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여우도 탐낸 명당- 구호농주지혈(九狐弄珠之穴)

한국설화연구소
2025-01-14 13:31
순천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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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 별량면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이다.

 

어느 마을에 삼형제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첫째와 둘째는 장가를 가서 자식도 보고 그런대로 사람구실하면서 사는데 막내가 유독 하라는 공부도 안 하 고 어머니 속을 썩여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그러다 덜컥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만다. 3년 상을 지내는 동안 막내는 어머니께 불효한 것을 후회하며 3년 내내 온 정성을 다했다. 3년 상을 마치고 어머니의 묏 자리를 정해야할 때가 되었다.

집안 형편이 어렵다보니 실력 있는 지관을 구하지 못해 고민하던 두 형들에게 어느 날 막내가 “형님들은 제 말대로만 하십시오. 그러면 어머니 묏자리 좋은 델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하며 큰 소리를 쳤다. 두 형은 막내가 큰소리를 치자 믿 기지는 않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지지해주기로 했다. “그...그 래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느냐?”

 

때는 봄이라 마침 소를 끌고 논 갈고 밭가는 시기였다.

 

“형님들 내일은 제가 소를 몰고나가 저기 큰길가 논을 갈고 있겠습니다. 아마 스 님 한 분이 재 너머에서 제가 있는 쪽으로 넘어 올 겁니다. 스님이 가까이 오면 제가 그냥 패대기를 치고 봉변을 줄 랍니다. 그때 형님들이 쫓아 나와 저를 죽일 놈 살릴 놈 하면서 혼을 내고 그 스님을 구하십시오.”

 

난데없이 스님과 활극을 펼치겠단 소리에 두 형은 “그... 그게 무슨 말이냐?” 놀 라며 물었다.

 

“그냥 제가 말씀드린 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형님들이 나타나 절 나무라면 저는 냅다 도망을 갈 겁니다. 그러면 두 형님께서는 스님을 집으로 모셔서 극진히 대 접하시면 됩니다.”

 

막내의 얘기가 황당하였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두 형은 동시에 고개 를 끄덕였다.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막내는 소를 몰고 논으로 나갔다. 두 형은 그런 막내를 멀 찌감치 서서 지켜보았다. 해가 중천에 다다를 쯤 막내의 예측대로 재 넘어 스님 하나가 논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 지켜보고 있던 두 형제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느닷없이 막내가 스님을 논 한 가운데로 끌고 가더니 패대기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아...아니 저 미친놈이 뭔 짓을 하는 것이야!!”

“이놈아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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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동생과 나눈 얘기는 떠올리지도 못했다. 눈앞에 벌어진 망측한 상황을 제 지하려는 맘만 앞선 두 형이 논으로 뛰어들어 스님을 구해냈다.

막내는 어느 틈엔가 도망을 가버리고 두 형제는 누가 먼저랄 것이 없이 스님을 들쳐 업고 집으로 모셨다. 옷이 찢어지고 몸에 상처도 난 스님은 “어이쿠. 오늘 은 일진이 영 사납네. 다행히 두 처사님 덕분에 더 큰 봉변은 면했구려. 부처님 의 보살핌이겠지요. 허허” 하며 대수롭지 않은 듯 웃기까지 하였다. 보통 스님이 아니란 생각에 두 형제는 스님을 극진히 보살폈다.

 

옷을 새로 짓고, 상처를 치유하느라 이틀 밤을 묵게 된 스님이 “이렇듯 지극 정성으로 보살핌을 받으니 소승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혹여 제가 도움이 될 만 한 일이 있거든 말씀해 보시지요” 라며 운을 띄웠고, 두 형제는 스님에게 어머니 의 삼년상을 치르고 묏자리를 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두 분께 짚어줄만한 곳이 있습니다. 내일 날이 밝으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이튿날 스님을 따라 나선 두 형제는 막내의 말이 맞았다고 좋아하며 스님의 뒤 를 따랐다. 마을 뒷산의 초입에 다다른 스님의 발길이 멈춘 곳은 다름 아닌 할미당(선황당)이었다. 양지바르고 보기에도 좋은 땅을 기대했던 두 형제는 실망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

 

“ ‘구호농주지혈’이라... 흠. 이 곳을 치우고 하관할 준비를 해두시오. 그러면 모월 모일 모시에 내가 올 터이니 어머님을 함께 모십시다.”

 

실망한 내색도 못하던 두 형제는 길일까지 잡아 직접 하관에 참여하겠다는 스님을 보고 하는 수 없이 그러마하고 약조를 했다. 할미당 앞에 쌓여있던 돌을 다 치우고 하관 준비를 마친 두 형제는 제단을 놓고 스님과 약조한 길일까지 번갈아가며 조석으로 제를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저녁제를 올린 큰 형이 잠시 쉬고 있는데 제단 너머에서 낯 익은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늘 말썽만 피던 막내의 말을 믿었던 것이냐? 그 중은 너희들의 속을 훤히 들여 다보고 있다. 자기를 두들겨 팬 자의 어미에게 좋은 묏자리를 줄 것 같으냐? 날 이곳에 묻으면 형제간에 불화가 생기고 종국엔 집안이 망하고 말 것이다!”

