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용왕이 보낸 말하는 거북
보성읍에서 한 3km 가면 용문리라는 곳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한 500년 전쯤 용문리에 아주 가난한 자매가 살고 있었다. 두 자매가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데, 얼마나 가난했는지 자매가 나무도 하고 나물도 캐고 밭도 가는 등 하루도 몸이 편할 날이 없었다.

용문마을 앞 개울
어느 겨울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무를 하러 다녀오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연세가 드셔서 잔병치레는 많이 하셨지만 갑자기 쓰러지시니 자매는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산에서 캐 온 약초로 응급조치를 한 다음 가까운 의원에게 달려가 아버지 병증을 이야기하고는 처방을 물었다. 그랬더니 의원이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말하였다.
“이것저것 약재도 도움이 되겠지만 아버지 병증에는 잉어가 직방인데... 이 겨울에 어디서 잉어를 구한다?”
의원의 이야기를 들은 자매는 집으로 돌아와 마을 앞 개울에 나가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개울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설령 개울이 얼지 않았어도 잉어를 구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저렇게 꽁꽁 얼어붙어 있으니 정말 막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점점 기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하루 빨리 잉어를 구해야만 아버지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자매는 여자의 몸으로 곡괭이를 가지고가 얼어붙은 개울을 깨기 시작하였다.
결국 몇 시간에 걸쳐 가장 깊은 곳의 얼음을 깨뜨린 자매는 급기야 그물을 들고는 허리춤까지 차는 얼음물로 들어갔다. 추위도 잊은 채 오로지 아버지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잉어 잡이에 나선 자매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드디어 팔뚝만한 잉어를 잡게 되었다.
이제는 아버지를 살릴 수 있겠다 싶어 잉어를 가지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잉어를 독 안에 넣어두고는 가마솥에 물을 끓이기 시작하였다.
물을 끓이는데 정신이 팔려 있는데 어디선가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들어보니 독에서 나는 소리였다. 자매가 독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놀랍게도 잉어가 말을 하였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저는 용왕의 딸이에요. 저를 살려주시면 아버지를 살릴 수 있는 약을 드릴게요.”
잉어가 말을 하다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를 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잉어의 말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하지만 잉어가 말을 하는 것도 신기한 일인데다 용왕의 딸이라니 신경이 쓰이기는 하였다.
그래서 자매는 고민 끝에 잉어의 말을 믿어보기로 하였다.
“잉어야. 네 딱한 처지도 이해되지만 우리 아버지도 잘못하면 돌아가시게 생겼단다. 그러니 너를 놓아줄 테니 반드시 약을 구해다오.”
자매는 개울로 가서 잉어를 다시 놓아주었다. 놓아주면서도 신신당부하였다. 자매의 눈물어린 이야기를 알아들었는지 잉어는 자매를 힐끔 돌아보는 것 같더니 물속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그날 밤 자매는 잠을 설쳤다. 과연 잉어가 약속을 지킬 것인가, 아버지 병은 나을 수 있을까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 보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방을 나간 자매는 집안 이 곳 저 곳을 살폈다. 용왕의 딸이라는 잉어가 약속을 지켰다면 집 어디엔가 약을 가져다 놓았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보아도 약 같은 것은 없었다. 실망 반 걱정 반 하던 자매는 그래도 부모님 아침 식사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부엌으로 들어갔다. 한참 밥을 짓고 있는데 어디선가 푸드덕 하는 소리가 들였다. 독에서 나는 소리였다.
‘음? 잉어는 분명히 살려주었는데 무슨 소리지?’
살며시 독 가까이 다가가서 뚜껑을 열어보니 세상에 잉어가 있던 독 안에 커다랗고 까만 가물치가 들어 있었다. 딸을 살려준 대가로 용왕이 보낸 것이 분명하였다. 그래서 그 가물치를 가마솥에 푹 고아서 아버지를 드리고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푹 주무시게 하였더니 다음날 아버지가 툭툭 털고 일어나셨다.
다음 해 가을 어느 날, 자매는 계곡 근처로 나무를 하러 갔다. 가을에는 낙엽으로 불을 때는 집이 많아서 낙엽을 모아 내다 팔기도 하고, 부모님 방에 불을 지피기도 하였다. 그래서 가을이면 밭일을 하는 틈틈이 낙엽을 모으는 것이 일과였다.
