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소가죽의 가르침

한국설화연구소
2025-01-14 13:40
구례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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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는 수많은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지리산 둘레길 오미방광의 도착 지점이자 방광산동 구간의 출발지인 구례군 광의면 방광마을 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입니다.

 

조선 성종 3년(1472)에 있었던 일이다.

지리산 쌍계사에 우봉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는 결제1)철인데도 불구하고 여름안거 반살림2)이 끝나자 걸망을 메고 노고단을 넘었다. 꼬박 이틀을 걸어 산 정상에 오르니 초여름이건만 서늘했다. 동굴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화엄사로 향 했다.

한참을 가던 스님이 갈증이 났다. 하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샘은커녕 날 이 가물었던지 계곡조차 말라 있었다. 그때 스님의 눈에 보리밭이 들어왔다. 누 렇게 익은 보리가 탐스럽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우봉 스님은 갈증을 못 이기 고 보리이삭에 손을 대고 말았다. 보리이삭을 입에 털어 넣자 어느 정도 갈증이 가셨고, 그 순간 우봉 스님은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걸 깨달았다.

 

1. 입제(入制)라고도 한다.

승려들은 ‘안거’라고 하여 일정 기간 동안 외출을 하지 않고 한데 모여 수행 (修行)을 하는데,

하안거(夏安居)의 첫날인 음력 4월 16일과 동안거(冬安居)가 시작되는 음력 10월 16 일에 행하는 의식을 결제라고 한다.

또 여름의 결제를 결하(結夏), 겨울의 경우를 결동(結冬)이라 구분 하기도 한다. 여름을 맺고, 겨울을 맺는다는 뜻이다.)

2. 하루 일정을 모두 소화하는 ‘온산림’과 반나절만 동참하는 ‘반살림’

 

“아~ 주인의 허락도 없이 남의 보리이삭을 꺾어 먹다니. 그것도 세 개씩이나! 이 를 어쩐다?”

 

낙심한 우봉 스님은 한참을 고민하다 지리산 입구 어느 큰 바위 아래에 승복과 바랑을 던져두고 염불을 외었다. 그러자 우봉 스님이 순식간에 소로 변했다.

큰 바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에서는 갑자기 임자 없는 소가 나타나자 주인을 찾는다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 사나흘을 찾아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자 결국 관 가에 신고를 하게 되고, 고을 원님은 소를 제일 처음 발견한 사람에게 주라고 판 결을 내렸는데 그 사람이 바로 보리밭 주인이었다.

뜻밖에 소를 얻게 된 보리밭 주인은 너무나 기뻤다. 마을 사람들은 경사났다며 축하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워했다. 보리밭 주인은 소에게 ‘업동이’이라는 이름도 붙여 주었다. 소는 주인이 자기를 귀히 여기는 것을 알았는지 말도 잘 듣 고 일도 잘했다.

소를 얻은 지 3년 정도 지나자 보리밭 주인은 재산도 불어나 살림이 제법 넉넉 해 졌다. 그런데 지난밤부터 업동이가 여물도 안 먹고 끙끙대기만 했다.

 

“업동아, 왜 그냐. 어디가 아픈거냐?”

 

소리도 없이 눈만 꿈뻑거리는 업동이를 보며 보리밭 주인은 애가 탔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 사흘째 되는 날 끙끙대던 업동이가 느닷없이 똥을 누었다. 그런데 업동이가 눈 똥이 희한한 빛을 내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업동이가 눈 똥에는 글이 새겨져있었고 빛은 그 글씨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내일 밤 도적들이 오면 당황하지 말고 융숭하게 대접하라.’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당황하던 주인은 그동안 업동이를 얻게 된 일이며 업동이 가 자신의 살림을 펴게 해준 일 등을 떠올렸다.

‘그래, 이건 예삿일이 아니어. 필시 그만한 까닭이 있을 거시어.’

주인은 집안사람들을 채근해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날이 새도록 음식과 도둑 들에게 줄 물건들을 챙겼다. 아내와 자식들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주인이 뭔가에 홀린 것은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다.

이튿날 밤이 되자 과연 도적 떼가 집을 덮쳤다. 주인은 짐짓 태연한 체 문을 열 고 도적떼를 맞았다.

