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용바위에 서린 아기장수의 한

한국설화연구소
2024-12-19 11:25
여수설화

옛날 옛적에 여수 화정면 개도에 있는 월항마을에 김씨 성을 가진 가난한 농부가 살았다.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부인이랑 둘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다만 아이가 없는 것이 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이 꿈을 꾸었다. 그런데 영롱한 빛이 비치는 둥근 해가 입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잠에서 깬 부인이 김씨에게 꿈 이야기를 하였다.

“여보, 간밤에 참으로 희한한 꿈을 꾸었어요. 세상에 커다란 햇님이 제 입안으로 들어오지 뭐예요?”

그러자 실없는 소리 한다며 거들떠보지도 않던 김씨가 갑자기 돌아서며 말했다.

“혹시... 혹시 그거 태몽 아녀?”

용바위-1.jpg

“에그머니나 망칙하게. 지금 나이가 몇인데 태몽이라니요? 아무리 아이가 갖고 싶다고 한들 태몽이 가당키나 한 일이에요?”

태몽 이야기를 하자 부인이 정색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펄쩍 뛰기는 하였지만 부인도 내심 기대를 하는 눈치다.

‘정말 태몽일까? 그러고 보니 달거리를 한 지도 한참 된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해를 품은 꿈이 태몽이었는지 며칠 후부터 부인이 입덧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얼마나 입덧을 심하게 하는지 김씨가 부인 수발하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하루는 느닷없이 홍시가 먹고 싶다고 했다. 한겨울에 홍시라니, 홍시를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그러나 김씨는 개도 일대를 다 돌아 결국 홍시를 구해왔다. 해처럼 빠알간 홍시였다. 홍시를 먹는 부인을 보니 영락없이 해를 먹는 모습이었다.

또 하루는 잉어가 먹고 싶다는 것이 아닌가. 섬에서 잉어를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자 김씨는 뭍에까지 나가 기어이 잉어를 구해왔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아내에게 잉어찜을 해주었다.

그런 남편을 보며 김씨 부인은 더 이상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자기 때문에 고생하는 남편에게 미안했던 것이다. 도대체 어떤 아이가 태어나려고 태몽도 태몽이지만 이다지도 입덧을 심하게 하는 것일까? 김씨 부인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이윽고 열 달이 지나 김씨 부인이 아들을 낳았다. 개도 일대를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한 울음소리를 내며 태어난 아들은 날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아들 때문에 김씨 부부는 하루하루가 꿈만 같았다.

하지만 행복해 보이는 아내의 표정 가운데 어딘가 어두운 구석이 있었다. 아이를 낳느라 고생을 해서 그런가 하고 넘기려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하루는 김씨가 부인에게 물었다.

“여보, 어디 불편한 데가 있는 것 아니오? 얼굴 표정에 어두운 기색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오.”

“불편하기는 누가 불편하다고 그래요. 당신이 잘 해주고, 떡두꺼비 같은 아들도 있는데...”

하지만 거듭되는 남편의 추궁에 한참을 망설이던 아내가 입을 열었다.

“사실은... 날 때부터 아이 겨드랑이에 뭔가 조그마한 게 돋아 있었어요. 사마귄가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점점 자라지 뭐예요.”

“사마귀도 자라는데 뭘. 그런 걸 가지고 뭘 걱정을 하고 그래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하지만... 그게...”

부인이 계속 안절부절 못하자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김씨가 강보에서 아이를 꺼내 겨드랑이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김씨가 깜짝 놀라 부지불식간에 짧은 비명을 토해냈다.

“아!”

그것은 분명 날개깃이었다. 아들의 겨드랑이에 작은 뭔가가 있는데 분명히 날개깃이었던 것이다. 어찌 얻은 아들인데 겨드랑이에 이런 흉측한 것이 돋아난단 말인가. 하지만 곁에서 걱정을 하는 아내를 생각하여 김씨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용바위-2.jpg

“부인, 걱정 마시오. 이런 게 뭐 대수라고. 얼마 안 있으면 없어질 것이니 염려 놓으시오. 정 안 되면 잘라버리면 되지 뭐. 지금은 어리니 나중에 커서도 안 없어지면 잘라버립시다.”