그런데 동생이 낙엽을 긁다 보니 뜻밖에 무슨 알이 하나 보였다.
“이게 무슨 알이지?”
그러자 언니도 와서 보고는 깔깔깔 웃으며 말했다.
“어머! 무슨 알이 이렇게 작은 게 있담?”
그리고는 다시 낙엽을 긁어모으는데 이번에는 언니가 갈퀴질을 하는 낙엽 밑에서 알이 하나 보였다. 아까 알하고 똑 같이 생겼다. 그래서 이리저리 살펴보니 낙엽 아래에 거북이가 한 마리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이 알들이 거북이 알이었던 모양이다.
거북이를 보니까 조금 미안하기는 했지만 자매는 거북이마저 잡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께 삶아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역시 독 안에 넣어두었다. 자매가 가마솥에 물을 끓이고 있는데 갑자기 펑 하는 소리가 나더니 독 안에 있던 거북이가 사람으로 변하였다. 그리고는 자매에게 말하였다.

“나는 용궁에서 나온 사람이오. 그대들이 가난한데도 착한 심성을 가지고 부모에게 효심이 지극하다 하여 용왕님께서 특별히 나를 보냈소. 지난번에 용왕님의 딸을 살려준 데 대해서도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셨소이다. 이 알을 삶지 말고 그대로 두면 얼마 안 가서 거북이가 생길 것이니 함께 살도록 하시오.”
그리고는 거북이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거북이가 사라지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정말 독 안에는 새끼 거북이 두 마리가 태어났다.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여 자매는 각자 한 마리씩 이름을 지어주고 따로 길렀다. 얼마나 귀여웠는지 나무를 하러 갈 때도 자매는 자기 거북이를 호주머니에 넣어갈 정도였다.
어느 날 마을 김부잣집에 도둑이 들었다. 하지만 누구의 소행인지는 몰라도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 내부의 소행이 분명하였지만 물증이 없으니 어찌 해볼 수가 없었다. 도둑을 잡아주면 열 냥의 상금을 준다고 방을 내걸었다.
김부잣집에 삯바느질을 하러 갔던 언니가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별 다른 생각 없이 김부잣집을 나서려는데 놀랍게도 호주머니 속에서 거북이가 말을 하였다.
“삼월이, 삼월이가 범인이야.”
거북이가 말을 한다는 것이 신기하였지만 용왕의 딸부터 용왕의 신하까지 한두 번 겪어본 일이 아니라 언니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대신 김부자를 만나 삼월이라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정말 삼월이라는 종이 있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김부자는 삼월이 방에서 정말로 도둑맞은 패물이 나오자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언니에게 상금 열 냥을 주었다.
얼마 뒤 전라감영에 큰 변고가 생겼다. 김부자의 아들이 전라감영에 근무하는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곤란하게 생겼다. 중요한 문서 하나가 사라졌는데 보름 안에 찾지 못하면 김부자 아들이 곤경에 처하게 생겼다. 하지만 보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문서의 행방은 묘연하였다.
김부자는 아들을 돕기 위해 언니를 불렀다.
“낭자, 지난번에도 도움을 받았는데 이번에도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
김부자 이야기를 들은 언니는 잠시 생각해보고 오겠다고 하고는 바깥으로 나가서 거북이에게 물었다. 그러자 거북이가 말했다.
“점을 쳐보면 열여덟이라고 나올 거야.”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서 김부자에게 그 말을 전하였는데, 김부자 역시 감이 잡히지 않아 아들에게 그대로 전하였다. 김부자의 말을 전해들은 아들은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무릎을 탁 폈다. 그리고는 자신의 경쟁자인 박아무개의 방을 뒤져 문서를 찾을 수 있었다. 점(卜)을 쳐보니 열여덟(木)이라는 말은 실은 박(朴)자의 풀이였던 것이다.
그러한 인연으로 언니는 김부잣집 아들과 혼인을 하게 되었고, 언니의 도움으로 김부자 아들은 승승장구 하게 되었다. 동생 역시 거북이의 신통한 능력으로 크게 되었고, 부모님을 모시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
(※ 이 이야기는 순천대학교 총장을 지낸 故 최덕원 선생님께서 채록한 설화에서 기본 뼈대를 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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