 

혼비백산한 큰 아들이 둘째에게 그 일을 말하자 둘째는 믿지를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럼 내일은 네가 저녁제를 올려 보거라. 그럼 알게 될게야”

 

그날 밤 둘째 아들이 제를 마치고 주변을 정리하는 데 형이 말한 것과 같이 어머 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안이 망하는 꼴을 보려는 게냐. 그놈의 땡중이 막내에게 원한을 품은 것이다. 날 이런 곳에 묻으면 너희들은 모두 비명횡사를 면치 못한단 말이다!”

 

두 형제는 곧바로 막내를 찾아 스님과의 약조와 할미당에서의 일을 알렸다.

 

“아무래도 스님이 앙심을 품은 것이 분명해. 돌아가신 어머니가 저렇게 걱정하 는 목소리로 우릴 찾은 걸보면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두 형의 얘기를 들은 막내는 “그럼 오늘 밤엔 제가 제를 올리겠습니다.”라고 말 했다.

밤이 되자 막내는 제를 올리고 제단 앞에 앉았다.

 

‘스님이 구호농주지혈이라 했다고?...!!’

 

조금 있으니 형들이 말한 대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이고 이놈 막내야. 내가 네 장가가는 모습을 보고 왔어야하는데. 한이 되고 말았다. 아침 저녁으로 두 형들은 보이는데 네가 안 보여 내 맘이 많이 아팠구나. 너도 부디 이 자리에 어미를 묻지 않도록 형들을 잘 설득해야한다.”

 

그 소리를 들은 막내가 울먹거리며 “아이고 어머니. 이렇게라도 목소리를 들으 니 여한이 없겠습니다. 다만 어머니 목소리만 듣자니 소자 가슴이 터질 것 같습 니다. 부디 오셨으면 이 막내 손이라도 한 번 잡아 주고 가세요. 어머니~” 하면서 무릎걸음으로 제단 앞에 가까이 다가서자 “그래. 그래 그것이 네 소원이라면 네 손을 못 잡겠니. 이리 오너라 내 아들”  하며 제단 뒤에서 하얀 손이 숙 나오는 것 이 아닌가. 그때 막내는 품에서 시커먼 칼을 빼들고는 그 손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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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짐승의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바닥에 잘린 손이 떨어지고, 어머니의 목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손은 이내 짐승의 발로 변했다.

 

“그러면 그렇지 여우의 짓이렷다.”

 

약조한 날에 스님을 모시고 하관을 하게 된 두 형제는 제를 지낸 뒤 온다간다 말 도 없이 사라진 막내가 걱정이 되었다. 시간이 되어 하관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 기 파놓은 혈에서 짐승들이 뛰어 나왔다.

 

“으아악! 뭐...뭐야!”

 

혼비백산 뒤로 자빠졌던 형제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앞발 한쪽이 없는 하얀 백 여우가 피를 흘리며 노려보고 있고 그 뒤로 또 다른 여우들이 여덟 마리나 뛰쳐 나왔다.

 

“허허. 구호농주지혈이 맞았구나. 아홉 마리 여우가 노니는 자리. 근데 저 놈은 다리가 잘렸네 그려. 껄껄껄. 인자 이곳은 네 녀석들의 둥지가 아니다. 썩 물렀거라!”

 

스님의 일갈에 여우들은 숲으로 사라지고 두 형제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스님 옆에 와 섰다.

 

“아이고 십년감수했네. 그런데 스님 구호농주지혈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두 형제를 바라보던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도 탐낸다는 명당이 바로 구호농주지혈(九狐弄珠之穴) 이라오. 이곳에 묘를 쓰면 다음 대에 반드시 훌륭한 관리가 나오는 명당인데...

두 분에게는 해당이 안 될 듯하오.”

“그...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스님”

“제가 두 분의 성정에 감복해 이 자리를 짚어드린 것인데 제 생각이 짧았나 봅니다. 이 자리는 기가 약한 이들에게는 명이 짧아지는 액운도 있습니다. 그대들은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헉...그...그렇게 위험한 곳이었단 말이요?”

 

그때,

 

“자격이 없다니요? 나도 이 집안 씨요!!”

 

풀숲에 숨어 지켜보고 있던 막내가 몸을 드러내며 스님을 향해 호탕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모습에 당황한 두 형들이 몸둘바를 몰라하며 말했다.

 

“네...네가 여기서 나오면 어떡하느냐...스...스님...죄송합니다.”

 

막내는 스님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여우의 잘린 발을 내밀었다.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스님의 도력을 얻고 싶으나 별 도리가 없어 꾀를 내었던 것입니다. 자비를 베푸소서.”

 

막내를 본 스님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껄껄 그랬던 게야. 임자는 따로 있었던 게야. 껄껄껄.”

 

삼형제는 스님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를 잘 뫼셨고, 훗날 두 형들은 평범하게 살 았지만 막내는 큰 벼슬을 해 집안을 일으켜 오래도록 영화를 누렸다고 한다.

 

* 이 이야기는 2018년 한국산업정책연구원에서 펴낸 <순천사람들의 삶에 담긴 이야기 說話-문헌자료>에 나온 구술기록을 토대로 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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