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피아골 종녀촌의 슬픈 사연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지리산 피아골 깊은 골짜기. 도무지 사람이 살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 마을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마을과 다를 바 없는데 여인들만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미욱 언니! 나랑 빨래하러 가지 않을래?”
얼핏 보기에도 어려보이는 여자 아이 하나가 이야기하자 미욱이라 불린 여자 아이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대답하였다.
“아냐, 소연아. 오늘은 언니가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래? 그럼 나 혼자 다녀올게.”
여자 아이가 빨래바구니를 들고 혼자 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오며 소리쳤다.
“소연아! 혼자서는 빨래가지 말라 그랬쟎니. 엄마가 해줄 테니 저기 놔둬라.”
아이의 이름이 소연인가 보다. 그런데 소연이 엄마가 무척이나 젊어 보였다. 20대 중반쯤으로나 보이는 소연이 엄마는 소연이 혼자 빨래하러 가는 것을 보고 달려와 만류하였다.
“아니에요. 엄마.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제가 어린앤가요? 뭐? 무섭지 않다구요.”
결국 소연이는 혼자 계곡으로 빨래를 하러 갔다. 소연이가 빨래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살며시 다가왔다. 얼핏 보기에는 여자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소년이다. 여인들만 사는 마을에 남자가 있었단 말인가?
“소연이 혼자 빨래 하니? 무섭지 않아?”
“내가 어린앤가 뭐? 무섭지 않다구.”
소연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걸음걸이만으로도 누군지 아는 듯싶었다. 종간이었다. 열두 살인 소연이보다 세 살 위인 종간은 제법 어른 티가 났다. 어린 소연이 혼자 빨래를 하는 것이 안쓰러웠는지 종간이는 계속 곁에서 지켜보면서 말동무를 해주었다.
그러다 갑자기 종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잽싸게 몸을 숨겼다. 누군가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제법 나이가 들어보이는 중년 여인이다.
“소연이 너 혼자 다니니 말라고 그랬지. 그런데 왜 혼자 다니는 거니? 어미 말이 말 같지 않아?”
“어머니, 죄송해요. 빨래를 도와드리려고...”
어머니? 아까 소연이가 엄마라고 부른 사람은 분명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인이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런데 조금 전 누구랑 같이 있었니? 분명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는데...”
중년 여인은 소연이에게 말을 하면서도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성신(性神)어미. 그녀는 마을사람들이 모두 어머니라 부르는 성신어미였다. 사실상 마을에서는 왕이나 마찬가지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같이 있기는 누구랑 같이 있겠어요. 빨래하다가 혼잣말 한 것을 들으셨나 보네요.”
소연이가 그렇게 둘러대자 더 이상 추궁하지 못하고 성신어미가 한 동안 소연이를 훑어보더니 가자고 독촉하였다.
그러자 소연이는 하던 빨래를 그만 두고 그녀를 따라 돌아갔다.
그날 밤, 소연이는 성신어미에게 불려갔다. 소연이가 돌아오자 소연이 엄마가 소연이에게 바짝 다가가 물었다.
“어머니가 너에게 무슨 말을 하든?”
“별 다른 말없이 달거리를 하느냐고 물었어요. 그런데 달거리가 뭐예요?”
소연이가 묻는데도 소연이 엄마는 대답도 않고 다시 물었다.
“그래, 그래서 뭐라 그랬니?”
“뭐라 그러긴. 달거리가 뭐예요? 했지. 그랬더니 가라 그러던데?”
‘달거리가 뭐지? 달거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기에 엄마가 저렇게 놀라는 걸까?’
소연이는 파랗게 질린 엄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날 밤 소연이 엄마는 뜬눈으로 밤을 샜다. 그리고는 날이 밝자마자 성신어미를 찾아갔다.
“어머니. 소연이는 아직 어린애인데, 달거리라니요. 아직 한참 멀었어요.”
그러자 성신어미가 실눈을 뜨더니 소연이 엄마를 추궁하였다.
“멀기는 뭐가 멀어! 네가 달거리를 한 것도 아마 열두어 살쯤일 걸?”
달거리. 월경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왜 성신어미는 달거리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그리고 왜 소연이 엄마는 소연이 달거리가 아직 멀었다고 하는 것일까?
