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인물 碧笑(벽소) 李榮珉(이영민)

碧笑(벽소) 李榮珉(이영민) (1881~1962)
순천가(順天歌)는 순천이라는 지역을 대상으로 여러 지명에 얽힌 고사나 역사적 인물을 거론하면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순천에서 활동했던 벽소 이영민 선생(1881-1962)이 1930년경에 창작한 것으로, 순천의 산천과 명승을 비롯하여 여러 유적지가 소개한 내용이 담긴 가사조(歌詞調)로 엮은 노래이다. 그가 순천가를 창작한 동기는 판소리 창자들이 허두가 형식의 노래로 불리도록 함으로써, 순천의 산천과 유적을 소개하여 유서가 깊은 고장임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파악된다. 순천가의 작자인 이영민은 교육자이자 서예가이면서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벽소 이영민 선생은 순천 상사면에서 출생하여 매곡동에 거주하였다. 한성사범학교(漢城師範學校)를 졸업하고 순천남초등학교 등지에서 10여 년 동안의 교편생활을 하였으며 1920년 동아일보 순천주재기자를 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을 계기로 중국에 건너가 오세창, 송진우, 여운형, 안재홍, 김귀식 등과 독립운동을 논의하고 돌아와 진도의 3·1운동을 주도했다.
1923년 6월 순천 서면의 박병두 선생(2005년 독립운동유공자로 서훈)과 함께 전라남도 최초의 사상단체인 순천연학회(順天硏學會)를 창립하였다. 1924년 1월 강태윤(姜泰允)·박병두(朴炳斗)·이창수(李昌洙)·박정래(朴正來) 등과 함께 순천무산자동맹회(順天無産者同盟會)를 창립하였다. 같은 해 서울에서 개최된 조선노동연맹회와 조선노동대회 등 노동단체의 통합체인 조선노농총동맹 결성에 참여하여 중앙집행위원에 선임되었으며, 화요회(火曜會)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준비위원이 되었다. 1925년 3월 박병두 선생과 함께 경성에서 비밀리에 개최된 조선공산당 조직발기회에 참석하였으며 4월에 창당된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순천 야체이카(공산당 조직의 기본 단위인 세포의 러시아어) 책임자가 되었고, 같은 해 7월 을축년 대홍수의 이재민을 구제하기 위해 순천지역의 사회단체와 함께 을축수재구제회를 창립하였다. 1926년 박병두 선생 등과 함께 한말 최초로 순천 광양지역 일본인 지주에 대항하여 소작쟁의 투쟁을 이끌었는데, 이는 전국적 항일소작쟁의투쟁의 물꼬를 튼 것이었다. 농민운동의 선봉장으로 기개 높은 실천적 항일투사였던 벽소 선생은 1928년 조선공산당 활동으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29년 4월 순천농민연합회가 순천농민조합으로 조직을 변경할 때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46년에는 순천시 민주주의 민족전선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순천 연향3지구에 조성된 순천가마당 전경
벽소 선생은 서예가로서도 명성을 날렸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조선후기 3대 명필 가운데 한 사람인 창암 이삼만의 수제자인 김광일에게 글씨를 배워 이삼만의 서풍을 익힌 뒤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형성하여 벽소체를 완성했다. 시인이기도 한 벽소 선생은 글씨를 쓰면서도 한민족의 슬픔을 시로써 표현하여 중국인들까지 감동시켰으며, 벽소체는 일본과 중국까지 널리 알려져 중국 장개석도 벽소 선생과 편지로 교류를 자주 했다. 문하생들도 많아 순천지역 서파를 형성하였고, 동양화의 대가 청당 김명제를 길러내기도 했다.
한편 일제가 문화말살정책을 펴자 벽소 선생은 1920년부터 조선판소리가 민족정신을 담고 있다고 판단하여 28년간 조선팔도의 명창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소리를 한시로 평하고 명창들의 사진을 찍어두는 등 구전의 국악을 학문화하여 2003년 판소리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는데 기여함으로써 판소리계의 선각자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유네스코 순천협회 이태호 회장은 “보훈처에서 벽소 선생의 항일운동을 인정하고 있다”면서도 “해방 후 ‘행적불분명’을 이유로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저서로는 <벽소시고>, <조선판소리명창 55인의 사진첩 및 그들의 소리를 한시로 평한 시> <순천가> 가 있다.
