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이야기 '술’과 ‘주(酒)’의 어원
우리말 어휘는 고유어(순우리말), 한자어, 외래어로 나눌 수 있다. 한국어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 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고유어가 제일 처음 만들어졌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래서 가장 원초적이고 본질 인 사물의 이름은 다 고유어로 되어 있다. 몸, 눈, 코, 귀, 입, 팔, 밥, 물, 나, 너, 우리, 하늘, 땅처럼 대부분 한 글자 나 두 글자로 단순하다.
‘술’이라는 말도 한 글자로 된 순우리말이다. ‘술’과 소리나 모양이 비슷한 단어로 물, 불, 풀 같은 말들이 있다. 풀은 눈만 뜨면 보이는 땅이나 하늘처럼 자연의 일부이다. 물과 불은 사람살이에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불가결한 사물이다. 이로 미루어보면 ‘술’도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류와 함께한 사물임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술’이라는 말을 가만히 발음해보라. ‘ㄹ’이 유음이라 발음하기 쉽다. ‘술술’은 말이나 생각, 일 따위가 막힘없이 잘 풀릴 때 쓰는 의태어다. 이에 바탕하여 사람들은 술이라는 말이 술술 잘 넘어가기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듯하지만 맞는 말은 아니다.
‘술’이 ‘수불’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옛 사람들이 술동이에서 술이 발효 하여 부글부글 괴는(익는) 모습을 보고 물 속에 불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여 수불 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중세국어에서는 오늘날 ‘불’이 ‘블’이었으므로 한자어 수 (水)와 블이 합성되어 스블>수을>수울>술로 변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도 그럴 듯하기는 하지만 수긍하기는 어렵다. 술이 익는 모습을 보고 불을 연상했다는 주장이 억지스럽다. 그리고 고조선 때 한자어(水)와 고유어(블)를 결합하여 합성어를 만든 예가 없다. ‘물불’이나 ‘불물’이라는 고유어 합성어가 훨씬 만들기도, 부르기도 쉽다. 수박(水박)이라는 말이 있다고 반박하지만, 수박은 고려 때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술은 고조선 이전부터 있었다.
고대 인도어인 범어 ‘수라’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국물을 뜻하는 일본어 ‘시루 (汁)’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고려시대에는 수(酥)로 적었고(손목 『계림유사』), 수본(數本)이라 하기도(『조선관역어』) 했다는건 맞다. 조선시대에 편찬한 『두시언해』와 『삼강행실도』에는 ‘수을’로 기록되어 있는건 분명하고, 조선 중종 대에 나온 『훈몽자회』에는 ‘술’로 기록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걸 종합해 봐도 ‘술’이라는 말이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술에 해당하는 한자 주(酒)는, 물 수(氵) 변에 술 유(酉)로 되어 있다. 술을 말할 때 유자 하나만 쓰기도 했으나,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나중에 수(氵)를 추가했다고 한다. 유(酉) 자는 술을 빚어 담아놓은 항아리 모양을 본 딴 상형 문자이다. 그래서 술이나 발효와 관련된 한자에는 모두 유(酉) 자가 들어간다. 술 항아리(酉) 에 뚜껑(八)을 닫은 모습을 한 ‘오래된 술 추(酋)’ 자도 술이란 의미로 사용된다. 술에 몹시 취했다는 ‘명정(酩酊)’이란 말에도 유변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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