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쇠둠벙쏘와 구녕바구

한국설화연구소
2024-12-02 15:08
순천설화

순천 서면에 있는 추동마을은 예로부터 순천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다. 추동마을을 거치지 않고는 한양으로 가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특히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들은 추동마을이 하나의 통과의례였는데, 여기에는 하나의 전설이 있다.

 

아주 오랜 옛날 추동마을 사람들은 원래 청소 쪽으로 약 300m쯤 떨어진 ‘괴샅’에 살았다. 괴샅은 ‘괴사터’의 줄임말로, 아마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호환을 입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싶다.

쇠둠벙소.JPG

괴샅마을 사람들이 이무기를 쫓아버려 호환이 생겼다고 전해지는 쇠둠벙쏘. 근처에 산장이 많이 생기고 개발이 잦아 물이 많지 않다. 호환이 생긴 이후 괴샅에 살던 사람들은 지금의 추동마을로 옮겨왔다고 한다.

괴샅마을 근처에는 쇠둠벙쏘가 있다. 어느 날 쏘 근처에 매어두었던 소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마을 사람들이 다 나서서 찾아보았지만 소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 후 또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마을 아이 하나가 쇠둠벙쏘 근처에 소를 매어놓고 동무들과 놀고 있었다. 숨바꼭질 놀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갑자기 ‘크엉!’ 하는 소 울음소리가 났다. 깜짝 놀란 아이들이 소를 매어놓은 곳으로 달려가 보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풀을 뜯어먹고 있던 소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대책회의가 열렸다.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라면 소를 해친 흔적이라도 남아 있어야 할 텐데 전혀 흔적이 없었다. 참으로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들 혀만 찰 뿐 별 뾰족한 수가 없이 앉아있는데 마을 청년 가운데 한 명이 제안을 하였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미끼를 던지면 어떨까요?”

“미끼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마을 어르신 가운데 한분이 물었다.

“소가 사라진 곳 근처에 송아지를 한 마리 매어놓고 멀리 숨어서 지켜보는 것입니다.”

“송아지를? 그래.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소가 사라진 게 아침(辰時 7시~9시)입니다. 아이들이 아침을 먹고 소를 몰고 나간 때가 주로 진시였거든요.”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날을 정해 그날 아침 진시에 송아지 한 마리를 쇠둠벙쏘 근처에 매어놓고 먼발치에서 지켜보았다.

하지만 한 시간이 넘게 기다려도 별다른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성질 급한 사람 한 명이 나섰다.

“괜히 시간만 버리는 것 아녀? 더 이상 기다릴 것도 없이 그냥 돌…!”

그때였다. 마을 사람들이 막 철수하려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쇠둠벙쏘에 갑자기 물결이 일더니 커다란 이무기가 하늘로 솟구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송아지를 휘감고는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함께 보지 않았다면 서로가 믿기 힘든 그런 광경이었다. 사람들이 놀란 입을 다물기도 전에 송아지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둠벙 속으로 사라졌고, 이내 쇠둠벙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잔잔해졌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마을로 돌아온 뒤 한 동안 넋을 놓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다시 정자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였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뭔가 대책을 세울 텐데 워낙 커다란 이무기를 보았는지라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미끼를 던지자는 제안을 하였던 청년이 다시 의견을 내었다.

“이번 참에 아예 쏘의 물을 다 퍼버리면 어떨까요?”

“물을 퍼버리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역시 마을 어르신 한분이 물었다.

“이무기가 아무리 무섭다지만 물이 없으면 힘을 발휘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쏘의 물을 다 퍼버리면...”

“하지만 그 많은 물을 어찌 다 푼단 말인가?”

“우선 물길만 막아도 쏘의 물이 대부분 줄어들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푸면 되지 않을까요?”

의견이야 좋았지만 선뜻 누구도 그러자고 동조하는 이 없었다. 영물 같은 이무기에게 무슨 변을 당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냥 있는다고 해서 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결국 청년의 이야기대로 날을 잡아서 쇠둠벙쏘의 물을 퍼내기로 하였다.

물을 푸기로 한 날 새벽(寅時 3시~5시) 마을 사람들은 하늘에 제를 올리고 나서 물길을 막았다. 그러자 쏘의 물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리고는 쏘의 물을 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무기가 무서워 멈칫멈칫 하던 사람들도 일단 일이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신명나게 물푸기를 하였다.

그런데 거의 바닥이 보일 때까지도 쏘에는 이무기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쏘의 물이 다 말랐는데도 이무기는커녕 피라미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상한 일은 그 다음부터 일어났다. 쇠둠벙쏘의 물을 다 퍼버린 다음날부터 마을에 있는 가축들이 밤만 되면 숨진 채 발견되었다. 심지어 가축을 지킨다며 밤을 새던 어르신 한 분이 변을 당하기에 이르렀다. 어르신이 변을 당한 후로 마을 사람들은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였다.

그렇게 불안한 나날을 보내자 마을 어르신 가운데 한분이 용하다는 도사를 불러왔다. 도사가 마을 이곳저곳을 살펴보더니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알고 보니 호랑이의 짓이었다.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할 날을 기다리던 쇠둠벙쏘의 이무기는 실은 마을을 지키던 수호신이었다. 이무기 때문에 호랑이가 마을을 넘보지 못하였는데, 그 이무기를 쫓아버리는 바람에 호랑이가 나타나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도사님, 그럼 어찌해야 할까요? 이무기를 다시 불러올 수도 없고...”

“지금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마을을 옮기는 것이 차라리 빠른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도사의 말대로 호환을 피해 지금의 추동마을로 옮긴 마을 사람들은 이무기가 사라진 날 해마다 쇠둠벙쏘에서 이무기를 달래는 제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문제는 한양길이었다.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는 선비들은 반드시 추동을 지나야 하는데 호환이 두려워 과거를 보러가지 못하였던 것이다. 산길을 가지 않으려면 목냉깃재(추동에서 송내로 가는 고개)를 넘으면 되는데 목냉깃재는 커다란 바위가 가로막고 있어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몇 년 후 어느 날, 그날도 이무기의 혼을 달래며 호환을 막아 달라 마을 사람들이 제를 지내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갑자기 마른하늘에 벼락이 쳤다. 그러더니 목냉깃재 바위에 놀랍게도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목냉깃재.JPG

추동에서 송내로 가는 고개를 목냉깃재라 부르는데, 커다란 바위가 가로막고 있어서 한양으로 가려는 사람들은 깊은 산을 지나야 했다. 호환을 두려워 한 마을사람들의 염원이 하늘에 닿았는지 어느 날 바위에 벼락이 내려 구멍이 뚫렸다고 한다. 그것이 지금의 구녕바구다.

그것이 지금의 구녕바구(孔岩)다. 그때부터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은 구녕바구를 지나 한양으로 갔다. 그래서 순천 사람들은 추동마을의 구녕바구를 과거 시험의 첫 관문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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