순천가마당에 있는 순천가 비
順天歌(순천가)
竹杖芒鞋(죽장망혜) 單瓢子(단표자)로 湖南順天(호남순천)을 求景(구경)가자
대지팡이에 짚신 신고 표주박 지고 호남 순천을 구경 가자
長臺(장대)에 봄이 오니 楊柳千萬絲(양유천만사)요
장대에 봄이 오니 버들가지는 천만가지 휘늘어지고
竹島峯(죽도봉)에 구름이 일어 滿城明月(만성명월)이 三五夜(삼오야)라
죽도봉에 구름지어 성에 가득한 밝은 달은 보름밤이라
東川(동천)을 건너 喚仙亭(환선정)을 當到(당도)하니
동천을 건너 환선정에 이르니
池塘(지당)에 白蓮花(백련화)는 맑은 향기 넘쳐있고
연못에 백련화는 맑은 향기 넘쳐있고
柳枝(유지)에 鶯鶯(앵앵)한 꾀꼬리는 벗 부르는 소리로다
버들가지에 꾀꼬리 울음소리는 벗 부르는 소리로다.
重重(중중)한 綠陰中(녹음중)에 활을 쏘는 多數(다수)의 武士(무사)들은
겹겹의 녹음 속에 활을 쏘는 여러 무사들은
藹藹童妓(애애동기) 더불고 百步穿楊(백보천양)을 다투더라
많은 동기(童妓)와 더불어 백보의 활 솜씨를 다투더라
二水(이수)를 건너 三山(삼산)을 당도하니
이수를 건너 삼산에 이르니
靑天削出(청천삭출) 三角峰(삼각봉)은 半空(반공)에 솟아있고
푸른 하늘을 찌르는 삼각봉은 하늘에 솟아 있고
九萬里(구만리) 맑은 물은 龍堂(용당)으로 돌아든다
구만리 맑은 물은 용당으로 돌아든다.
香林寺(향림사)를 當到(당도)하니 城市咫尺(성시지척)에 仙境(선경)이 完然(완연)하구나
향림사에 이르니 시내에 가까워도 선경이 완연하구나
此山勝地(차산승지) 碧溪城(벽계성)은 果然(과연) 헛말이 아니로구나.
이 산이 승지라 푸른 개울 소리는 헛말이 아니로구나
飛鳳山(비봉산) 저문 날에 法堂(법당)의 鐘(종)소리는 洞口寂寞(동구적막)을 깨뜨린다
비봉산 저문 날에 법당의 종소리는 동구의 적막을 깨트린다.
鸞鳳山(난봉산)에 올라 高麗將軍(고려장군) 朴蘭鳳(박난봉) 墳墓(분묘) 古蹟(고적)을 찾아보고
난봉산에 올라 고려 장군 박난봉 분묘 고적을 찾아보고
臨淸臺(임청대)에 올라 退溪先生(퇴계선생)의 筆跡(필적)과
임청대에 올라 퇴계 선생의 글씨와
寒暄堂 先生(한훤당 선생)의 玉川書院(옥천서원)을 찾아본 후
환훤당 선생의 옥천서원을 찾아 본 뒤
燕子樓(연자루)에 올라 四面風景(사면풍경)을 바라보니
연자루에 올라 사방 풍경을 바라보니
伴鷗亭畔(반구정반) 桃花發(도화발)이요 八馬碑前(팔마비전) 碧玉流(벽옥류)라
반구정 언덕에 복숭아 꽃 피어 있고 팔마비 앞엔 맑은 물 흘러라
孫郞(손랑)은 어디가고 好好佳人(호호가인)은 제비가 되어
손랑은 어디 가고 호호 고운님은 제비가 되어
軟娟(연연)한 봄바람에 樓上(누상)에서 춤을 춘다.
부드러운 봄바람에 연자루에서 춤을 춘다.
龍頭浦(용두포)로 내려가니 龍布漁船(용포어선)들은
용도포로 내려가니 용두포 어선들은
落照(낙조)를 가득 싣고 欸乃聲(애내성)을 부르더라
노을을 가득 싣고 노 저으며 노래를 부르더라
新城浦(신성포)로 돌아드니 忠武公祠(충무공사)에 이르러
신성포로 돌아드니 충무공사에 이르러
李舜臣將軍(이순신장군)과 鄭運(정운) 宋希立將軍(송희립장군)의 影幀(영정)에 參拜(참배)하고
이순신 장군과 정운, 송희립 장군 영정에 참배하고
別良(별량) 尖山(첨산)을 向(향)하여 宋川祠(송천사)에 이르러
별량 첨산을 향하여 송천사에 이르러
壬辰忠義(임진충의) 靑年將軍(청년장군) 金大仁(김대인) 史蹟(사적)을 찾아본 後(후)
임충년의 청년장군 김대인 사적을 찾아 본 뒤
道詵菴(도선암)을 지나 鴈洞(안동)을 돌아드니
도선암을 지나 안동을 돌아드니
東天微雨(동천미우) 杏花飛(행화비)는 鄭處士(정처사)의 놀던 데요
경치 좋은 곳 이슬비에 살구꽃 나는 데가 정처사가 놀던데요
五峰山下(오봉상하) 推此中(추차중)에 불재를 넘어 樂安(낙안)을 당도하니
오봉산 아래에 불재를 넘어 낙안에 이르니
嗚(오) 林慶業將軍(임경업장군) 祠堂(사당)도 雄壯(웅장)쿠나
아~ 임경업 장군 사당도 장하구나!