남편이 단호하게 이야기하자 김씨 부인도 안심이 되었는지 표정이 풀렸다. 결혼한 지 10여 년 만에 본 아들이니 그 일은 쉽게 잊혀졌다.

아들을 낳은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다른 아이들보다 걸음마도 훨씬 빨랐던 아들은 활동량이 얼마나 많은지 금세 지쳐 자곤 하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잠만 자고 나면 키가 쑥쑥 큰다는 것이다. 그래서 또래 다른 아이들에 비 해 벌써부터 머리 하나는 더 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잠에 빠진 아들을 방에 눕혀놓고 부부가 밭에 일을 나갔다. 아들이 잘 때 아니면 아들 보는 재미로 도무지 둘 다 일을 하려들지 않기 때문에 아들이 잠자는 때가 일할 시간이었던 것이다.

용바위-3.jpg

일을 나가기 전 두 사람은 마당에 나락을 널어놓았다. 얼마 전에 수확한 나락을 볕에 말려야 하는데 요 며칠 비가 와서 말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마당에 널어놓은 나락 생각에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와 보니 나락은 물론 멍석까지 모두 처마 밑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어? 이게 어찌된 일이지?”

부인이 깜짝 놀라자 김씨가 빗물을 털어내며 말했다.

“이웃에 사는 누군가가 지나다가 치워주었겠지 뭐.”

언제나 낙천적인 김씨의 말에 부인 역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며칠 후 똑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였다. 그날 역시 부부가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또 다시 비가 와 집에 돌아와 보니 역시 며칠 전처럼 말끔히 치워져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누가 그랬을까?’

두 사람은 동시에 비슷한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하루는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에 일부러 나락을 마당에 널어놓고 일을 나가는 척하고는 멀리 숨어서 몰래 지켜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김씨 부부가 잔뜩 긴장하여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지켜보고 있는데 한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마당으로 나오더니 나락과 멍석 등을 말끔히 치워놓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이 광경을 지켜보던 김씨 부부는 놀라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김씨 부부가 생각하기에 이 아이는 틀림없이 하늘에서 내려주신 장수가 틀림없었다. 하지만 놀라움은 곧 두려움으로 변하였다. 아기장수가 태어나면 역성혁명을 일으킨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결국은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김씨 부부는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곁에서 쌔근쌔근 자는 아들을 보면 가슴 한쪽을 칼로 오려내는 듯한 고통으로 눈물 흘렸기 때문이다. 멀리 도망가서 살까도 생각하였지만 하늘이 내린 장수라면 숨어 산들 소문이 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며칠을 궁리한 끝에 결국은 아들을 죽이기로 작정하였다.

용바위-4.jpg

김씨 부부는 마을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배를 타고 금오도 앞바다 한 가운데로 나갔다. 그리고는 아이의 발목에다 큰 돌을 묶어 피눈물을 흘리며 바다 속에 던져 버렸다. 아들을 던져놓고 김씨 부부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흐느끼고 있는데 갑자기 아들이 바다 속에서 쑤욱 솟아나와 오른손으로 뱃전을 붙잡는 것이 아닌가.

아들이 아니라 괴물을 본 것처럼 소름이 끼친 김씨가 도끼로 아들의 손목을 잘라 버렸다. 그러자 아들이 다시 왼손으로 뱃전을 붙잡더니 신기하게도 어른처럼 말을 하였다.

“오른손 없는 장수가 무슨 뜻을 이룰 수 있겠는가.”

그러더니 스스로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말았다.

개도 월항마을 뒷산에 있는 용바위.jpg

 

개도 월항마을 뒷산에 있는 용바위.

용바위에는 청룡이 흘렸다는 핏자국이 남아있다.jpg

 

용바위에는 청룡이 날아오르며 흘렸다는 핏자국이 남아 있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더니 폭풍우와 함께 거센 파도가 일어났다. 마을 뒷산에서 청룡 한 마리가 솟구치더니 금오도에 있는 함구미 쪽으로 날아갔다. 월항마을 뒷산 정상에는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다. 마을 사람들이 용바위라 부르는 이 바위에는 용이 흘렸다는 핏자국이 남아 있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 이 설화는 여수문화원장을 지낸 故 문정인 선생님이 채록한 내용에서 기본 뼈대를 삼았음을 밝힙니다.)

©설화와 인물,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새 글

카테고리

인기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