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약사의 노인예찬 손주사랑
젊은이는 거의 없고 노인들이 90% 이상인 시골동네에서는 어린아이들을 구경하기란 가뭄에 콩 나듯 귀할 수밖에 없다. 그마나 다문화 가정이라도 있기에 어린애들 구경이나 하고 있다.
요즘 농촌 총각들은 우리나라 여성과의 결혼은 꿈도 못 꾸고 있는 것 같다. 다행히도 베트남, 필리핀, 중국, 몽골 등 20대 외국인 여성들과 결혼한 농촌 총각(총각이라 해도 30~40대)들이 가정을 꾸리고 있어 아이들 웃음소리라도 듣고 있다.
햇볕 좋을 때 유치원 선생님이 원아들을 데리고 동네 한 바퀴 돌아보는 교육과정을 보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아이들이 더 예쁘게 보이고 귀여워 보인다.
우리나라 말도 서툰 외국인(다문화가정)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약국에 와서 군내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재미있는 상황을 많이 보게 된다. 어쩌면 예전에 우리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키우는 모습과 그렇게 닮았을까 하는 생각에 어쩔 때는 소름끼칠 정도로 놀라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서툰 우리말로 “아가! 아가! 가만있어. 여기 앉아. 혼난다.” 한다.
아이가 바닥에 떨어진 것을 주어먹으려 할 때면, 아이 손을 때리며 “떽떽” 소리를 지르며 혼을 내고, 약국 밖으로 아이가 뛰어나가려면 “안 돼! 빨리 이리 안 와, 혼난다. 요놈~” 하고 아이를 끌어안는 모습을 보면 어느 나라 엄마나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걱정은 똑같은가 보구나 생각이 든다.
또한 약국에 온 할매들은 오랜만에 어린애 구경에 “요놈 야무지게 생겼네.” 하신다. 아이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약국 물건들을 이것저것 만지고 다니는 것을 보고, “어지간히 니도 감푸다. 한시도 가만히 안 있네. 니 엄마도 어지간히 성가시것다.” 그러신다.
그러다 “그래도 니만할 때가 제일 이쁠 때다.” 하시면서 “자, 요것 받아라. 과자라도 사먹어라.” 하며 천 원 짜리를 내미는 할머니들의 순박한 손은 우리의 따뜻한 고향 인심을 그대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식 키울 때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애정을 오래도록 간직하면서 손주 같은 이 아이들에게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되곤 한다.
손주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요즘은 아들집에 손주 봐주러 가는 할머니들로 종종 있다.
“어머님! 이번에는 혈압약을 3개월분이나 처방받으셨네요. 어디 가세요?”
“잉, 몇 년 전에 우리 막내아들이 결혼을 했잖아. 근디 이번에 둘째 애기를 낼 모래 낳는 디. 몇 개월만 큰애를 봐 주라 해서 수원 아들집에 갈려구. 어쩔 것이여, 힘들단디. 봐주고 와야지. 그래서 몇 달 못 올 것 같아서 약을 많이 해주라 그랬어.”
그러자, 그 옆에 있던 할머니는 “나는 몇 년 전에 미국 가서 3년이나 봐주고 왔소. 아들 내외가 일 때문에 힘들다 해서 갔는디, 그놈의 나라는 유치원에 가고 올 때 부모나 다른 보호자가 없으면 벌금인가 벌을 준다고 해서 늙은 우리 영감하고 둘이 갔다 왔소. 참 별난 나랍디다. 그래도 그런 것은 참 좋은 것 같습디다.”
오늘도 3개월분 약을 타러 오신 분이 아들 며느리가 일을 하고 있어서 몽골에 손주 봐 주러 가야한다고 하신다. 다문화가정은 다문화가정대로 서로 사돈 나라를 왕래하며 손주들을 돌봐주는 요즘 세상을 보면 손주 돌보미 만큼은 뉴스에서 본 서울 강남 할매들의 손주 돌보미 보다 여기 시골 할머니 손주 돌보미들이 훨씬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

손주 돌보미로 수원으로 몽골로 미국으로, 다문화가정에서는 베트남, 필리핀, 중국으로 오고 가는 시골 할머니들을 보면서 자식들과 손주들을 위해서라면 천리만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리고 날아가는 우리 시골할머니들이야말로 진정한 슈퍼우먼이다. 이렇듯 우리 부모님들의 손주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영원히 변치 않은 따뜻하고 좋은 기억으로 오래도록 시골 장독대 된장처럼 간직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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