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처사샘과 각시샘

한국설화연구소
2024-12-23 15:55
순천설화

일본에서 순천으로 시집온 여인이 낙안읍성에서 관광가이드를 하고 있다. 그녀는 시집온 지 12년이 넘도록 아이가 없었다. 어느 날 주변 사람들로부터 우연히 신통한 샘 이야기를 들었다. 2004년 초가을, 여인이 물어물어 처사굴에 들렀다. 초가을인지라 꽤 쌀쌀했는데도 여인은 종일 기도를 하였다. 기도를 하던 중 갑자기 목이 말랐다. 그래서 그곳에 있는 물을 마셨다.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여인은 태기가 있더니 이듬해 옥동자를 낳았다. 이 이야기는 MBC ‘화제집중’에도 방송되어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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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갖게 하는 효험이 있다고 알려진 처사샘. 불재 정상에서 한 20분쯤 북쪽 산비탈을 오르면 나온다.

불재 정상에서 한 20분쯤 북쪽 산비탈을 오르다보면 석굴이 하나 나온다. 석굴 안쪽으로 들어가면 샘이 있는데, 바로 처사샘이다. 옛날에 이 석굴에서 한 처사가 공부를 하였다 하여 처사굴이라 부르는데, 그 처사가 불체와 관련이 있는 선비다. 석굴에는 샘이 하나 있는데, 처사굴에 있다 하여 처사샘이라 불린다. 이 샘은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고 밑바닥이 막혀 있으면서도 물이 넘치지 않으며 이끼가 끼지 않는다. 아무리 많이 마셔도 배탈나는 일이 없다.

 

‘화제집중’에 방송이 나가자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처사샘을 찾았다. 지도에는 구릉수(九陵水)라 표기되어 있다. 어떤 여인이 역시 아이를 가져볼까 하고 처사샘을 찾아 물을 마시려는데, 물에서 벌레가 나와 마시지 못하고 내려와 버렸다. 깜짝 놀라 산을 내려오던 여인이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마을 사람은 처사샘이 부정한 일을 한 사람이나, 혹은 개고기를 먹거나 피를 보고 가면 조금 전까지 나오던 물이 나오지 않고 심지어 물에서 벌레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처사굴에서 서남쪽으로 200m쯤 내려가면 ‘각시샘’이라 불리는 샘이 있다. 넓은 바위에 한 뼘 정도 되는 구멍이 70cm 가량 파인 곳인데, 안쪽을 보면 두 갈래로 패여 있다.

처사가 처사굴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부인이 매일 같이 삼시 세끼 밥을 해 나르니 그 금슬이 좋기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얼마나 금슬이 좋았으면 낙안 인근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심지어는 시기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어떤 이들은 처사가 아무리 부인을 사랑한다 해도 그래도 사내인지라 미색에는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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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이 예쁜 여인으로 변신하여 살았다는 각시샘. 어린 아이 머리만한 구멍이 나있는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커진다. 깊이는 약 70cm 정도.

이러한 이야기들이 나돌자 어느 날 산신이 처사를 시험하기 위해 예쁜 여인으로 변했다. 그리하여 처사굴 200m쯤 아래에 샘을 파고 그 근처에서 살았다.

샘에서 20m쯤 아래로 내려가면 높이가 4m가량 되는 사랑바위가 있다. 멀리서 보면 선녀처럼 생긴 바위였다. 예쁜 여인으로 변신한 산신은 처사를 바위 근처로 유혹하였다. 그러나 매일처럼 밥을 지어 나르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처사는 산신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집요한 유혹에 목석같던 처사도 마침내 넘어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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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사가 여인과 사랑을 나누었다는 사랑바위. 자세히 보면 바위 속에 선녀의 모습이 보인다.

여인은 임신을 하게 되고 그 사이 처사는 매일 같이 밥을 해오는 부인에 대한 미안함마저도 점차 사라지는 듯하였다. 공부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여인에 푹 빠져 살던 처사는 급기야 부인에게 화를 내기까지 하였다. 전에 없이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는 처사가 야속하였지만 부인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여인이 처사에게 산기가 있음을 알리고, 이윽고 아이를 낳게 되는데 바로 사랑바위 밑에서였다. 산중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안쓰러웠지만 처사는 자신의 아이를 낳는 여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아이를 받아내려 하였다. 그런데 아이를 낳던 여인의 표정이 돌연 싸늘해지더니 처사에게 자신이 흘린 피를 모두 마시라 하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처사는 그때서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되고 이 모든 것이 꿈이기를 바란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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