 

“어서 오시오. 눈 빠지게 지달렸구만요. 어서어서 안으로 드셔서 요기부터 하십 시오.”

 

도적들은 깜짝 놀라 서로를 쳐다봤다.

 

“두목 저 인간이 미친 거 아닐까요?”

“맞어. 눈도 살짝 맛이 간 것 같은디!”

 

두목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두목이 아닌가.

 

“시끄럽다. 일단 들어가 보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 정신들 바짝 차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진 밥상을 받은 도적들은 군침을 꼴깍거리면서도 선 뜻 손을 대지 못했다. 두목은 주인을 매섭게 째려보며

 

“혹시 음식에 약 넣은 거 아냐?”

 

두목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머지 도적들도 일제히 주인을 향해 으름장을 놓았다.

 

“그럼 그렇지! 뭔가가 있었어. 어째 말도 안 되게 반기드라고.”

“이 봐, 주인장. 주인장이 먼저 묵어보시오. 전부 다~!!”

“주인장이 암시랑토 않으믄. 우리도 묵을랑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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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마을 마을회관 앞에 세워진 마을 유래비

도적들은 예기치 않은 상황에 나름 잘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침만 꼴깍 거렸다.

 

“하하하. 그럽시다. 내가 먼저 묵어 볼라요!”

 

주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음식을 먹었고 그런 주인을 바라보던 도적들도 뒤따라 허기를 채웠다. 식사를 마치고 두목이 주인에게 어찌 그리 태연할 수 있냐고 묻 자. 주인은 업동이와 업동이가 눈 똥 이야기를 해주었다.

도적들은 도무지 믿기 어렵다는 표정들이었다. 주인은 도적들을 데리고 외양간 으로 갔다.

 

“어? 업동이가 없네. 업동아~ 업동아~”

 

외양간에는 업동는 없고 업동이가 눈 똥만 예의 그 희한한 빛을 내뿜으며 놓여 있었다.

날이 밝자 도적들은 소 발자국을 따라갔다. 발자국은 지리산 입구 어느 바위 아 래에서 멈췄다. 그 바위 아래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이 소가죽만 달랑 놓여 있었 다. 소가죽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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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마을에 자리한 지리산 여신 마야고의 ' 소원바위'. 마야고는 반달모양의 참새미마 을이 예뻐 자주 놀러가고 했는데, 어느날 자 식이 간절해 치성을 드리고 있는 아낙의 딱 한 사정을 듣고 노고단 정상에 있던 신통한 바위를 가져다주었고, 그 바위를 품고 소원 을 빌은 아낙은 아들을 얻었다는 전설의 바 위다. 2005년, 참새미마을에 있던 바위를 지금의 장소로 옮겼다.

‘소승은 지리산의 중으로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무심코 보리이삭 세 개를 주인의 허락도 없이 꺾어 먹었습니다. 그 벌로 소가 되어 3년 동안 보리밭 주인에게 빚 을 갚고 갑니다. 제 소가죽을 저 남해 바다에 던져 우뭇가사리가 되게 하십시오. 후에 그것을 거두어 약재를 만들면 열뇌에 시달리는 중생들의 더위를 식혀줄 것 입니다.’

소가죽의 글을 읽고 난 도적떼는 큰 깨달음을 얻고 가까운 화엄사에 들어가 머 리를 깎고 불가에 귀의했다. 스님이 된 도적들은 열심히 도를 닦아 모두 훌륭한 고승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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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마을 전경

또 다른 이야기로는 지리산 한 암자에 살던 노승과 젊은 스님이 이 마을을 지나 다 젊은 스님이 조 세 알을 주워 왔는데 이를 본 노승이 “너는 주인이 주지 않은 곡식을 탐하였으니 이 곡식의 주인집에서 3년간 일을 해 빚을 갚아라”고 하며 젊은 스님을 소로 변신시켜 3년 간 소처럼 일하는 벌을 내렸다는 얘기가 있다. 아무튼 그 곳이 바로 쇠똥에서 ‘밝은 빛이 나왔다’고 하여 방광(放光)면, 소가 똥 누었다해서 우분(牛糞)리, 즉 쇠똥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방광면은 소의면과 통합돼 광의면이 되면서 방광마을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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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마을의 보호수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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