淸風(청풍)은 伯夷山(백이산)이요 白雲(백운)은 金剛庵(금강암)이라.
청풍은 백이산이요 백운은 금강암이라
萬古忠義(만고충의) 關聖大帝(관성대제)의 影幀(영정)에 參拜(참배)하고,
만고의 충의 관성대제의 영정에 참배하고
曹溪山上(조계산상)에 올라서서 仙岩寺(선암사) 風景(풍경)을 바라보니
조계산 위에 올라서서 선암사 풍경을 바라보니
滿山九秋(만산구추) 고운 丹楓(단풍)은 黃金世界(황금세계)를 이루었고
산에 가득한 구월 가을 단풍은 황금세계를 이루었고
法堂(법당)에 念佛(염불)소리 一身淸淨欲高飛(일신청정욕고비)라
법당의 염불 소리에 한 몸이 청정해 높이 날고 싶어라
昇仙橋下(승선교하) 맑은 물은 俗世(속세)를 따라 塵世間(진세간)으로 흘러간다.
승선교 아래 맑은 물은 속세를 따라 속세로 흘러간다.
굴기미를 넘어 松廣寺(송광사)에 當到(당도)하니 果然(과연) 東邦勝地(동방승지)의 祖宗(조종)이요
굴목재를 넘어 송광사에 이르니 과연 동방의 승지 중 으뜸이요
千古有名(천고유명)한 大寺刹(대사찰)이 分明(분명)하다 國師殿(국사전)에 十六國師(십육국사)의
천고에 유명한 대사찰이 분명하다. 국사전에 십육국사의
影幀(영정)과 佛龕(불감)이며 能見難思(능견난사) 等(등) 古蹟藝品(고적예품)을 求景(구경)하고
영정과 불감이며 능견난사 등 고적 예술품을 구경하고
六觀亭(육관정) 놀던 水石(수석) 四時遊覽客(사시유람객)이 끊일 새 바이없다.
육관정 놀던 수석에 사찰 유람객이 끊길 새가 없어라
俗世(속세)에 묵은 마음 간데없고 一身淸淨(일신청정) 새로워라.
세속에 묵은 마음 간데 없고 한 몸 청정해 새로워라
天子庵(천자암)에 當到(당도)하여 一枝搖(일지요) 雙香樹(쌍향수)도 흔들어보고,
천자암에 이르러 한 손가락으로 쌍향수를 흔들어 보고
寺中國寶(사중국보) 諸書(제서)를 一一(일일)이 觀覽(관람)하니
절 안에 국보와 여러 책을 하나하나 관람하니
果然(과연) 順天(순천)은 東邦一大名勝地(동방일대명승지)됨을 알겠더라.
과연 순천은 동방의 일대 명승지임을 알겠더라.
