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약사의 노인예찬 “약보다 술이 더 좋아!”

정철 약사/인애약국
2024-12-17 08:42

약국에 오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술이 과연 건강과 장수에 해로운 것인지 의심이 생긴다. 종종 술을 드시고 병원에 다녀온 분들이 있는데, 어느 날 그런 분이 한 분 오셨다.

그래서 “아니 술을 드시고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이 싫어하실 텐데 뭐라 안 해요?” 그러자 “뭐, 허허. 어쩔 건가. 일하다 보면 술 한 잔 하게 되고, 아픈께 병원에 오긴 와야 되고, 일을 할라면 술 없인 못한단 말이씨. 인자 원장도 그러려니 하고 웃어버리고 아무 말도 안 한단 말이시.” 그러신다.

그러면서 하신다는 말씀이 “이왕 이렇게 된 거 자네 약사한테 앗사리 말할게. 나는 하루에 소주 2홉 들이 두 병에 담배 두 갑 묵거든. 그래도 아무 이상 없어! 병원에 가서 검사해 봐도 황달기만 조금 있고 괜찮당께.”

내가 “아니 그게 안 좋은 것이지 뭐가 괜찮아요? 술 좀 줄이세요.” 하니 “아이고 괜찮어! 아직도 60년은 더 살 것이여. 내가 죽었으면 지금 몇 번도 죽었제. 위(염라대왕)에서 내 명부를 빼버렸데. 하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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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귀가 약간 어두우신 한 영감님이 염증으로 수술을 받고 항생제 처방을 받아오셨는데, 약을 드리면서 “어르신. 이 약 드실 때는 술 드시면 안 됩니다.” 했더니만 “아따! 술을 3일간 참았드만 밥맛이 없고 사람 말라죽겄네.” 하시니 옆에 기다리던 손님들이 “저 영감님 별 웃긴 소리도 다 하시네. 술이 뭐가 좋다고 그런다요?” 하며 죽겄다고 웃는다.

내가 “아무튼 어르신. 이 약은 오늘 점심때부터 식사하고 드세요?” 하니 귀가 어두우신 이 어르신 얼마나 술을 갈망했는지 “뭐? 점심때부터 술 먹어라고?” 그러시는 것이 아닌가. “아니요. 할아버지. 약 드시라고요?” 그래서 또 한 번 약국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얼마 전에는 대서면에서 오신 83세 어르신이 약을 지어 놓으라고 처방전을 주시고 밖으로 나가시더니 한참 지나 “요 위에 마트 가서 소주 한 병 사왔네. 컵 하나만 줘 볼란가?” 하시더니 종이컵에 소주를 따르더니만 쪽쪽 소리내며 맛나게 드셨다.

내가 “어르신. 안주도 없이 그렇게 술을 드시면 몸에 해롭죠?” 하니까 호주머니 속에서 막대사탕 하나를 꺼낸다. 그러더니 “이 사탕 뽈아 묵으면 안주제 뭐 있당가? 글고 이따 집에 가서 된장국 한 그릇 묵어불면 속이 싹 풀어지면서 아무 이상없이 개운하네. 난 일 년 열두 달 된장국을 끓여놓고 날마다 묵네. 술에는 된장국이 최고여.” 하시면서 또 한 잔 따라서 드시고 막대사탕을 쪽쪽 빨아 드신다.

손님들이 “아이고! 할아버지 약국에서 뭔 술이다요. 손님들이 다 보고 있는디. 글고 뭔 술을 사탕에다 드신다요? 첨 봤네, 영감님도!” 그러자 “당신들도 한 잔씩 하실라요?” 하며 영감님이 권하자 “아이고 안주도 없이 뭔 술이다요? 냅두쑈. 우리들은 안 묵을라요. 영감님이나 많이 잡수쑈.” 한다.

어르신이 “약사 양반! 약국인께 오늘 술은 여기까지 마시고 내가 낼 또 병원에 와야 한디, 이 남은 술을 어찌 가져 가겄는가? 여기다 놔두고 낼 나가 오면 줄란가?” 하니 할매들이 “아니! 영감님이 참 웃기네. 뭔 술을 냄기고 낼 주라 한다요. 여기가 약국이제 술집이다요?” 그러신다.

그래서 나도 장난기가 발동해서 “어르신. 그럼 여기 남은 곳에다 싸인펜으로 금 긋어 칠해 놀까요?” 하니 “아니. 뭐 금까지 그어! 그냥 놔둬. 누가 먹은당가?”

그래서 “그럼 냉장고에 키핑(보관)해 놓을까요?” 하자 “아이고! 그냥 어디 암데나 놔두고 낼 오면 줘. 뭐! 얼마나 된다고.” 하신다.

그 후로도 치료받으러 네 번 정도 오셨는데 나는 그때마다 종이컵과 최상의 서비스를 위해 칼라 비닐리본이 달린 이쁜 막대사탕과 키핑해 놓은 소주 반 병을 준비하고 어르신을 기다리는 주점 아저씨가 된다.

연말을 맞아 술자리가 잦은 요즘, 나는 이분들을 보면서 즐거운 술자리와 건강을 위해 막걸리와 소주도 키핑하는 절제된 음주문화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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