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보림사 용소 전설

한국설화연구소
2024-12-23 15:56
장흥설화

장흥 유치면에 있는 보림사 터는 원래 못이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고려시대 때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스님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눌스님은 탄생설화가 있다. 무신정권 시절인 고려 의종 12년, 화순에 있는 자치샘이라는 우물에 조씨 처녀가 물을 길러갔다. 그런데 샘물에 복숭아가 떠 있는 것이 아닌가. 탐스럽고 먹음직스럽게 생겨 처녀가 복숭아를 먹었다. 처녀는 정광우(鄭光遇)라는 총각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 직후 잉태를 하게 되었고, 그 아들이 바로 보조국사 지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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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눌이 수행을 하던 중 화순 모후산에서 나무로 세 마리의 새를 만들어 날려보낸다. 그런데 한 마리는 송광사로, 다른 한 마리는 해남 대흥사 터로, 나머지 한 마리는 선암사로 날아갔다. 나중에 지눌이 각각 그곳에 현재의 사찰을 건립하였다.

지눌스님이 계속해서 절을 짓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던 중 장흥 가지산에 도달해 보니 풍수적으로 좋은 터였으나 불행히도 연못이었다. 정말 좋은 터였지만 어찌 해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눌스님이 궁리를 해냈다. 인근에 있는 사람들에게 눈병을 퍼트린 것이다. 사람들이 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데, 지눌스님이 지나가다가 아는 체를 하였다.

“어찌 눈병으로 고생하고 계십니까?”

그러자 마을사람이 연신 토끼눈을 찡그리며 말하였다.

“난데없이 눈병이 돌아 다들 밤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혹 방법이 있으신가요?”

지눌스님이 한참을 주변을 둘러보는 듯하더니 이윽고 마을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이곳에 눈병이 도지게 된 데는 저 산자락에 있는 연못 때문입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이무기들이 조화를 부린 탓입니다.”

“스님, 그러면 어찌해야 좋을까요?”

“무릇 이무기는 물이 있어야 사는 법, 연못을 메우면 이무기가 살 수 없을 테지요. 누구든 돌 한 덩이와 숯 한 덩이를 연못에 던지면 눈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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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사람들이 스님의 말대로 연못에 돌과 숯을 던지자 신기하게도 눈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그 소문이 퍼지자 인근에서 눈병에 걸린 사람들이 줄지어 찾아와 돌과 숯을 던지는 바람에 연못을 단숨에 메워지고 말았다.

연못이 메워지자 연못에 살고 있던 이무기들이 모두 도망을 쳤다. 하지만 막 승천을 앞두고 있던 청룡과 백룡만은 버티고 나가지 않았다. 그러자 지눌스님이 가지고 있던 지팡이로 연못가를 꽝 하고 치자 청룡과 백룡 두 마리가 날아올랐다. 하지만 아직 승천 준비가 안 되었기에 멀리 날지 못하고 근처에 떨어졌다.

지눌스님 때문에 가지산 연못에서 쫓겨난 두 마리 용은 서로 승천을 하려고 싸웠다. 그러다가 백룡이 꼬리를 치는 바람에 산기슭이 도막나면서 패어 용소가 생겨났다.

결국 싸움에서 이긴 백룡은 승천했지만 싸움에서 패한 청룡은 피를 흘리며 돌아다니다가 죽고 말았다. 이때 넘은 고개가 현재의 피재이고, 청룡이 죽은 자리가 장평면 청룡리라 한다. 그리고 용소가 있는 마을 이름도 용문동(龍門洞)이라 하며, 늑룡(勒龍)이라는 마을이 그 이웃에 있고, 부산면과 장평면 경계에는 용두봉(龍頭峰)이 있다.

백룡과 청룡마저 연못을 떠나자 지눌스님은 그 터 위에 보림사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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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설화는 광양 옥룡사에 전해지는 도선국사 설화와 유사하다.

희양현(광양)에 흉측한 일들이 자주 발생하자 현감이 도선국사를 초청하였다. 도선국사는 희양현이 용의 기운이 강하여 백호의 좋은 기운을 누르는 형국이라며, 그래서 누군가가 용의 혈을 지닌 옥룡사지에 사찰을 세워 그 기운을 눌렀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어찌 이리 흉한 일들이 연거푸 일어나는 것일까요?”

현감이 묻자 도선국사가 대답하였다.

“옥룡사에 커다란 연못을 만드는 바람에 용의 기운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그랬다. 생각해 보니 전임 현감이 막대한 예산을 지원하여 옥룡사에 아름다운 연못을 만들어준 뒤로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다음날부터 희양현감은 인부들을 동원하여 옥룡사 연못을 흙으로 메우는 일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연못이 거의 메워질 때마다 번번이 불의의 사고가 나 인부 가운데 몇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발생하였다.

현감의 부탁을 받고 연못 앞에서 불공을 드리던 도선국사가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벌떡 일어섰다. 그러더니 지팡이로 연못가를 사정없이 내려치며 일갈하였다.

“떠나랏!”

그러자 연못물이 마치 끓는 것처럼 부글부글 대더니 놀랍게도 아홉 마리의 용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더니 차례로 하늘로 올라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하얀 용 한 마리만 끝까지 굉음을 내며 연못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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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도선국사가 다시 한 번 지팡이를 휘두르자 그 기운으로 백룡의 왼쪽 눈이 멀게 되었다. 한쪽 눈을 다친 백룡이 멈칫 하는 사이 도선국사가 다시 지팡이로 연못물을 치자 이번에는 정말로 연못물이 펄펄 끓는 것이 아닌가. 결국 참다못한 백룡이 길게 울음을 토해 내더니 순식간에 하늘로 올라 모습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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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뒤에도 연못을 메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너무나도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마을 사람들이 혹시 모를 백룡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일하기를 꺼려하였기 때문이다.

며칠 뒤 옥룡사 주변 마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안질이 돌아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토끼눈을 하고 다녔다. 사람들은 도선국사가 백룡의 눈을 다치게 하여 그 용의 저주 때문에 안질이 돈다고까지 입방아를 찧었다.

현감이 또 다시 도선국사를 찾았다.

“아니, 대사님. 멀쩡한 용을 건들어서 고을 백성들이 안질 때문에 못살겠다고 아우성인데 이를 어찌한단 말입니까?”

물에서 건져주자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는 말처럼 현감은 막무가내였다. 하지만 평생을 참선으로 수양한 도선국사인지라 이내 마음을 다스리며 현감에게 일렀다.

“연못에 숯을 한 섬씩 가져다 부으면 안질이 낫는다고 소문을 퍼뜨리십시오.”

도선국사가 일러준 대로 현감이 소문을 퍼뜨렸다. 사람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렇게 해보았는데 신기하게도 안질이 감쪽같이 나았다. 그러자 너도 나도 숯을 가져다 연못에 붓는 바람에 순식간에 연못이 메워지고 말았다. 이렇게 연못을 완전히 메운 이후로는 희양현에 더 이상 흉한 일이 생기지 않았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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