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 보는 설화 딸섬의 추억

한국설화연구소
2024-12-23 15:45
곡성설화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반대로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을 치사랑이라 한다. 부모에 대한 치사랑이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만 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내리사랑의 일부만 돌려드려도 효자 효녀 소리를 듣는다.

 

오랜 옛날, 곡성군 곡성읍 동산리에 효녀로 소문난 지은이라는 처녀가 살았다. 마을 옆으로 섬진강이 흐르고 백사장에 바위로 이루어진 동산이 있는데, 바로 그 동산에 효녀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곡성 딸섬-1.jpg

지은이는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어찌 둘이 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딸만 낳아서 소박을 맞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딸을 낳은 뒤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요절하는 바람에 평생을 딸 하나 키우며 수절하고 산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어느 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젊었을 때는 그나마 품을 팔아 그럭저럭 살았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더구나 몸까지 아프다 보니 돈을 벌기는커녕 오히려 딸의 부양을 받아야 하니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지은이가 동네 사람들 허드렛일을 해주고 겨우 겨우 살아가고 있는데, 어느 해 가뭄이 들어 온 고을이 곤경에 빠졌다. 그러다 보니 웬만큼 먹고 살만하던 사람들도 자기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어 남의 손을 빌 일이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 모녀는 꼼짝 없이 굶어죽게 생겼다. 지은이는 자기야 어찌되든 괜찮지만 늙으신 어머니는 이대로 있으면 굶어죽겠다 생각하여 마을에서 가장 가까이 사는 이웃에게 찾아갔다.

“아주머니, 저 하나 죽는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늙으신 어머니께서 굶어 돌아가신다면 그 얼마나 불효막심한 일입니까? 제발 조금이라도 먹을 것을 내어주십시오.”

이웃집 아주머니가 지은이를 딱하게 쳐다보더니 말했다.

“낸들 도와주고 싶지 않겠는가. 허나 우리 식구들 연명하기도 힘드니 어쩌겠어. 참, 강 건너 마을에 가면 최부자 집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혹 일손이 필요할지 모르니 한 번 가서 사정을 해봐.”

강 건너 최부자 집 이야기를 들은 지은이의 눈이 번쩍 뜨이더니 그 길로 지은이는 강을 건너 최부자 집에 갔다. 가뭄이 들어 물이 거의 없었기에 강을 건너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지은이의 인상도 좋고 부지런한 모습에 최부자 집에서는 당장 일을 해도 좋다고 하였다. 지은이가 보기에 꼭 일손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딱한 처지를 듣고 적선하는 셈 치고 일을 거들라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 날부터 지은이는 강 건너 최부자 집에 일을 다니며 밥을 얻어다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자리에 누워있는 어머니는 딸이 멀리까지 가서 일을 하고 먹을 것을 구해온다는 사실을 눈치 챘지만 말린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닌지라 모르는 척 딸의 부양을 받았다. 그것이 딸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지은이가 강을 건너 최부자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방이 캄캄해지더니 장대비가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몇 달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다가 비가 내리자 마을사람들이 비를 맞으며 환호를 질렀다.

곡성 딸섬-2.jpg

그러나 딱 한 사람, 지은이만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침에 강을 건너올 때는 괜찮았는데 폭우로 강물이 불어 집으로 돌아가기가 힘들게 생겼기 때문이다.

내일이면 비가 그치겠지 하는 생각에 집에 홀로 계실 어머니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비가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사흘 밤낮을 내리는 것이 아닌가.

사흘 동안 쏟아진 비는 강둑을 넘을 정도로 내렸고, 굶고 계실 어머니를 생각하며 괴로워하던 지은이는 마침내 죽음을 무릅쓰고 강을 건너기로 하였다. 마을사람들이 말려도 소용없었다. 그러나 거센 강물은 순식간에 지은이를 물속으로 빨아들이고 말았다.

얼마 후 정신을 차려보니 지은이는 널찍한 돌 위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바위는 동산이 떨어져나간 바위였다. 겨우 목숨을 보전한 지은이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지만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지은이 역시 바위 위에서 어머니를 부르다 지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곡성 딸섬-3.jpg

그 뒤로는 아무리 비가 많이 내려도 그 바위를 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딸의 효성이 지극하여 하늘이 내려준 섬이라며 그 이름을 딸섬이라 하였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설화와 인물,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새 글

카테고리

인기글