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덕진다리 전설
고려 어느 때, 영암 고을.
새로 부임한 원님이 관아 안팎을 둘러보고 피곤하였는지 잠자리에 들었다. 비몽사몽간에 갑자기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또! 부디 제 이야기 좀 들어주십시오.”
깜짝 놀란 원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살펴보니 웬 여인이 소복을 입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넌 누구냐?”
원님이 소리치자 그 여인이 나지막한 소리로 대답하였다.
“사또, 놀라지 마십시오. 저는 여기서 십리 쯤 떨어진 곳에 살았던 덕진이라는 여인이옵니다.”
사또가 조금은 진정한 기색을 보이자 여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암 관아에서 십리 쯤 떨어진 강변에 객주집이 하나 있었다. 객주집 주인은 덕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녀는 청상과부였는데, 친절하기로 소문이 나서 이곳을 지나는 나그네들은 대부분 덕진 네 객주에 머물다 가곤 하였다.
객주가 있는 곳과 영암 관아 사이에 영암천이 가로 놓여 있었다. 물이 아주 적을 때에는 징검다리로 건널 수 있었다. 물이 조금 차더라도 바지를 걷고 건널 수 있을 정도였다. 물이 제법 찰 경우에는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기도 하였다.
그런데 영암천은 비만 오면 물이 급격하게 불어 나룻배도 함부로 강을 건널 수 없었다.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영암을 감싸고 흐르기 때문에 달리 돌아가기도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관아에 일을 보러 가야 하는데 며칠씩 기다리기도 하였다.
물이 깊은데도 가끔씩 고집을 부리고 건너다가 변을 당하는 사람도 있었고, 사공을 윽박질러 강을 건너다 배가 뒤집힌 일도 있었다. 그러니 비만 오면 발을 동동 굴리며 관아에 갈 일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덕진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함께 걱정해주었다.
어느 날, 그날 역시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더니 강물이 급격하게 불어났다. 객주에서 국밥을 먹고 길을 나서려던 손님 한 명이 비에 흠뻑 젖어 돌아왔다.
“주모, 술이나 한 잔 주소.”
“아니, 영암 간다더니 왜 돌아오신 게요?”
“순식간에 물이 불어 나룻배 사공도 배를 묶어놓고 안 보이니 어찌 하겠소.”
덕진이 딱하다는 표정으로 그 손님을 바라보더니 잠시 후 술상을 봐서 내왔다.
“옷이 다 젖었는데, 옷부터 갈아입어야 하지 않겠소?”
그러자 그 손님이 술을 따라 마시며 말하였다.
“조금 있다 다시 나가 보아야 하니 이대로가 좋소.”
그리고는 다시 술을 한 잔 따라 들이키더니 비를 맞으며 밖으로 나갔다. 빗발이 조금은 약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잠시 후 돌아온 손님이 자포자기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제길헐! 빗발이 약해져서 건널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찌 된 게 물이 더 불어나 있지 뭐유?”
그러더니 덕진에게 다시 술을 달라 하고는 밤새 술을 마셨다.
“그나저나 큰일이에요. 비만 오면 꼼짝을 못하니 말입니다.”
덕진이 거들자 손님이 푸념조로 말하였다.
“나라에서 이곳에 다리라도 놓아주면 좋겠는데...”
다리 이야기를 하자 덕진의 귀가 쫑긋해졌다.
“다리요? 어찌 하면 다리를 놔 줄까요?”
주모가 관심을 보이자 손님이 덕진을 잠시 바라보더니 말하였다.
“놔준다면야 얼마나 좋겠소? 하지만 나라에 돈이 없다는 핑계로 우리 같이 힘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10년 가도 다리를 놔주지 않을 것이오.”
손님의 이야기를 듣던 덕진이 손님에게 물었다.
“이곳에 다리를 놓는데 얼마나 들까요?”
갑자기 다리 놓는 비용을 묻자 손님이 피식 웃더니 물었다.
“왜? 나라에서 안 놔주면 주모가 다리를 놔줄려고?”
덕진이 아무 말이 없자 손님이 미안했는지 머쓱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모르긴 해도 삼백 냥은 족히 들 거요.”
“삼백 냥, 삼백 냥이라...”
덕진은 삼백 냥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읊조렸다.
덕진은 그날부터 한 푼 두 푼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부엌 근처 한적한 곳에 빈 항아리를 묻어두고, 일이 끝나면 남는 돈을 그 항아리에 담았다. 객주 일을 하면서 삼백 냥이라는 돈을 모으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까마득하게 여겨졌던 일이 항아리가 차기 시작하면서 점차 가능한 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돈으로 다리를 놓으면 비가 오더라도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불편을 겪지 않을 것이고, 무리하게 강을 건너려다 변을 당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흐뭇하였다.
그녀의 손이 거칠어질수록 항아리는 엽전으로 채워졌다. 덕진은 자신이 만든 다리에 사람들이 오고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조만간 다리가 놓일 것을 생각하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이제 항아리 속 돈은 어림짐작으로도 삼백 냥은 충분히 되어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상주도 없는 초라한 상여 하나가 동구 밖으로 나갔다. 놀랍게도 덕진의 상여였다. 착하기로 소문 난 덕진의 갑작스런 죽음에 동네 사람들은 모두 슬퍼하였다.
이야기를 마친 덕진이 원님에게 부탁을 하였다.
“사또, 제 소원은 영암천에 다리를 놓는 것입니다. 다리를 놓기 위해 평생 돈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필요한 돈을 거의 모았는데 그만 염라대왕의 부르심을 받고 말았습니다.”
덕진의 이야기를 들은 원님이 물었다.
“그래, 어찌 하면 되겠느냐?”
“제가 살던 집 부엌에서 서쪽으로 다섯 걸음만 가서 땅을 파 보십시오. 그러면 항아리 하나가 있을 것입니다. 원님, 부디 그 돈으로 다리를 놓아 제 한을 풀어주십시오.”
꿈에서 깬 원님은 꿈이라기에는 너무도 생생하여 괴이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관졸들을 이끌고 그곳으로 가서 덕진 여인의 말대로 다섯 걸음을 가서 땅을 파도록 지시하였다. 그러자 놀랍게도 항아리가 나왔고, 항아리 속에는 엽전이 가득하였다. 세어보니 300냥이 넘었다.
그리하여 그곳에는 다리가 놓이게 되었으며, 덕진 여인의 갸륵한 뜻을 살려 다리 이름을 덕진교라 부르게 되었다. 또한 마을 이름 역시 덕진이라 부르게 되었다.
또 마을에서는 그 여인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비를 세우고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현재의 덕진다리는 그후 새로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옛날 덕진다리는 그때의 석물만이 남아 덕진 여인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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