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죽음으로 마을을 지킨 팽나무

한국설화연구소
2024-12-23 15:48
광양설화

광양 옥곡면 장동리에는 거대한 팽나무가 있다. 수령이 약 500년 가까이 된 노거수인데, 이 팽나무에는 임진왜란 당시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해였다. 마을 사람들이 한밤중에 이상한 울음소리가 나서 잠을 깼다. 너무도 기이한 울음소리라 마을 사람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였던 것이다. 바람결에 들리는 이상한 울음소리를 따라 마을 사람들이 가보니 팽나무가 우는 소리가 틀림없었다.

울음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는지 마을 어귀에 사는 사람들까지 죄다 모였다. 장정들 수십 명이 나무 밑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나무에서 바람이 일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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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틀림없이 마을에 재앙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나무가 예고해 주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누군가가 큰 소리로 말하였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뭔가 불길한 조짐이 보입니다.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다른 사람이 반문하였다.

“대책이라니? 아니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마당에 도대체 무슨 대책이란 말인가?”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때였다. 마을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불길한 마음에 걱정을 하고 있을 무렵, 갑자기 멀리서 왜군들이 마을을 향하여 쳐들어오고 있었다. 맨 먼저 왜병을 발견한 마을 사람 한 명이 크게 놀라 소리를 쳤다.

“왜군이다!”

그러자 누군가가 화들짝 놀라 그의 입을 막으며 조용히 하라 일렀다.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긴장을 하며 다가오는 왜군의 동태를 살폈다.

그러자 마을 가까이 다가서던 왜군의 움직임이 느려지더니 갑자기 일제히 멈췄다.

“멈춰라. 이 밤중에 사람들이 저렇게 수십 명이 몰려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오는 것을 눈치 챈 것이 분명하다.”

그러자 부장인 듯한 왜군이 말했다.

“장군, 조그마한 마을 사람들이 뭘 안다고 미리 대책을 세우고 있겠습니까?”

“아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밤중에 남을 사람들이 모두 다 나와 있을 리 없다. 마을 사람이 아니라 병사들이든지, 아니면 신통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결국 왜군들은 마을에 뭔가 신통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즉각 후퇴하고 말았다.

며칠을 마을을 에워싸고 공격을 하지 못하던 왜군들이 우연히 마을 사람 한 명을 붙잡게 되었다.

“며칠 전 너의 마을 사람들이 한밤중에 마을 어귀에 나와 있었는데 어찌된 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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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들이밀며 묻는 왜군에게 마을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있는 그대로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왜군들은 팽나무가 신령한 울음소리를 내서 마을 사람들을 깨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왜군들은 마을을 급습하여 나무를 먼저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다음날 일찍 마을을 급습한 왜군들은 가장 먼저 팽나무로 다가가 일부는 도끼질을 하고, 일부는 나무 위에 올라가 나뭇가지를 마구 잘라냈다. 그런데 잘려진 나뭇가지가 땅에 떨어지면서 나무 밑에 있던 왜병들이 모두 나뭇가지에 깔려 죽고 말았다. 도끼질을 하던 왜군들도 하나같이 도끼를 부여잡고 죽고 말았다. 혼비백산한 왜군들은 총칼을 버리고 도망가고 말았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왜군이 다시는 이 마을에 들어오지 못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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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왜군이 물러난 후 팽나무는 어찌된 일인지 점차 말라가더니 급기야 죽고 말았다. 왜군들의 도끼질과 톱질을 당해내지 못하였던 것이다.

팽나무가 죽어가자 마을 사람들은 마치 친 부모가 죽어가는 것처럼 슬퍼하였다. 그래서 용하다는 의원들까지 불러 대책을 세웠지만 수백 년 된 팽나무를 살릴 수 있는 의원은 없었다.

그때 어떤 아이가 무심코 물었다.

“아빠, 사람들이 왜 울어요?”

“응, 저 팽나무가 죽어가니까 슬퍼서 그런단다.”

“그런데 아빠, 나무는 자식이 없어요?”

“나무가 자식은 무슨...”

아이의 말을 듣던 아빠가 갑자기 뭔가 생각났는지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팽나무 가지를 꺾어 삽목을 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래서 가장 생기가 있는 가지를 꺾어서 팽나무 옆에 바짝 가까이 심었다. 그리고는 몇 날 며칠을 빌었다.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얼마 후 팽나무 가지가 신기하게도 뿌리를 내리더니 살아났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아이 나무라 불렀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어미 팽나무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아이 팽나무를 당산목으로 모셨으며, 질병이 있거나 가뭄이 드는 등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 나무에 비는 풍속이 생겨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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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마을에 전염병이 발생하여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앓게 되자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제수를 차려놓고 정성을 드렸으나 어찌된 일인지 효과가 없었다.

당산목의 신령함이 사라졌는가 의심하고 있을 때 마을 원로 가운데 한 사람의 꿈에 신령스러운 노인이 나타났다.

“마을에 돌림병이 생겨 고생이 많겠구나.”

다짜고짜 돌림병 이야기를 하자 원로가 신령을 붙잡고 늘어졌다.

“신령님, 어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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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신령이 말했다.

“나는 팽나무 목신이다. 나를 위하는 그대들의 정성이 갸륵하여 내 방법을 알려주겠다.”

목신은 마을 원로에게 나뭇잎을 주워다 끓여 마시면 전염병이 나을 것이라 알려주었다. 꿈에서 깨어난 원로는 꿈 이야기를 마을 사람들에게 일러주었고, 팽나무 잎을 주워다 달여 마신 사람들이 모두 병에서 나았다고 한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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