그랬다. 그들이 사는 마을은 이른바 종녀촌(種女村)이었다. 종녀란 자식을 낳지 못하는 집에 팔려가서 아이를 낳아주는 ‘씨받이 여자’를 말한다. 지리산 피아골 깊은 골짜기에 있는 종녀촌은 바로 씨받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성신어미가 종녀촌을 지배하면서 씨받이가 필요한 집에 은밀하게 종녀를 보내 아이를 낳게 하였다. 아들을 낳아주면 큰돈을 받고, 딸이면 핏덩어리 딸과 함께 종녀촌으로 돌아왔다.
더러는 종녀로 팔려가는 것이 아니라 뒷방아기로 팔려가는 경우도 있다. 나이가 들어 물러난 대감이나 부잣집 노인이 품고 자는 소녀를 뒷방아기라 하는데, 종녀촌으로 그런 주문이 들어오기도 한다. 성신어미야 돈만 주면 뒷방아기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니 종녀들의 굴곡된 삶은 애처롭기 짝이 없었다.
간혹 뒷방아기로 갔다 돌아온 종녀들이 낳은 아들이 있으면 일곱 살이 될 때까지 키우는데, 건장한 아이는 종녀촌에 남게 하여 시동(侍童)으로 키우고, 부실한 아이들은 멀리 내다버렸다. 종간이도 그런 시동 가운데 한 명이었다.
사실 소연이 엄마도 벌써 12년 전에 종녀로 갔다가 딸을 낳는 바람에 구박만 받고 돌아왔다. 그때 낳은 딸이 지금의 소연이었다. 그런데 소연이마저 종녀로 팔려간다는 생각을 하니 죽기보다 싫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소연이가 동무들과 한 바탕 놀고 있는데 성신어미가 미욱 언니를 불렀다. 성신어미를 만나고 온 미욱 언니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며칠 후, 가끔 보았던 것처럼 동네에 잔치가 열렸다. 하지만 소연이는 참석할 수 없었다. 어른들만 참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욱 언니도 잔치에 함께 하는 것 같았다.
그날 밤, 소연이는 엄마가 가져온 고기며 전 등을 푸짐하게 먹었다. 정말 오랜만에 먹어보는 맛있는 음식이었다.
다음날 아침, 미욱 언니를 만난 소연이는 하룻밤 사이에 미욱 언니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미욱이는 멀리 여행을 떠났다. 소연이는 미욱 언니가 가족과 헤어지게 되어서 밤잠을 설쳤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미욱 언니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을에 낯선 여인이 들어섰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그녀를 성신어미가 반갑게 맞이하였다. 낮선 여인을 데리고 들어가던 성신어미가 우연히 소연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소연이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며칠 후, 동무들과 함께 산에서 나물을 캐고 돌아오던 소연이 걸음걸이가 어정쩡하였다. 성신어미가 저쪽에서 오다가 소연이와 마주치려는 순간 소연이 엄마가 잽싸게 소연이를 나꿔채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보니 소연이 속곳에 피가 맺혀 있었다. 달거리였다. 그러자 소연이 엄마가 깜짝 놀라더니 소연이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연아, 잘 들어. 달거리라는 것인데, 이제 소연이도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야. 하지만 어머니가 알면 절대 안 돼. 혹시 물어봐도 달거리를 모르는 척 해야 해. 알겠니?”
소연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달거리에 대해 설명을 들으면서도 그것을 성신어미에게 비밀로 해야 한다는 말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가 워낙 신신당부하는 터라 소연이도 그리 하마야고 약속하였다.
소연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개짐1)을 하였다. 개짐을 하고 보니 소연이 스스로도 뭔가 어른이 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세상에 비밀이 없는 법, 소연이가 달거리를 한다는 이야기는 금세 성신어미의 귀에 들어갔다. 성신어미가 부른다는 말에 소연이는 물론 소연이 엄마도 화들짝 놀랐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인가?
소연이를 불렀는데 소연이 엄마도 함께 갔다. 그러자 성신어미가 소연이 엄마는 돌아가 있으라고 하였다.
“어머니, 제발 부탁이에요. 이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차라리 저를 보내주세요.”
