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약사의 노인예찬 세워주기는 저도 힘들어요
추운 겨울이 지나고 개나리, 목련, 벚꽃이 만발하고 파란 새싹이 돋는 춘삼월이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왔다. 모든 계절은 매년 잠시만이라도 그 계절에 맞는 최고 순간의 아름다움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기쁨과 즐거움, 희망을 안겨주지만 우리 인간은 왜 나이가 들수록 시들시들해지고 한 해, 한 계절만이라도 고목처럼 꽃피는 춘삼월은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나무는 잠시내리는 봄비만 맞아도 생기가 돋 것만 우리인간은 회춘을 위하여 영양제도 먹어보고 남들이 좋다는 보양식도 다 먹어보지만 도무지 생기를 찾을 수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빠른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나이 들어가는 우리 몸과 말은 반대로 느리게 움직이니 모든 게 힘들고 고달프다.

군내버스 정류소에 위치한 우리약국은 할머니들이 차 시간도 많이 물어보지만 차 좀 잡아(세워)놓으라는 나의 능력 밖인 청도 자주 듣게 된다.
“어이! 약사 양반, 나 탈 차가 얼마나 남았소?” “한 10분 정도 남았는데요.” “그래, 나 그럼 요 위에 가서 얼른 시계약 하나 사갔고 올란디 괜찮것어?” “늦으면 차 놓칠 건데요?” “그래도 얼능 갔다올께 그 안에 차오면 차 좀 꽉 잡아나 잉~.”
우스갯소리로 “할매! 내가 뭔 힘이 있다고 가는 차를 잡아논다요.”하면 그래도 막무가내로 “꽉 잡아나”하고 종종걸음으로 당신 일만 보러 가신다. 때로는 기사님들이 기다려주지만 어떤 기사님들은 바쁘신지 달려오면서 손짓을 해도 그냥 가버린 분도 계신다. 그런 장면들을 볼 때는 마음이 안 좋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떠나버린 버스를 뒤로하고 하시는 말 “즈그들은 나이 안 먹은다냐. 담박질을 했드마 다리가 아프네. 아이고...” 그런데 통쾌한 일도 종종 보게 된다. 한 할머니가 버스 옆에서 달려가며 손짓을 해도 서지 않던 버스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것은 할머니의 세월의 무게를 지탱해준 꼬불꼬불 쭈글쭈글해진 나무지팡이였다. 그 요술지팡이에 옆구리를 사정없이 얻어맞은 버스는 서서히 멈춰서며 할머니를 태웠지만 할머니는 기사한테 뒈지게 소리를 듣고 난 후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잔소리가 중요치 않았다. 일단 집에 가는 버스에 당신의 몸을 실었으니.
이제는 연세 드신 할아버지들 이야기다.
얼마 전 자주 오시는 영감님께서 “어이! 쪼깐 거시기 하지만 여기 다행히 아무도 없고 자네도 남자고 이무로운께 그냥 이야기할께.” “근디. 남자들 거시기에 좋은 약 있는가? 노인정에서 들어본께 뭐 좋은 것이 있다글드마. 하나 줘봐.”
“예, 있기는 있는데 처방을 받아야 되는데요.” “아이고. 이 나이에 어찌가서 그것을 말한단가. 그냥 어찌하나 줘보소.”
설득하고 설득한 끝에 처방을 받아왔다. 하지만 조제해 드리면서도 반신반의, 나에게 무슨 후환은 없을까 두려움뿐이었다.
어떤 분들은 효과가 좋았다고 다음날 화색이 좋게 돌아와 들어오시면서 “그 약 참 좋데. 고맙네.” 하신 분들도 계시지만 어떤 분들은 “뭔 약이 하나도 안 들어. 왜 그래?” 심지어 “그거 가짜 아니여? 하나가 안 되서 두개를 먹었는데도 안 돼.”하면서 역정을 내시는 분들을 보면 이분들에게 어떻게 해드려야 도움이 될지 고민될 때가 많다.
우스개 이야기이지만 이런 걸 보면 여자는 남자보다 강하고 요령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할머니는 막대기든 지팡이든 어떻게든지 약사인 나도 힘든 움직이는 버스를 세워 탔지만 할아버지는 어떤 약발로도 거시기를 세우지 못했으니.
인간보다 훨씬 수명을 더한 고목도 한 계절엔 잠시만이라도 꽃이 피거늘 사람은 왜 재생이 안 되는지. 나약할 뿐이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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