급기야 읍내 기생집에서 아예 술독에 빠져 산다는 말까지 돌았다. 어쩌다 들어오는 날에도 전에 없던 손찌검까지 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일이 그 지경에 이르자 며느리는 점차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대를 이어야 한다는 마음은 급하였지만 그래도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구박하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도 아들의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밖으로 도는 남편과의 말다툼도 한두 번이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며느리가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친정에 갔다.
“아니 이게 어쩐 일이냐? 무슨 일이야? 얼굴은 왜 이렇게 상했어?”
갑작스런 딸의 친정 나들이에 깜짝 놀란 친정어머니가 이것저것 궁금하였는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연거푸 질문 공세였다.
딸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고는 친정어머니가 느닷없이 불공 이야기를 꺼냈다.
“애야. 아들만 낳으면 다 끝난다. 절에 가서 불공을 열심히 드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말이 있으니 너도 한 번 그렇게 해보렴.”
애지중지 키웠던 딸아이가 시댁에서 구박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았지만 아들을 못 낳아서 그런다니 달리 도리가 없었다.
친정어머니 이야기를 들은 며느리는 불공을 드리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말이 그다지 미덥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리 방도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속는 셈치고 용하다는 스님이 계시는 절을 찾았다. 절에 들어서자 멀리 대웅전에서 스님 한분이 염불을 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법당에 들어서기도 전에 스님의 나지막하지만 또렷한 목소리가 그녀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보살님께서는 공을 들일 필요가 없으니 돌아가시오.”
처음부터 별로 미덥지 않았는데 들어서기도 전에 문전박대를 하자 그녀는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던 사람처럼 두 말 없이 친정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친정어머니가 다시 재촉을 하였다.
“애야, 그러지 말고 다른 스님을 한 번 찾아뵈는 것이 어떻겠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들을 낳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박을 당해 이것아.”
친정어머니의 간절한 요청에 어쩔 수 없이 딸은 또 다른 절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그 절 스님 역시 들어서자마자 “공을 들일 필요가 없으니 돌아가시오.” 하는 것이 아닌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낙담할 친정어머니가 생각나 그녀는 마지막까지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세 번째 절을 찾아갔다. 그랬더니 그 절 스님 역시 며느리를 보고는 다짜고짜 “공을 들이러 왔으면 돌아가시오.” 하였다.
홧김에 발길을 돌리려던 그녀가 이번에는 반드시 이유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스님에게 연유를 물어보았다.
“스님, 도대체 이유라도 알아야겠습니다. 가는 곳마다 불공을 드릴 필요가 없다니 그렇다면 저는 어찌해야 될까요?”
한참을 말이 없던 스님이 그녀의 간절한 눈빛을 힐끗 보더니 묘한 이야기를 하였다.
“아들을 원한다면 여기에다 공을 들일 것이 아니라 신발을 거꾸로 신고 치마를 뒤껴 입은 사람한테다 공을 들이시오.”
며느리는 뭔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절에서 내려오자마자 신발을 거꾸로 신고 치마를 뒤껴 입은 사람을 천지사방에 수소문하였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웃음거리였다. 잔뜩 기대를 하고 며칠을 천지사방을 돌아다녔건만 오히려 웃음거리가 되자 그녀는 할 수 없이 포기하고 말았다.
며칠 만에 시댁으로 돌아오니 시어머니가 허겁지겁 뛰어나왔다. 집 나간 줄 알았던 며느리가 돌아오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엉겁결에 신발을 거꾸로 신고 나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시어머니가 치마를 뒤껴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옛날에는 옷을 더럽힌다고 남들이 잘 안 볼 때는 치마를 뒤껴 입고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며느리가 있을 때는 그래도 며느리 눈치를 보느라 그런 일이 없었는데 요 며칠 며느리가 안 보이니 예전의 습관이 나왔던 모양이다.
며느리가 시어머니 꼴을 보니 영락없이 스님이 일러준 사람과 똑 같았다. 그때야 며느리는 크게 반성을 하였다. ‘아, 절에 공을 들이는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께 공을 들였어야 되는 것이었구나.’
어려서부터 부모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다보니 철이 없었고, 시집와서도 시어머니가 알아서 다 해주시니 철이 들 틈이 없었던 며느리는 늦게야 철이 들게 되었다. 그날부터 며느리는 시어머니 봉양을 극진하게 하였다.
시어머니를 묵묵히 봉양하고 지내는 중에도 아들은 주색잡기에서 헤어나질 못하였다. 그러다 재산을 다 말아먹고 나서야 거지 중에도 상거지가 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아내는 예전의 아내가 아니었다. 그런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돌보았다. 점차 남편도 아내를 다시 보게 되었다.
며느리가 돌아온 지 3년 되던 해에 놀랍게도 태기가 있더니 이듬해 봄에 며느리가 옥동자를 낳았고, 내리 3남 2녀를 낳았다. 금이야 옥이야 키워서 버릇이 없었던 자신들을 생각하고 부부는 자식들을 엄하게 키웠다. 그 결과 3남 2녀 모두 장성하여 가세가 크게 번창하였다 한다 ♠
(※ 이 이야기는 순천대학교 총장을 지낸 故 최덕원 선생님께서 채록한 설화에서 기본 뼈대를 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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