단표자 : 도시락과 표주박 / 장대 : 현재의 순천교. 裝臺의 오기. / 삼경야 : 보름밤 / 환선정 : 환선정은 현재 죽도봉에 있었음. 1543년 승평태수 심통원(沈通源)이 창건 / 앵앵 : 새가 서로 답하여 우는 소리. / 애애 : 왕성하고 맑음 / 천양 : 활솜씨 / 삼산 : 용당동 원산을 말함 / 향림사 : 석현동 비봉산 아래 위치. 1246년 신라 경덕왕 때 도선국사가 창건. / 난봉산 : 매곡동 뒷산. 삼국시대 쌓은 것으로 추정. / 박난봉 : 고려의 대장군. 벼슬이 정승(政丞) 대광보국 숭록대부에 이르고, 평양(平陽=順天)부원군에 봉해졌다. 인제산에 성을 쌓고 웅거하면서 왜구의 침입을 막았다. 죽은 후에 인제 산신이 되었다는 신화적인 인물이다. 난봉산에 묘가 있다. / 임청대 : 지방 유형문화재 77호. 옥천동사무소 앞쪽에 위치함. 임청대는 “항상 마음을 깨끗이 가져라”란 뜻으로 1563년(명종 18년) 8월 당시 승평부사 이정(李禎)이 김굉필과 조위를 추모하기 위하여 세웠다고 함. 비문은 퇴계 이황의 글씨로 전함. / 환훤당 : 김굉필(金宏弼)의 호. 김종직 선생의 문하생으로 1480년(성종11년) 사미시에 합격. 1498년(연산군4년) 무오사화 때 순천으로 유배당했다가 1504년(연산군10년) 갑자 사화 때 이곳에서 사약을 받고 죽음. / 연자루 : 당시에는 남문다리 앞에 있었음. 1974년 죽도봉 공원에 복원. / 팔마비 : 현재는 행동에 있으나 당시에는 남문다리 옆에 있었음. 고려 충렬왕 때 최석이 승평부사로 있다가 임기가 차서 고을을 떠날 때 그 당시의 고을 풍속에 따라 백성들이 부사에게 말 여덟 필을 선물로 주었다. 최 부사는 서울까지 갈 수 있는 말이면 족한것이지 구태여 말을 여덟 필씩이나 받을 필요가 없다고 이를 사양했다. 그러나 향리들이 간청하므로 받아가지고 서울에 돌아와 내직인 비서랑이 되었다. 최 부사는 서울에 도착하자 말 여덟 필과 도중에서 태어난 망아지까지 모두 순천으로 보내면서 이 망아지는 내가 순천에서 받아가지고 온 여덟 마리의 말 중에서 오는 동안에 낳았으므로 어미를 따라 돌려보내노라하고 적어 보냈다. 말을 받은 고을 사람들은 그의 고결한 인품에 감동하여 성 밖 연자교 남쪽에 비석을 세우고 ‘팔마비’라고 불렀다. 이 비석은 고을 백성이 스스로 세워 준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관 선정비로 전해진다.
손랑 : 고려 때 승평 부사 손억(孫億)을 가리킴 / 호호 : 고려 때 승평 부사 손억이 무척 사랑했던 기생
애내성 : 노 젖는 소리. / 충무공사 : 해룡 신성리 충무사. / 정운 : 임진왜란 때 녹도만호로 좌수영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의 선봉이 되어 활약하다 부산 몰운대에서 전사함. 호조참판에 추증. / 송희립 :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적을 무찌른 장군.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를 지냄. / 송천사 : 별량면 송천리 송천서원. 주암면 백록리에 있었으나 1954년 이설. / 김대인 :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큰 공을 세운 장군. / 도선암 : 상사면 비촌리 운동산 중턱에 있음. 도선국사가 도를 깨친 곳이라고 전함. / 안동 : 마을 이름. / 동천 : 경치 좋은 곳 / 정처사 : 정시관 / 오봉산 : 별량면과 낙안면 경계에 있는 산(591m) / 백이산 : 별량면, 낙안면, 벌교읍의 경계에 있는 산(584m) / 금강암 : 낙안 금전산(668m) 정상 부근에 있는 암자. 낙안 읍성을 기준으로 진산인 금전산을 두고 좌청룡 격인 오봉산과(591m) 우백호 격인 백이산이 감싸고 있는 미녀 산발형 명당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 관성대제 : 관우(關雨)를 말함. / 승선교 : 보물 제400호. 선암사 입구에 있는 무지개형 다리. 1713년(숙종39) 호암대사가 만듦. / 굴미기 : 굴목재. 선암사와 송광사 사이 고개. / 국사전 : 송광사 경내에 있는 국보 제56호. 1359년(공민왕18)창건. 보조국사를 비롯해 16국사의 영정을 모시는 곳 / 불감 : 목조 삼존불감. 송광사에 있는 목조 조각품으로 국보 제42호. 보조국사가 당나라에서 가져 온 것으로 전함. / 능견난사 : 지방 유형문화재 제19호. 불가의 밥그릇. 위로 맞춰도 맞고 아래로 맞춰도 맞다. 조선 숙종이 신기하게 여겨 “보고도 못 만든다.”하여 능견난사라 이름을 지음. 현재 29개가 송광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음 / 천자암 : 송광사 말사 암자. 조계산에 있음. / 쌍향수 : 천연기념물 제88호. 송광사 천자암 경내에 있음 .보조국사(지눌)와 당나라 왕자 출신으로 보조스님의 제자인 담당스님이 짚었던 지팡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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