“아니, 알 만한 사람이 왜 이 모양이야? 누가 소연 어미 같은 사람을 보내달라고 하겠어? 우리 세계에서는 이미 니 나이도 버커리2)야! 하는 일도 없이 먹여주고 재워준 것만 해도 어딘데,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성신어미는 도리어 화를 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을 터, 당장 보름 후에 보내야 할 곳이 있으니 그리 알고 준비를 시키도록 해.”
소연이 엄마는 소연이를 데리고 돌아오면서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슬피 울자 영문도 모른 채 소연이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날 밤부터 소연이네는 건장한 청년 몇이서 지켰다. 성신어미 호위를 하는 시동들이었다. 소연이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여인들만 사는 동네였기에 시동들은 종녀들과 말을 섞을 수 없었다. 간혹 종녀들과 눈이 맞은 시동은 쥐도 새도 모르게 변을 당하곤 하였다. 그만큼 성신어미는 종녀촌에서 무서운 존재였다.
보름이 금세 지나갔다. 이제 소연이와 1년 가까이 생이별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전날 밤에조차 소연이 엄마는 소연이와 단 둘이 보낼 수 없었다. 누군가가 종녀로 팔려가기 전날 밤에 종녀촌에서는 어른들끼리 한바탕 잔치가 열리기 때문이다. 종녀를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선금으로 성신어미가 잔치를 여는 것이다. 종녀로 팔려간다는 것이 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겪는 일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오히려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좋은 모양이다.
하지만 소연이와 소연이 엄마, 그리고 또 한 사람, 바로 종간이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종녀촌에서 종녀로 처음 나가는 것은 마치 성인식이나 마찬가지였다. 성신어미가 먼저 제단 앞에서 아들 생산을 비는 제를 올렸다. 성신상과 남근(男根)이 새겨진 제단 앞에서 성신어미는 이상야릇한 주문을 외웠다.
주문을 외우다 열기가 고조되면 성신어미는 입고 있던 옷을 차례로 벗어 던지면서 성신가(性神歌)를 부르며 관능적인 춤을 추었다. 중년의 나이에도 관능미가 넘쳐흘렀다. 그러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성신어미는 호위를 하는 시동들과 어울려 한바탕 욕정을 불태우곤 했다. 물론 처음 종녀로 나가는 아이들에게 음양의 도를 깨우쳐준다는 명분이었다.
제가 끝나면 보통 마을 사람들은 성신어미가 나눠주는 술과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은 성신어미가 시동들과 어울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 제를 보게 된 소연이는 경악 그 자체였다.
성신어미가 절정에 이를 즈음 갑자기 소동이 벌어졌다. 소연이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전날 밤, 소연이 엄마는 소연이와 종간이를 불러놓고 은밀한 당부를 하였다. 종간이가 소연이를 친누이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을 알고 있었던 터라 종간이에게 소연이를 데리고 도망을 가라 일렀던 것이다. 하지만 소연이는 엄마를 두고 도망갈 수 없다고 버텼다.
“어차피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 네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엄마는 그것으로 족하단다. 그러니 제발 엄마 말 좀 들어라, 응?”
결국 소연이는 엄마 당부대로 종간이와 도망을 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제가 절정에 달할 때를 틈타 도망을 가기로 계획을 하였다. 어린 소연이로서는 정말 보기 민망한 낯 뜨거운 제였지만 성신어미가 어떤 소리를 내면 도망가기로 약속을 했기에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창 시동들과 어우러지며 감탕질3)을 하던 성신어미가 까무러칠 듯 소리를 냈다. 지금이다. 소연이가 몰래 밖으로 나가니 종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시동이 지킬 차례였는데 일부러 종간이가 자신이 보초를 서겠다고 하여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소연이가 도망을 간 후 소연이 엄마는 성신어미에게 변을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죽는 순간에도 소연이 엄마는 행복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족쇄와도 같았던 지긋지긋한 종녀의 대물림이 끝났기 때문이다.
종간이와 함께 피아골을 벗어난 소연이는 멀리 종녀촌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피아골 종녀촌의 슬픈 이야기는 남아선호사상이 지배했던 우리 중세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1) 요즘의 생리대 / 2) 늙고 병들거나 고생살이로 쭈그러진 여자 / 3) 여자가 흐느끼며 음탕하게 놀리는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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